02 비참한 하루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날카로운 파열음이 고막을 두드리며
수면 속에 취해 있던 의식이 점차 떠오릅니다.
팍- 팍-
일정한 간격을 두고 울려퍼지는 이 소리는
분명 장작을 패는 소리입니다.
가혹한 빙하기의 아침이 또다시 밝았네요.
부은 눈을 겨우 뜨면, 어제보다 한층 식어내린 산장의 공기가
살가죽을 스치며 소름을 돋게 합니다.
몸을 일으키려 해보면, 머리는 깨질 듯 울렁거리고
입 안에는 어제 마신 술의 비릿한 냄새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창밖으로 서늘한 새벽빛이 비칩니다.
동생이 없는 아침은 이도록 서슬퍼렇고 춥군요.
세상에서 오직 홀로 눈을 뜬 기분이 듭니다.
라비헨:'기절했나.' ...
으- 머리야... (이마를 부여잡고 일어나려다 순간 치밀어오르는 토기에 받칠 곳도 찾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구역질을 해버린다) 우욱-
텅 빈 위장이 뒤틀리며 신물만 섞인 타액이 차가운 바닥 위로 점철됩니다.
어제의 독주가 남긴 숙취와 가슴을 짓누르는 상실감이 한데 섞여
오장육부를 낱낱이 파헤치는 기분입니다.
입안을 감도는 비릿하고 쓴맛이 꼭 제 처지 같아,
닦아낼 기운도 없이 거친 숨이 토해집니다.
팍-!
다시 한번 마당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도끼질 소리가 머릿속을 울려대며
지독한 각성을 재촉해댑니다.
눈앞의 바닥이 빙글빙글 도는 와중에도 어제 그 남자가 묻어주었던
로만의 무덤이 떠올라 목울대가 뜨거워집니다.
차라리 이대로 영원히 잠들어 눈을 뜨지 않았더라면,
동생을 따라 그 차가운 흙 속으로 스며들 수 있었을 텐데.
후들거리는 팔로 몸을 지탱하며 고개를 들자,
열린 문틈 사이로 지독하게 시린 겨울 공기가 폐부 깊숙이 박힙니다.
살아남았다는 감각은 축복이 아니라 거대한 형벌처럼 어깨를 짓누르고,
당신은 멍한 눈으로 얼룩진 손을 바라봅니다.
이제 정말, 돌아갈 곳도 지켜야 할 온기도 없는 새벽이
저를 잡아먹어주기를 바라면서.
라비헨:(숨을 고르며 가느다랗게 떨리는 손을 내려다본다) 흐... 흐으..., 윽-
'역시 로만이 없으면 난 더이상... 아니, 더는...' (못 버티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정신 나간 사람처럼 온 몸의 힘을 쥐어짜낸다. 문을 벌컥 열고 신발도 제대로 신지 않고 숲으로 향한다. 로만이 묻혔던 그곳으로)
시야가 어지럽게 흔들리고
움직이기 시작한 머리가 깨질 듯 두개골을 두드려댑니다.
당신이 벌컥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규칙적으로 들리던 장작 패는 소리가 뚝 멎고
발걸음이 다급히 눈을 내리밟는 뽀득뽀득 소리가 울립니다.
물론 그런 것 따위 신경쓸 겨를이 없이
당신의 발걸음은 한군데로 향할 뿐이지요.
신발도 맨발이 날카로운 얼음 조각을 짓이기며 설원 위를 내달립니다.
발바닥을 파고드는 감각이 비명도 지르지 못할 만큼 얼얼하지만,
심장을 쥐어짜는 상실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얗게 부서지는 눈 결정 속에서
어제 보았던 소박한 십자가의 형상이 시야 끝에 걸리는 순간
이성이 완전히 끊어집니다.
로만, 로만...!
짐승 같은 울음소리가 입술 사이로 터져 나오며
몸이 차가운 무덤 앞에 무너지듯 주저앉습니다.
당신은 아직 채 굳지도 않은 흙더미를
미친 사람처럼 손톱이 깨지도록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이 차가운 숲속에 동생을 혼자 둘 수 없다는 일념만 가득 듭니다.
손끝에 박히는 얼어붙은 흙과 돌멩이들이 살점을 파고들어도,
동생의 차가운 손이라도 다시 한 번 맞잡고 싶은 간절함뿐입니다.
그렇게 얼마나 눈을 파헤치고 흙도 긁어냈을까요
뒤에서 당신을 따라오던 급박한 발소리가 가까워지며
당신의 비틀거리는 몸을 번쩍 들어 구덩이에서 꺼냅니다.
소한:뭐하는 거야.
라비헨:(힘없이 발버둥치며) 흑... 이거 놔...! 놓으라고! 가야 해... 로만한테 가야 한단 말야...
소한:(발버둥치는 네 몸을 꽉 붙잡아 안으며) 안식에 취한 사람의 무덤을 파헤치면 그 사람이 천국에 못 가는 거 몰라? 동생이 천국에 못 가도 좋아?
라비헨:(네 말에 멈칫하며) ...
그럼 나더러 어떡하라고.
소한:일단 실내로 가. 넌 더 쉬어야 해.
라비헨:... 싫어.
이대로 로만의 곁으로 갈 거야.
소한:동생이 너보고 죽어달래? 이 고집쟁이야.
라비헨:(씩씩거리며) 어! 내 동생을 죽인 놈보다는 잘 알아!
소한:동생을 죽인 놈보다도 동생을 모르는 형이라니. 너무 폐급 아냐?
라비헨:말 다 했어? 이 쓰레기 새끼야!
소한:어, 다했다. 멍청아. 네 사지는 멀쩡한데 네 동생만 저런 상처 입은 거면, 뻔하지. 동생은 급박한 상황에서도 널 구하려고 했던 거 아냐? 내 말이 틀려?
근데 죽겠다고?
라비헨:전부 나 때문이니까! 하나뿐인 동생도 못 지켰는데 죽는 것 말고는 어떻게 속죄하라고...
소한:살아서 속죄해. 죽으면 죄만 늘어.
라비헨:... 로만은 내가 살아갈 의지이자 이유였어.
그 애는 나와 함께 적도로 가는 게 꿈이었다고.
근데 로만이 없는 지금... 살아갈 이유가 대체 뭐가 있어?
소한:그렇다고 동생 죽음을 개죽음 만들 참이야?
적도야 가면 되지. 네가 대신 가.
라비헨:혼자 가서 뭐 해...
소한:잘 먹고 잘 살아야지.
라비헨:하... 말이야 쉽지.
소한:뭐가 어려운데.
(네 몸 상태를 확인하다가 맨발인 것을 확인하고 어깨에 들쳐멘다)
라비헨:? 뭐하는 거야?
내려놔.
소한:가자. (가볍게 무시하고는 산장으로 다시 걸음을 옮긴다)
라비헨:뭐하는 거냐니까? 내려놔. 내려 놓으라고.
