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살얼음

  





당신은 눈꺼풀 위로 쏟아지는 희미한 햇살에 정신을 차리며,
밤새 울어 퉁퉁 부어버린 눈을 조심스럽게 깜빡입니다.
밤새 거의 한숨도 자질 못했습니다.
함께 여정을 시작한 뒤로 아침이면 항상 소한을 껴안고 일어났지만
이렇게 잠 못 든 밤과 새벽에까지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어젯밤 당신의 가슴팍을 토닥이던 소한의 손길은 어느새
잠결의 뒤척임에 휩쓸려 저 멀리 가 있습니다.
어쩐지 이 거리가 자신들 둘 사이의 심리적 거리가 되어버린 것만 같은
서글픈 착각이 듭니다.
밤새도록 활활 타올랐던 벽난로는 장작이 떨어져 차갑게 식었고
침실 내부를 채운 건 냉골 같은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와
덮고 있는 이불에서 간신히 보존하고 있는 체온이 다입니다.
사방이 상당히 춥습니다.
라비헨:(퀭-) '불안한 생각 때문에 한숨도 못 잤다. 잠 자긴 글렀네... '
'어차피 쟤도 나랑 있기 불편할 것 같으니까 일어나야겠다.' (조심조심 소한이 깨지 않도록 천천히 일어난다)
라비헨:
민첩
기준치:75/37/15
굴림:29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당신은 조심조심 기척을 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벽난로에 꺼져버린 불씨를 도로 살리고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소한을 잠시 바라봅니다.
... 이제 예전처럼 돌아가긴 그른 걸까라는 생각이 스치자
가슴이 묘하게 시큰거리고 아려오네요.
라비헨:'어쩌겠어. 고백 철회해도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고...' (쩝- 하고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주방으로 향한다) '일어난 김에 밥이라도 차려놔야겠다.'
문 여닫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신경쓰며 복도로 나오자
급히 껴입은 방한복 사이로 냉기가 숭숭 파고듭니다.
살갗을 베어내고 뼈를 얼릴 것처럼 춥습니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소한이 큰 건물은 보온이 힘들어서
작은 건물보다 추울 수밖에 없다던 말이 생각나네요.
이전까지는 어떤 큰 건물에서 묵어도
소한이 옆에 늘 붙어 있어서 춥다고 느껴질 겨를이 없었다는 걸
이제서야 뒤늦게 조금 알게 됩니다.
이미 늦은 일 같지만.
당신이 뿌연 숨을 공기중에 내뱉으며 계단을 내려가고
오른쪽으로 돌아 어제 목욕을 했던 곳 근처의 부엌으로 향하면
어제 소한이 당신의 저녁 식사와 목욕물 준비를 한 뒤
적당히 늘어놓고 간 식재료들이 보입니다.
밀가루, 보리, 육포, 훈제 햄, 분유, 그리고 채소 몇 가지.
조리용으로 쓰는 설탕과 소금도 놓여 있네요.
...아침으로 뭘 만들어야 좋을지 고민됩니다.
라비헨:적당히 채소랑 햄이나 볶을까... 어차피 재료도 한정적이고.
밥 차려준 사람한테까지 화내진 못하겠지. (팔을 걷으며 요리를 시작한다)
라비헨:
Sleight of Hand Roll
기준치:50/25/10
굴림:40
판정결과:보통 성공
탁탁탁, 깍뚝썰기한 햄과 채소를 팬에 넣고
어디선가 찾아낸, 꽝꽝 얼어버린 고체 식용유를 부은 뒤
달그락달그락 볶고 있자니 맛있는 냄새가 납니다
그러고보니 소한은 늘 어떻게 신경을 썼는지
자주 빵을 구워다 주곤 했는데...
사실 밀빵은 만드는 것도 간단하지 않거니와
손이 많이 가고 조건도 까다롭습니다만
그렇게 공들여 빵을 구워오곤 했던 이유를
몰랐던 것은 아닙니다.