여기서 로만이랑 같이 누울 거라고! (주먹으로 네 등짝을 퍽퍽 치며 발버둥친다)
소한:(들은 척도 안한다)
라비헨:놔. 놔아-... 흑, ... 흐... 흐아앙- (이젠 말을 들어먹지도 않고, 이 산장에 온 순간부터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것도 없어 울컥 서러움이 터져나온다. 주먹 쥔 손으로 네 등을 퍽퍽 때리다가 울면서 더 힘이 빠지더니 축 늘어져 아이처럼 울기만 한다)
소한:(이거 완전 순 애새끼잖아? 잘못 걸렸다, 진짜)
(그러면서도 딱히 티는 안 내고 산장까지 뚜벅뚜벅 걸어간다)
.
.
.
산장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느껴지는 미지근한 온기가
오히려 기분을 비참하게 만듭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는 당신을 도로 침상에 내려놓고
시큰둥하게 당신 몸 위로 모포를 툭 던집니다.
소한:잠이나 더 자. 정신 차릴 때까지 자.
라비헨:정신은 이미 차렸거든?!
(훌쩍) 발 시려워... (또 서러워서 울려고 한다)
소한:어휴... 화상아. (골치 아프다는 듯 머리를 쓸어올렸다가, 네 발을 침상 안으로 밀어넣고 모포를 둘러준다)
너 이름이 뭐야.
라비헨:알아서 뭐 하게... 죽으면 말뚝에 이름이라도 새겨주게?
소한:어, 대문짝만하게 새기게.
라비헨:(또 중지를 똑바로 세우며) 네 엄마다, 이 개자식아.
소한:그래. 엄마. 잠이나 처 자.
라비헨:예의없는 새끼...
소한:(병신 새끼...) 그래서 이름이 뭔데.
라비헨:너부터 까는 게 당연한 거 아냐?
소한:(그런가? 나름 일리가 있다) 소한.
라비헨:...
'뭐 이리 순순해?'
잘 들었어. 이제 저리 가.
소한:그래. 이름 안 얘기하니까 병신이라고 부를게. 병신아.
라비헨:야!
소한:
라비헨:사람한테 병신이라니 말 다 했어?
소한:이름 안 알려주는데, 내 맘대로 불러야지 뭐.
라비헨:(맞는 말이라 잠깐 말문이 막히다가) 알아서 뭐 하게? 어차피 곧 떠날 거면서.
소한:아닌데.
라비헨:뭐가 아니야.
소한:너 적도로 간다며.
라비헨:...? 그럴 계획이었지.
소한:가.
라비헨:거길 가서 뭐 해. 동생을 데려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소한:동생 꿈이었다며. 그럼 가야지.
라비헨:적도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알고 하는 소리야?
소한:알지. 그래도 못 갈 거 없잖아.
라비헨:? 가보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알아?
게다가 여긴 혼자 다니면 죽기 쉽다고.
소한:흠... (그 말에 잠시 고민에 빠진 듯 조용해졌다가) 혼자 아니면 되지. 가.
라비헨:???
뭔 소리야? 로만은 네가 땅에 쳐박았잖아.
소한:(이해가 딸리나? 머리가 안 좋군) 같이 가주겠다고. 나야 어차피 사는 게 목적이라 어디든 상관 없어.
라비헨:'이거 미친 새낀가?'
"같이 가준다"는 건 마음에 안 드는데.
내가 미쳤냐? 동생 죽인 놈이랑 같이 다니게.
소한:미친 척하고 동생 꿈을 이뤄주든가, 아니면 여기서 죽든가. 어차피 전자가 낫지 않나?
라비헨:후자 했다가 네가 질질 끌고 온 거잖아...
소한:동생 죽음 개죽음 만들려다가 너도 죽기 직전에 후회할 거 뻔해서 그랬다, 왜.
라비헨:너 나 알아? 모르잖아.
소한:모르지.
라비헨:근데 뭘 그렇게 잘 안다고 떠들어?
소한:내가 잘 아는 게 아니라 네가 멍청한 거야.
라비헨:자꾸 병신이니 멍청하다느니 할 거면 꺼져.
소한:그럼 이름 대라니까.
라비헨:... '고집불통 또라이 새끼...'
... 라비헨.
소한:그래, 라비.
라비헨:...?
라비?
소한:(?) 라비.
라비헨:너 나 모른다며.
소한:모르지.
라비헨:모르는데 왜 라비라고 불러?
소한:세 글자는 길어서 부르기 귀찮아.
라비헨:'이상한 새끼...' 라비는 싫어.
소한:내가 귀찮으니까 네가 참아.
라비헨:뭘 참으라는 건지... 하아-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소한:글쎄다. 근데 답은 네가 더 잘 알걸.
라비헨:딱히 살고 싶지도 않고, 애초에 난 너랑 같이 다닐 생각 없다니까?
(비웃음) 네가 같이 다니고 싶다고 싹싹 빌면 모를까.
소한:(어이가 없네...) 그래, 가줘.
라비헨:...?
너 좀 머리가 이상하냐?
소한:뭐가.
라비헨:왜 굳이 나랑 적도를 가.
소한:혼자 다니는 것보다는 둘이 다니는 게 생존 확률이 높으니까.
라비헨:그건 알지. 그걸 굳이 나랑?
넌 날 알지도 못하면서.
소한:넌 나 알고?
라비헨:몰라.
소한:그럼 쌤쌤이네.
라비헨:무슨...
하아... '기운 빠져...' (모포를 푹 두르고 누워버린다) 마음대로 해라...
소한:그래. 자고 있어. 아침으로 수프 데운다.
라비헨:'뭐 저런 새끼가 다 있지?' (손을 휘휘 젓는다)
모포 속으로 몸을 깊숙이 파묻는 와중에도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이 상황이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나옵니다.
동생을 잃고 죽음만을 갈망하던 당신 앞에 나타난 이 남자는,
슬픔을 위로하기는커녕 황당한 논리로 사고 회로를 마비시켜 버리는 재주가 있나 봅니다.
어이가 없어서 대꾸할 기운조차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당신이 세상을 등지듯 벽을 향해 돌아누워 눈을 감으면
등 뒤에서는 다시금 화로의 불꽃이 일렁이는 소리와 함께,
어제와 같은 고소한 수프 냄새가 서서히 방 안을 채우기 시작합니다.
남자의 무심한 배려가 오히려 날 선 신경을 무디게 만드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하지만
몸은 염치도 없이 그 온기를 탐내고 있군요.
비릿한 슬픔이 가득했던 가슴 한구석에 이름 모를 황당함이 자리 잡으니,
역설적이게도 지독했던 자살 충동이 잠시 뒤로 물러납니다.
곧 화로 위에서 냄비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잦아들더니
남자의 무거운 발소리가 침상 곁으로 다가옵니다.
모포 속으로 깊이 몸을 웅크리고 있지만,
코끝을 간지럽히는 따스한 김과 수프의 향기까지 막아낼 수는 없군요.
남자는 아무런 기척도 없이 침상 머리맡에 수프 그릇을 내려놓으며,
그릇이 바닥에 닿는 둔탁한 소리만을 남깁니다.
소한:(네 어깨를 작게 흔들며) 일어나서 먹어.
라비헨:뭐, 독약 탔다는 그거?
소한:어. 먹고 뒤지라고.
라비헨:하하, 고-맙네.
많이 먹고 기운 차려서 죽여줄게, 이 새끼야.
소한:그러든가. (터벅터벅 거실로 돌아가 화로의 불을 끈다)
라비헨:(궁시렁) 귀는 장식이야, 뭐야?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상체를 일으켜 수프를 관찰한다)
라비헨:
Spot Hidden Roll
기준치:55/27/11
굴림:91
판정결과:실패
독 든 수프나 먹고 죽으라는 가시 돋친 소리를 하더니,
당신 눈앞에 놓인 그릇에서는 더없이 정직하고 따뜻한 김만 피어오릅니다.
그릇 안에는 화려한 고기 한 점 없이,
뭉근하게 삶아진 감자 몇 덩이가 수프 국물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네요.
이 척박한 빙하기에 감자 한 알이 얼마나 귀한 사치품인지 잘 알고 있기에,
건더기 없는 허여멀건 수프가 오히려 마음을 무겁게 짓누릅니다.
나무 스푼으로 수프를 살짝 저어보자, 고소하면서도 짭짤한 향이 훅 끼쳐옵니다.
어제부터 비어있던 속이 비명을 지르듯 뒤틀립니다.
로만을 잃고 죽음을 노래하던 자신이건만,
그릇을 타고 전해지는 뭉근한 온기가 마비되었던 손가락 끝을 자극해
결국 스푼을 쥔 손에 힘이 실립니다.
한 입 떠서 입안에 넣자마자 퍼지는 포실포실한 감자의 식감과 따뜻한 액체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억지로 생의 불꽃을 지핍니다.
라비헨:(한 입, 두 입... 우물거리며 먹는 속도가 점차 빨라지더니 이내 뺨을 가르고 눈물이 뚝뚝 흘러내린다) ...
'씨발... 더럽게 맛있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죽고 싶어 안달이었는데, 수프로 몸이 따뜻하게 데워지자 살고 싶다는 감정이 충만해진다)
눈물 섞인 수프를 꾸역꾸역 삼키며, 죽고 싶다던 제 의지가
고작 이 따뜻한 국물 한 사발에 무너져 내리는 것이 스스로도 믿기지 않습니다.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그릇 속으로 떨어져 간을 더하는 줄도 모른 채
당신은 짐승처럼 스푼을 움직여 바닥까지 닥닥 긁어냅니다.
허기를 채울수록 선명해지는 것은 로만과 나누고 싶었던 미래와,
이제는 영영 홀로 남겨진 이 지독한 현실뿐이라 목이 메어옵니다.
그릇을 비워낼 때쯤, 온몸의 혈관을 타고 도는 강제적인 생명력이
당신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심장을 세차게 뛰게 만듭니다.
빈 그릇을 내려놓고 젖은 소매로 눈가를 거칠게 닦아내며
저 멀리 화로 앞에 앉아 있는 남자의 실루엣을 멍하니 바라보면
저 인간이 준 것이 고작 수프 한 그릇인지, 아니면
제가 차마 끊어내지 못한 구질구질한 삶의 미련인지 분간이 가질 않습니다.
소한:(나무 스푼이 그릇 바닥 긁는 소리를 듣고는 뚜벅뚜벅 다가와 그릇을 뺏어든다) 다 먹었으면 쉬어. 해 더 올라오면 바로 출발할 거야.
라비헨:... '진짜 이 낯선 남자랑 같이 다녀야 한다고? 아직도 동생을 죽인 장면이 눈에 선한데...'
소한:(주섬주섬 품에서 홍심석을 꺼내 네 손에 대신 들려준다) 품에 넣고 있어. 따뜻해.
라비헨:...?
이게 뭐야?
소한:비싼 거.
라비헨:수상할 정도로 따뜻한데...
(눈을 가늘게 뜨며) 설마 겨드랑이나 가랑이에 넣고 다니기라도 한 거야?
소한:(뭔 상상도 저리 저급하게 해?) 자체 발열하는 광석이야. 자동 증기 기관 메인 부품으로 들어가는 거.
라비헨:세상에 그런 게 있다고?
소한:...너 어디 깡촌에서 살았어?
라비헨:... 북부 시골 출신이긴 하지.
소한:어쩐지. (네 손에 들려준 홍심석을 바라보다가 툭) 한동안 네가 갖고 다녀. 기력 없을 때니까.
라비헨:넌 이걸 어떻게 갖고 있는 건데?
소한:아버지 공장에서 하나 빼왔어.
라비헨:그럼 아버지는...
소한:(시선을 툭 피하며) 쉬고 있어. 난 나갈 채비할 테니까.
라비헨:'쟤도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건가?' ... 알았어.
낡은 산장 내부의 공기는 얼음처럼 차갑고 눅눅합니다.
당신은 담요를 어깨에 두른 채,
난로 옆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소한의 뒷모습을 눈에 담습니다.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배낭 속을 뒤적이며
남은 식량과 연료를 체크하고 있군요.
배낭 이음매 맞물리는 소리와 단단한 가죽이 마찰하는 소리가
적막한 실내를 채웁니다.
당신은 손바닥에서 은은한 온기를 내뿜는 돌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깁니다.
세상을 집어삼킨 이 지독한 겨울 속에서,
저 빌어먹을 놈과 여정을 떠나기로 한 자신도
정상이 아닌 건지, 아니면...
라비헨:
Listen Roll
기준치:80/40/16
굴림:31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그때, 세차게 몰아치는 바깥의 눈보라 소리 사이로
이질적인 음향이 섞여 들어옵니다.
직- 지익-
무거운 무언가를 바닥에 질질 끌며
느릿하게 이동하는 듯한 기괴한 소리.
당신은 본능적으로 숨을 멈추고 귀를 기울입니다.
그것은 짐승의 발소리도, 바람이 문틈을 때리는 소리도 아닙니다.
빙식체.
오직 죽음만을 찾아 헤매는 그 끔찍한 괴물들이
산장 근처까지 도달한 모양입니다.
당신의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리듯 세차게 뛰기 시작하고
손끝은 손 안에 쥐인 돌의 온기가 무색할 만큼
차게 식어갑니다.
라비헨:...잠깐.
너도 들려?
소한:(짐을 챙기다 말고 너를 돌아본다) ? 뭐가?
라비헨:(긴장감에 침을 크게 꿀꺽 삼키고는) ...빙식체가 이 근처에 있어.
소한:(잠시 멈칫) ...? 뭐? 넌 어떻게 알았는데?
라비헨:그냥... 귀가 밝은 편이라고 해둘게.
어쨌든 계속 여기 있을 수 없어. 최대한 빨리 떠나야 해.
소한:(아직 짐을 다 못 챙겼는데. 게다가... 바로 출발하기엔 이 녀석 더 쉬어야 하지 않나?)
(잠시 고민하다가 무기를 챙겨들고는, 장비를 두텁게 껴입고는) 안에 있어. 처리하고 올 테니까.
혹시 몇 마리인지도 알 수 있어?
라비헨:한 번 알아볼게. 잠깐 조용히 있어봐. (집중해서 바깥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라비헨:
Listen Roll
기준치:80/40/16
굴림:99
판정결과:실패
눈보라가 거칠게 몰아치는 탓인지
적이 몇 마리인지 구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적으면 하나, 많으면 셋 정도겠네요.
라비헨:(도통 집중이 안 돼서 눈썹을 찌푸린다) 정확히는 모르겠어.
많아야 세 마리일 거야.
소한:그래. 넌 더 쉬고 있어. 다녀온다. (단단히 무장하고는 산장 문을 연다)
라비헨:뭐...?! 혼자서 어쩌려고?
소한:많아야 셋이라며. 무리 없어.
라비헨:뭐가 무리 없다는 건데? 한 마리 잡기도 골치 아픈 녀석들이잖아.
아직 늦지 않았어. 빨리 짐 챙기고 떠나는 편이 좋을 거라니까?
소한:괜찮아, 한번에 다섯 마리까지 잡아봤어. (문간을 넘고는 너를 돌아보며) 쉬고 있어.
라비헨:야, 야...!
가버렸네...
믿는 구석이 있는 건가...?
동생을 죽였다는 사실이 밉고 증오스럽다고는 하지만
개죽음을 바란 건 아닌지라 괜히 마음이 불편합니다.
당신이 괜히 모포를 더욱 끌어당겨 몸을 감싸면
불씨 꺼진 벽난로에서 피어나는 연기 냄새만
주변에 자욱이 맴돕니다.
당신은 닫힌 문 너머로 그가 남긴 냉기만을 멍하니 응시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요를 찢는 날카로운 총성이 산장의 얇은 벽을 울립니다.
한 번, 그리고 뒤이어 눈을 헤치는 거친 마찰음과
정체 모를 괴성이 뒤섞여 들려옵니다.
당신은 마른침을 삼키며 돌을 쥔 손에 힘을 주지만,
뼛속까지 파고드는 불안감은 가시질 않습니다.
동생의 마지막 모습이 머릿속을 스치며 그를 향한 원망이 고개를 들다가도,
다시 혼자 남겨지고 싶지 않다는 공포 때문이겠지요.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요,
멀리서 들려오던 소음이 잦아들고 오직 바람 소리만이 창문을 덜컥거립니다.
당신이 한참을 죽은 듯이 웅크리고 있으면,
돌연 산장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누군가 안으로 들어옵니다.
차가운 설풍과 함께 들이닥친 것은
온몸에 눈가루를 뒤집어 쓴 소한입니다.
그의 어깨 위로 흩날리는 눈송이가 죽음의 그림자처럼 서늘해 보입니다.
당신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향해 한 걸음 내딛습니다.
소한:(거칠게 몰아쉬는 숨을 진정시키며 문을 발로 차 닫는다) ...하아, 젠장. 많아야 세 마리가 아니었어.
진땀 뺐네.
보아하니 계속 몰려올 모양이던데. 어쩔 수 없이 이동해야겠어.
(바닥에 놓인 네 짐가방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5분 뒤에 출발한다. 더 지체하면 정말 눈 속에 파묻힐 거야.
라비헨:너... 너...! (괜찮냐고 물으려다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모습을 보고 입을 다문다)
소한:? 어. 왜 불러?
더 쉬어야 할 것 같아?
라비헨:...아니야. 나도 준비할게.
소한:그래. (급히 내부를 뒤지며 물건을 챙긴다)
소한은 기계처럼 일사불란하게 산장 안의 생필품을 배낭에 쓸어 담습니다.
당신은 아직 떨림이 가시지 않은 손으로 모피를 접고는
그의 뒷모습을 살짝 훔쳐봅니다.
분명 끔찍한 괴물들과 사투를 벌이고 돌아온 직후일 텐데,
그의 움직임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곧 준비를 마친 그는 묵직한 가죽 장갑을 고쳐 끼고는
당신이 짐가방을 챙겼는지, 방한복을 제대로 입었는지 확인하고는
굳게 닫혔던 산장의 문고리를 잡습니다.
소한:제대로 버텨, 휘말리지 말고.
짧은 경고와 함께 문이 열리는 순간,
비명 같은 바람 소리와 함께 거대한 흰색 장벽이 실내를 집어삼킬 듯 밀어닥칩니다.
언제 이렇게 다시금 눈보라가 거칠게 치기 시작한 건지.
당신은 급격히 떨어지는 기온에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끼며 발을 내딛습니다.
문밖의 세상은 눈보라가 치는 여느 날처럼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하얀 어둠에 잠겨 있습니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더미를 헤치며 걷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늪을 지나는 것처럼 무겁고 고통스럽습니다.
소한은 그 상황에서도 망설이지 않고
걸음만 가만히 옮깁니다.
이 근처를 제법 전전한 티가 납니다.
소한:(거센 바람에 휘날리는 모자를 더욱 눌러쓰며) 계속 나만 보고 따라와. 딴데 보다가 빠지면 답 없어.
라비헨:(반눈을 뜨며 눈보라를 조금이라도 덜 맞으려 손으로 가림막을 만든다)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앞으로 간다는 거야?
소한:탐색을 어제 미리 끝냈어. (담담하게 얘기하고는, 네가 혹시나 발을 헛디딜까 소매를 가볍게 쥐고 이동한다)
라비헨:'온통 눈 뿐인데 뭘 어떻게 했다는 거지?' (의문을 가지며 슬쩍 뒤를 돌아본다.) '대체 몇 마리나 오고 있다는 거지?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거야?'
소한:(터벅터벅) 계속 걸을 수 있겠어? 몇 시간 정도 가능할 것 같아?
라비헨:정확히는 모르지. ... 이런 곳에서는 아파도 계속 걷는 수밖에 없잖아.
소한:그렇긴 하지.
짐은 대략 몇 kg이야. 체력 확인해야하니까 대답해봐.
라비헨:ㅁ, 몰라. 무게 재는 것도 없는데 어떻게 알아, 그걸?
필요해 보이는 건 다 들고 다녔단 말야.
소한:나참... 바보냐? (걸음을 뚝 멈추고 네 쪽으로 다가와 네 등에 매인 배낭을 대충 들어본다) 30kg이 넘겠는데. 이러고 어떻게 살아온 거야?
라비헨:잘 살아왔지. 그리고 바보 아니거든?
이것도 최대한 덜고 덜은 거라고.
소한:어휴... 화상아. (혀를 쯧 차고는, 네 배낭을 들어올리던 손을 떨구고 마저 앞으로 걷는다) 조금만 더 가면 암벽 지대니까 거기서 바람 피하며 짐 정리하자. 알아 들어?
라비헨:화상이라 부르지 말라고 이름 알려줬더니... (꿍시렁-)
들었어. 너보단 귀 잘 들리거든?
소한:(별 대꾸 없이) 그래, 계속 간다.
라비헨:(꿍시렁...) 짜증나는 놈...
발끝이 눈더미 속에 파묻힐 때마다 종아리 근육이 비명을 지릅니다.
차가운 눈바람에 뺨이 찢길 듯 아려오지만,
당신은 앞서가는 소한의 등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묵묵히 걸음을 옮깁니다.
그에게서 '화상'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이 지옥 같은 설원을 버텨내야 하니까요.
얼마나 걸었을까요,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던 하얀 평원 끝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합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암벽 지대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군요.
거센 눈보라가 바위벽에 부딪혀 산산조직 나며,
휘몰아치던 바람의 기세가 조금씩 잦아드는 것이 느껴집니다.
라비헨:
건강
기준치:70/35/14
굴림:35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온몸이 시릴 듯 뻣뻣하게 굳어가지만
그래도 다년 간의 경험 탓인지
버티는 것이 어렵지 않으니 다행입니다.
곧 암벽 지대로 들어서면,
소한은 익숙한 듯 커다란 바위 틈새로 형성된
천연 동굴 같은 공간으로 당신을 이끕니다.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지친 몸을 이끌고 바위 안쪽으로 들어서자,
비로소 고막을 때리던 소음이 멀어지며 정적이 찾아옵니다.
당신이 얼어붙은 배낭 끈을 풀며 거친 숨을 몰아쉬면
소한도 마찬가지로 뿌연 입김을 내쉬고 짐을 내려놓습니다.
소한:(배낭을 바닥에 툭 내려놓으며 숨을 고른다) 오느라 고생했어. 일단 잠시 여기서 휴식하자.
(당신의 배낭을 뺏어 들며) 이리 내놔. 아까 말했듯이 짐 정리 좀 해야겠어. 쓸데없는 게 너무 많아.
라비헨:(다시 확 뺏으며 으르렁거린다) 쓸데없기는? 아니거든?!
진짜 다 필요한 거거든?
소한:확인 좀 해보자. 이리 내.
라비헨:... (삐죽이며 다시 배낭을 네게 넘겨준다)
소한은 당신에게서 배낭을 받더니 앞에서 짐을 하나둘 꺼내놓기 시작합니다.
차가운 바닥 위로 당신의 생존 흔적들이 어지럽게 펼쳐집니다.
그는 옆에서 눈을 가늘게 뜨고 물건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쓸모없는 것을 골라내려는 감식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당신의 배낭 속에는 험난한 북부에서 살아남기 위해 꾸역꾸역 집어넣은,
조금은 투박하고 절박한 물건들이 들어있습니다.
동생의 낡은 일기장과 펜,
말린 육포와 딱딱하게 굳은 호밀빵,
이가 빠진 도자기 컵과 수저,
여분의 두꺼운 털 양말 두 켤레,
작은 손거울과 빗,
다용도 접이식 칼,
성냥갑과 부싯돌,
낡아서 거의 지워진 지도 조각,
정체 모를 말린 약초 주머니,
구멍 난 가죽 장갑 한 짝,
바느질 도구 세트,
내용물이 바닥난 주스병,
반쯤 타버린 양초 토막,
비상용 은박 담요,
마른 솔방울 몇 개,
녹슨 낚시 갈고리와 낚싯줄,
검게 그을린 작은 냄비,
동물의 뼈로 만든 호루라기,
녹슨 못과 나사 몇 개,
말린 오렌지 껍질...
이렇게 늘어놓고 보니 민망한 것들이 더러 있네요.
소한:(손거울을 집어 들며 미간을 찌푸린다) ...이런 건 왜 들고 다니는 거야? 거울 볼 정신이 있어?
라비헨:(휙 거울을 낚아채며) ㄱ, 거울은 보고 살아야지...!
얼굴에 뭐가 묻었는지도 모르고 다닐 수도 있잖아.
소한:그게 중요해? 볼 사람도 없는데. 혼자 다니는 것도 아니고.
버려.
라비헨:싫어! 또 혼자 다니게 될 수도 있잖아.
소한:죽게 안 둘 테니까 버리라고.
라비헨:...
너도 내가 동생처럼 변하면 죽일 거잖아.
소한:(시선을 외면하며) 그럼 넌 빙식체 만나면 도망부터 치든가. 내가 잡으면 돼.
라비헨:하... 안 죽일 거란 말은 안 하네.
됐다. 내가 괜한 얘길 했어.
어쨌든 ...거울로 신호를 보내기에 좋을 거라 그랬어.
소한:신호를 보고 찾아와줄 구조대도 없잖아. (반쯤 낡은 호루라기를 들어보이며) 이것도 마찬가지고.
라비헨:잘 보이지 않는 곳도 들여다볼 수 있다고...!
그거는...
ㄱ, 구조 요청에 필요할지도 모르잖아.
소한:...
라비헨:따로 떨어져서 행동할 때라든가...
소한:...알았어. 그럼 호루라기만 남기고 거울은 버려. 양초 토막도. 내가 새것 가지고 있는 게 꽤 있어.
그리고... (차근히 살펴보다가 한 짝밖에 남지 않은 장갑을 들여다본다) 이건 한 짝뿐인데 왜 가지고 있는 거야?
라비헨:한 짝이라도 쓸 수 있으니까...?
소한:나한테 여분 있어. 그거 줄게. 버려.
(낡아서 들여다보기도 힘든 지도 조각도 들어올리며) 이것도. 헤져서 읽지도 못하는데 왜 갖고 있어.
라비헨:(눈치...) 없이 사는 것보단 이런 거라도 있는 편이 낫잖아.
소한:일리는 있지만 짐이 가벼워야 생존 확률이 올라가. 살자고 하는 일인데 괜한 건 챙기지 마. 지도는 내가 멀쩡한 거 가지고 있어.
라비헨:알았다고...
소한:그래. (제 짐을 풀어헤치며 물건을 마저 늘어놓기 시작한다) 짐 무게 배분하자. 넌 야영 도구만 짊어지고 다녀. 나머지는 내가 챙길 테니까.
라비헨:'지는 뭐 들고 다니길래 나한테 계속 뭐라 하는 거야?' (슬쩍 곁눈질로 소한의 짐을 살펴본다)
당신은 바닥에 주저앉아 가벼워진 자신의 배낭을 매만지다,
슬쩍 고개를 돌려 소한의 짐을 훔쳐봅니다.
입만 열면 '화상'이니 '바보'니 타박하던 저 남자는 대체 무엇을 믿고
저토록 당당한지 궁금해졌기 때문이지요.
소한이 거칠게 지퍼를 열어젖힌 배낭 안에서는 당신의 잡동사니와는 차원이 다른,
서늘하고 묵직한 물건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추억이나 미련 따위는 한 톨도 섞이지 않은,
오직 '효율'과 '살육'만을 위해 정제된 전문가의 도구들입니다.
깨끗한 머스킷 소총과 여분의 탄창,
소형 고체 연료 스토브,
마른 육포와 말린 과일,
나무를 팰 수 있을 만한 작은 손도끼,
강철제 로프와 등반용 카라비너,
방수 처리된 정밀 지도와 나침반,
야영을 위한 캔버스 천과 가죽 덮개,
눈밭을 팔 수 있는 접이식 삽,
방수용 기름 캔,
고농축 지혈 파우더,
접이식 소형 망원경,
문을 따기 위한 용도로 보이는 각종 철사.
이외에는 멀쩡한 약초나 다용도 맥가이버 도구 정도입니다.
라비헨:'완전 전문적인 것만 있잖아...?' 넌 이걸 대체 어떻게 다 모은 거야?
소한:(물건을 종류별로 구분해서 모으며) 원래 취미가 수렵이라.
옷 정도는 주인 없는 집을 털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고.
(가방을 계속 뒤적거리다가 멀쩡한 가죽 장갑을 꺼내 네게 내민다) 챙겨.
라비헨:(얼떨떨하게 일단 받는다) 어어...
혼자서도 잘 돌아다니는 것 같은데 왜 나랑 같이 가자는 거야?
소한:정신병 걸리기 싫어서.
라비헨:...? 뭔 소리야?
소한:(얘야말로 무슨 소리지?) 혼자 다니면 정신병 걸려.
2인 이상이면 생존 확률이 높아지는 것도 있지만.
라비헨:(몰랐다) 그래서 좀 또라이 같은 거였구나...
소한:뭐래.
(야영 도구만 모아 네 가방에 쓸어넣으며) 같이 다니던 파트너가 죽은 지 얼마 안 돼서, 마침 새 파트너가 필요하던 참이었어.
라비헨:... 무슨 부품 교체하듯 얘기하네, 너.
소한:...
멋대로 생각해.
라비헨:... 네 파트너도 내 동생이랑 같은 이유로 죽은 거야?
소한:응.
라비헨:...
그때도 지금처럼 망설임이 없었어?
소한:...
(시선을 외면한다)
라비헨:(대답을 듣지 않아도 대충 알 것 같아서, 더 묻지 않기로 한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 난 네가 진짜 싫어.
그치만 네가 하는 말에 일리가 있으니까 당분간은 같이 다닐게.
소한:(망설였다고 사실대로 말할까, 입술을 달싹이지만 결국은 고개만 끄덕인다)
라비헨:싫어도 앞으로 꽤 오랜 시간... 아니면 내가 죽기 직전까지는 같이 다니게 될테니까 제대로 인사하는 게 좋겠지.
(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다시 한 번 소개할게. 내 이름은 라비헨이야. 앞으로 잘 부탁해, 소한.
소한:(갑자기 뜬금없네. 이상한 새끼. 그래도 일단 손을 내미니 악수한다) 그래, 잘 부탁해. 라비.
라비헨:그래.
(맞잡은 손을 조금 세게 쥐며) 그리고 라비가 아니라 라.비.헨!
소한:귀찮아. 라비.
라비헨:라비헨이라니까.
소한:귀찮대도. 정 싫으면 라비로 개명해.
라비헨:(얼척x) 내가 왜?
그냥 라비헨이라고 불러.
소한:라비. (고집불통)
라비헨:따라해.
소한:
라비헨:
소한:
라비헨:
소한:춥다, 잠깐 불 피운다.
라비헨:야!
소한:뭐.
라비헨:끝까지 제대로 따라해야지!
소한:귀찮게... (모자 위로 머리카락을 긁고는, 네 가방에서 나온 솔방울을 쥐고 손을 내민다) 홍심석 돌려줘봐.
라비헨:(갸웃) 홍심석이 뭐야?
소한:내가 너한테 준 돌.
라비헨:아, 네 겨드랑이에 넣었던 거?
여기.
소한:(어이x) 어. (받아들고는 바닥에 털썩 앉아, 솔방울을 내려놓고 맥가이버 나이프를 집어 돌을 세게 지익 긋는다)
치익-, 챙!
정적을 깨는 날카로운 마찰음과 함께,
어두운 암벽 동굴 안으로 선명한 주황빛 불꽃이 튀어 오릅니다.
단순한 돌인 줄 알았던 홍심석에서 뿜어져 나온 불꽃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솔방울 사이로 스며듭니다.
곧, 메마른 솔방울이 열기를 머금고 타닥거리는 소리를 내며
금세 작은 불씨를 피워 올립니다.
뭐야, 이 돌. 신기하네.
당신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광경에 입을 벌리고 있으면
소한은 곧 동굴 입구에 늘어진 지푸라기와 나뭇가지를 주워내더니
불씨를 키워 모닥불을 만듭니다.
순식간에 얼굴이 뜨거운 열기로 따끈따끈해집니다.
소한:(가방을 뒤적여 모포를 꺼내고는 네게 내밀며) 두르고 있어. 안 타게 조심하고.
라비헨:... 그저 따뜻한 돌인 줄 알았는데 신기하네.
(모포를 받으며) 너는?
소한:참을 만해.
라비헨:...? 그럼 네가 덮어.
원래 네 거잖아.
소한:?
그게 뭐. 이제 내 게 네 거고, 네 게 내 건데.
라비헨:그래서 내 솔방울도 네가 쓴 거야?
소한:응. 귀한 거였어?
라비헨:그건 아니긴 하지.
소한:그렇다면야, 뭐.
라비헨:... '로만이랑 있을 때 주웠던 건데. 아직 다른 물건은 많으니까...'
소한:(너를 가만히 놓아두고 다시금 짐을 정리하기 시작하다가, 낡은 일기장과 펜을 발견하고는 네 가방에 슥 넣는다)
라비헨:이 근처를 꽤 잘 아나 보네. 계속 주변만 돌아다녔던 거야?
소한:거점이랑 대피처 정도만 알아뒀어. 지상 위로 나와 있는 건물은 빙식체가 습격하기 좋으니까.
어제 네가 산장에 들어온 것도 내가 인근 탐색하던 도중이었고.
라비헨:너는 어디로 가는 중이었는데?
소한:...아무데도.
라비헨:? 그럼 지도에서 안 가본 곳만 생각하고 다닌 거야?
소한:응.
라비헨:(황당) 평생 이렇게 살 순 없잖아.
소한:...
당장 사는 게 급하고 언제 죽을지도 모르니까.
너희 형제가 독특한 거야. 보통은 나처럼 살 텐데.
라비헨:...
(눈을 반쯤 내리깔며 입술을 달싹인다) ...적도로 가자는 말은 로만이 먼저 꺼냈어.
소한:(끄덕) 네가 말해서 기억해.
라비헨:고향에 괴물들이 나타난 후에 부모님을 잃고서... 삶의 의지를 잃었던 내게 희망을 심어주고 싶었던 거였겠지.
(씁쓸하게 웃음 소릴 흘리고는) "적도로 가면 지금보다 더 따뜻하대. 거기는 안전할 거야." 라고... 거기서 다시 시작하자고...
소한:...그랬군.
일리는 있지.
라비헨:(말하면서 로만이 살아있을 적, 웃으며 제게 희망을 심어줬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다시 눈가가 축축해지지만 흘려보내지 않으려 밑입술을 꾹 깨물었다 뗀다) ... 나도 로만도 고향 바깥으로는 한 발짝도 안 나가봐서 어떤 곳인지 몰라. 그땐 그냥 로만이 하는 말을 믿고 싶었어.
소한:(뭐라고 말을 할지 몰라서 잠시 망설였다가) ...그럼 나중에 직접 가서 확인해보면 되겠네. 동생 말이 맞았는지.
라비헨:그치만 확인해도 로만은 더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걸...
(무릎을 끌어안고 그 사이에 고개를 파묻는다) 로만이 보고 싶어...
소한:(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위로 같은 건 적성도 안 맞고 해본 적도 없어서) ...
적도까지 가서 잘 사는 모습 보여주면 동생이 기뻐하겠지.
보고 싶어도 참아. 여기서는 한눈 팔면 금방 상봉하니까.
라비헨:(훌쩍) 네가 상봉도 못 하게 하잖아...
소한:... 또 우냐?
라비헨:(울먹이는 목소리로) 안 울거든?
소한:어휴... (가방을 뒤져 깨끗한 물 한 병과 냄비를 꺼내고, 피워낸 모닥불에 물을 끓이기 시작한다)
라비헨:왜 한숨 쉬는데...
(고개를 살짝 들어올리며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내가 한심해? 어??
너 때문이잖아...
소한:울 기력 아껴서 살아. 안 그래도 이곳에서의 생존은 열량 싸움이라고.
라비헨:(훌쩍...) 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
보글보글...
왜 물을 끓이는지도 모를 냄비에서
곧 수증기가 뿌옇게 피어오릅니다.
소한은 물이 끓자 냄비를 바닥에 대충 내려두고는
가방 어딘가를 또 뒤지는군요.
힐끔, 눈동자만 굴려 무얼 꺼내는지 살펴보면
뚜껑 덮인 깡통이 그의 가방에서 나옵니다.
뭘 하려는 건가, 잠시 지켜보면
열린 뚜껑에서 곧 달큰한 냄새가 풍깁니다.
이게 대체 무슨 냄새인지 모르겠네요.
소한은 당신이 의문을 가지는 것도 모른 채
나무 스푼을 꺼내 안에 들어있던 가루를 크게 뜬 뒤
끓인 물에 섞더니, 나무 컵에 담아 당신에게 내밉니다.
소한:마셔.
라비헨:(나무컵을 일단 받으며 잔뜩 경계하는 눈초리로) ...이게 뭔데?
소한:독.
라비헨:(헛웃음) 살고 싶어서 안달난 애가 독을 이렇게 많이 들고 다녀? 너 내가 진짜 병신인 줄 알아?
소한:(네가 뭐라하든 도로 캔의 마개를 덮으며) 그럼 마시면 되겠네.
라비헨:... (컵 안에 담긴 액체를 빤히 바라보며 무엇인지 파악하려 애쓰다가 입에 대고 한 모금 마신다) '진짜 독은 아니겠지, 뭐...'
나무 컵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당신의 코끝을 간지럽히며 낯선 달콤함을 전합니다.
당신이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빤히 들여다보다가 한 모금 삼키면
입안에 닿는 순간, 혀끝에서부터 뇌까지 번지는 강렬하고 부드러운 단맛에
눈이 동그랗게 떠집니다.
지금껏 살아오며 맛본 그 어떤 열매나 꿀보다도 진하고 깊은 풍미입니다.
이게... 대체 뭐지 싶어서 계속 홀짝이다보면
얼어붙었던 장기들이 하나둘 깨어나며
몸이 조금 노곤노곤해집니다.
라비헨:(세상에 이런 게 존재한다고? 놀란 토끼눈으로 조용히 액체를 홀짝거린다. 컵이 바닥을 드러내서야 정신을 차리고는 머쓱하게 헛기침을 한다) 흠흠... 뭐, 먹을만 하네...
소한:그래, 더 달라고 하지 마. 귀한 거야.
라비헨:뭐?! 그걸 왜 지금 알려줘?
소한:왜, 문제 있어?
라비헨:다 마신 게 문제라고.
소한:방금은 먹을만 하다며.
라비헨:진작 알려줬으면 아껴 마셨을 거 아냐.
소한:마음에 들었나 봐?
라비헨:(흠칫) ...
(시선을 피하며) 아니, 그런 것까지는...
소한:그럼 앞으로는 나만 먹지, 뭐.
라비헨:싫어!
아.
(순간 너무 발끈했단 생각에 다시 상체를 뒤로 물리며) 그러니까 내 말은... 네가 분명 그랬잖아. "네 건 내 거고 내 건 네 거다." 라고.
그러니까 혼자서만 먹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소한:마음에 안 든다면서, 먹고는 싶고?
라비헨:귀, 귀한 거니까!
소한:(속이 훤히 보이는데도 계속 빽빽거리며 아니라고 하네) 그래. 먹고 싶으면 다음에 얘기해.
라비헨:그럼 지금 먹고 싶어.
소한:...
라비헨:왜.
뭐.
네가 얘기하라며.
했잖아. 지금.
소한:(한숨을 푹 쉬고는 도로 캔 마개를 다시 열고, 코코아 한 잔을 더 만든다)
(그리고는 컵에 다시 따라주며) 자.
라비헨:(새침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컵을 덥썩 받는다) ...
근데 넌 안 마셔?
소한:귀한 거니까. 음식이 없을 때 마셔야지.
라비헨:그러면... (주섬주섬 이가 빠진 컵을 꺼내 제 몫을 반 덜어서 준다) 나눠마시자.
소한:... (딱히 사양하지 않고 네가 내미는 잔을 받아든다) 그래.
홀짝, 홀짝...
조용히 마시는 소리만 동굴에 적막하게 울립니다.
바깥은 계속 눈보라가 몰아치고, 곧 해가 지기 시작합니다.
아무래도 근처에서 야영을 해야 할 것 같네요.
소한:(잔을 다 비우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삽을 챙겨든다) 안에 있어. 굴 파고 올게.
라비헨:굴을 판다고...? 그냥 여기서 자면 되는 거 아니야?
소한:괴물들 습격 받기 쉬워, 이런 곳은.
열을 감지해서 습격하니까, 눈 속에서 자는 게 오히려 안전해.
라비헨:엄청 잘 아네. 그러고 보니, 괴물 상대하는 것도 꽤 익숙한 것 같고.
소한:몇 가지 가설을 세우고 검증해봐서 잘 아는 거야. (삽을 어깨에 매고는 동굴 턱에서 멈춰서 뒤돌아본다) 기다려.
라비헨:'검증까지 했다고...? 대체 뭐하는 놈이야?' 어어...
자, 잠깐...나는 안 도와줘도 돼?
소한:넌 더 쉬어. (그렇게 얘기하고는 쌩 나가버린다)
라비헨:(덩그러니-) 뭐야...
이건 마치... 뭐랄까.
보호를 받는 기분이네요.
저 냉혈한이 그럴 리는 없겠지만.
당신이 따뜻하게 김 오르는 모닥불에
얼어붙은 몸을 계속 녹이고 있으면
온기 때문인지 눈이 나른하게 감겨옵니다.
이 혹한 같은 추위에 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일인지.
그러나 고단한 몸은 지칠줄을 모르고 당신을 계속
끝없는 잠의 심연에 빨아들이려 달려듭니다.
밖에서는 눈에 삽질을 하는 소리가 계속 들려오는데도 말이지요.
그렇게 잔을 다 비우고 꾸벅꾸벅 졸고 있으면,
어느 순간 삽질 소리가 멈추고 발소리가 다가옵니다.
소한:(삽에 눈을 적당히 담아 동굴 안으로 들어오다가 조는 네 모습을 발견하고는) 자?
라비헨:(꾸벅꾸벅 졸다가 흠칫 놀라 어깨를 들썩인다) 헉...! 아니?
소한:... (졸던 게 분명하군)
(그러거나 말거나 네 배낭에서 캔버스 천과 가죽 덮개를 꺼내고는, 삽에 퍼진 눈으로 모닥불을 덮어 불을 끈다. 그리고는 네 품에 배낭을 들리며) 천천히 나와.
라비헨:(네 뒤에서 하품을 하고는 눈을 꿈뻑거리며 뒤따라간다) 하암- '대체 밖에서 어떻게 자겠다는 건지... 굴을 파봤자 눈 속에서 자는 거 아닌가?'
끔뻑, 끔뻑...
눈을 비비며 동굴 밖으로 나와보면
눈보라는 제법 그쳐 있습니다.
소한의 뒤를 따라서 가다 보면 멀지 않은 곳에
사람이 한 명 정도 들어갈 크기의 눈 구덩이가 파여 있고
구덩이 아래쪽은 지면과 수평하게 굴이 만들어져 있네요.
대체 저기서 어떻게 자려는 건가 싶어 그를 바라보면
소한은 말려 있는 캔버스 천을 들고 먼저 내부로 들어가더니
무언가 쇳소리가 나는 것을 철컥철컥 연결합니다.
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잠시 기다리고 있으면 눈송이가 옅게 묻은 차림을 한 소한이
곧 구덩이 밖으로 나와 당신이 쥐고 있던 모포를 뺏어들고
가방을 끌고 다시 들어갑니다.
대체 뭘 하는지 알 수가 없네요.
당신이 구덩이를 그렇게 빤히 바라보고 있으면
곧 소한이 다시 밖으로 나옵니다.
소한:들어와. 잘 준비 해뒀어.
라비헨:'진짜 이런 데서 잔다고...?' (눈을 가늘게 뜨며) 진심이야?
소한:들어와보면 알아.
라비헨:'그래봤자 눈으로 가득한 구덩이 아닌가?' (미심쩍은 얼굴로 일단 들어간다)
당신은 눈이 쏟아지지 않도록 조심조심해서
구덩이 안으로 몸을 던집니다.
그렇게 높지는 않은 구덩이 안에 신발을 대고
안쪽을 살펴보면 안쪽은 제법
신기한 생김새를 하고 있네요.
단면이 반원형으로 둥글게 파인 굴 속으로
눈이 무너지지 않게 지탱하는 철사와 이음매가 보이고
그 위를 캔버스 천과 펠트 면이 덮고 있습니다.
천은 등 면이 차갑지 않도록 바닥까지 감싼 형태이고,
굴 가운데에는 모포가 놓여 있습니다.
문제라면, 겨우 1명하고도 반이 들어갈 정도의 크기라는 거겠죠.
소한:들어가서 누워.
라비헨:... (슬쩍) 좁아.
소한:어쩔 수 없어. 체온 유지하려면.
라비헨:내가 들어가면 넌 밖에서 자야 할 판인데.
소한:?
붙어서 잘 건데.
라비헨:(질색) 뭐?
소한:문제 있어?
라비헨:문제 많지.
소한:무슨 문젠데.
라비헨:네가 방금 문제를 말했어.
소한:붙어서 자는 거?
라비헨:그래.
소한:그럼 한 명은 얼어죽게?
라비헨:그러니까 좁다고 했잖아.
소한:어쩔 수 없어. 텐트 크기가 원래 이만해.
그리고 더 넓으면 냉기가 돌아.
라비헨:... 그럼 네 전 파트너랑도 꼭♥ 붙어서 안고 잤다는 말이야?
소한:(저 하트는 뭐지?) 그렇지.
라비헨:으...
소한:...
잔말 말고 들어가. 추워.
(네 가방을 뺏고는, 굴 입구에 던져둔다)
라비헨:성질 급하긴... (툴툴거리며 안으로 들어가 어색하게 쪼그려 앉는다)
소한:(그런 네 모습을 보고는 미간을 구기며) 누우라니까.
천장에 머리 닿으면 눈 무너질 수도 있다고.
라비헨:씨... '진짜 이 새끼랑 붙어서 자야 한단 말야?'
(불만 가득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말없이 어정쩡하게 눕는다) ...됐냐?
소한:어. (네가 누운 것을 확인하고는, 저도 굴로 들어가며 가죽 덮개로 입구를 막는다)
라비헨:'가족도 아니고 남자 둘이서 징그럽게... 하아...'
소한:(그런 네 생각은 전혀 모르고 네 옆에 드러누워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크게 숨을 내쉰 뒤, 모포를 끌어와 함께 덮는다) 이제 자.
라비헨:... 여기서 더 닿으면 밀어버릴 거야.
닿기만 해, 진짜...
소한:(어이가 없다) 너야말로 춥다고 끌어안고 자지나 마. (천천히 눈을 감고는 고른 숨을 내쉰다)
라비헨:흥...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천장의 낮은 곡선이 당신의 시야를 압박하듯 내리누릅니다.
캔버스 천 너머로 들려오는 눈보라 소리는 먹먹하게 변했지만,
좁은 공간 속에 갇힌 공기는 질척거릴 정도로 무겁군요.
당신은 옆에 누운 소한의 존재감이 너무나 선명해
차마 몸을 뒤척이지도 못하고 빳빳하게 굳은 채로 잠을 청합니다.
어깨부터 발치까지 어쩔 수 없이 맞닿은 소한의 체온이
겹겹이 껴입은 옷감을 뚫고 당신의 살가죽으로 스며듭니다.
내부는 점차 체온으로 따뜻하게 달구어지고
당신은 그 속에서 고단한 잠에 빠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