...티를 내지 않은 것뿐이지.
얼마만에 아침 식사를 만드는 건지도 모르겠군요.
코끝마저 찡하게 얼어붙는 이런 추위 속에서
팬을 흔들고 있는 것조차 고역입니다.
새삼 기분이 멜랑콜리해지네요.
라비헨:(킁-) 흐으으... 콧물마저 얼어버릴 것 같네...
라비헨:
Listen Roll
기준치:80/40/16
굴림:41
판정결과:보통 성공
열심히 팬을 달그락거리고 지글지글 소리를 듣고 있다보면
어디선가 문이 삐걱 열리는 소리가 납니다.
위에서 소리가 들린 것을 보아하니
소한이 잠에서 깨어난 모양이네요.
삐질...
얼굴 보면 무슨 말을 해야할지 잘 모르겠는데.
빨리도 일어납니다...
더 잘 것이지!
라비헨:'그냥 빨리 출발하자고 해야 하나... 어색해 죽을 것 같은데.'
소한:(별 생각없이 계단을 툭툭 내려와, 음식 냄새를 맡고 부엌으로 슥 들어간다)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긴장감이 부엌의 매캐한 연기와 함께 섞여 들어옵니다.
당신은 지글거리는 팬 소리에 집중하며 뒤도 돌아보지 못하지만,
등 뒤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발소리만으로도 소한이 곧
문가에 다다랐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소한은 어색함에 어깨를 바짝 움츠린 당신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별다른 말 없이 성큼성큼 다가와 당신의 옆자리를 차지합니다.
소한:(슬쩍 팬 안쪽을 바라보며) 아침 만들어?
라비헨:(몸은 뻣뻣하지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응. 일찍 일어난 김에...
소한:(네 손에 들린 팬 손잡이를 대신 손에 쥐며) 내가 할게. 넌 더 쉬어. ...눈 많이 부었다.
라비헨:뭘- 거의 다 했는데.
소한:(네 얼굴을 조금 안쓰러운 듯 바라보며) ... 괜찮아. 너 얼굴이 어떤지 알아? 완전 몰골이야.
라비헨:에이, 그 정도는 아냐! 그냥 잠을 잘 못 자서 그렇지.
소한:... 쉬어. 걱정되잖아.
라비헨:잠이 안 와서... 어차피 일어나려고 했어. 그 김에 이것저것 한 거고.
소한:알았어, 그럼 부탁할게. 그나저나... 잠도 못 자다니, 너답지 않네.
(평소처럼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려고 손을 올리다가, 어제의 일이 떠올라 잠시 멈춘다. 어제 네가 한 말에 제가 아무런 대답도 안 했던 게 생각나서)
라비헨:(손을 멈추는 걸 보고는) '역시 아직 안 풀렸구나.' ...
(억지로 입을 끌어당겨 웃으며) 어제 너무 재밌게 놀아서 그런가봐. 이렇게 넓고 좋은 집에서 자는 걸로 시간 보내기 아까워서...!
소한:(잠시 한숨을 쉬고는 네 머리카락을 마저 쓰다듬으며) ...애라니까. 그렇게 좋아?
라비헨:좋지. 이런 곳에서 잘 수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 했었으니까.
소한:(쓰담쓰담) 다음에 또 좋은 곳 발견하면 묵어가자.
라비헨:(익숙한 쓰다듬는 손길에 침울해졌던 마음이 조금 가시고 간질거린다. 머리통을 네 손에 좀 더 기대며) ... 그때도 나랑 같이 있을 거야?
소한:당연하지
내 파트너는 너뿐인데. (쓰다듬다가 살짝 고개를 기울여 뺨에 쪽 뽀뽀한다)
라비헨:...
(팬이 타지 않게 잠시 옆으로 치워두고 몸을 돌려 두 팔로 너를 안는다)
소한:...? (얘 왜 이래?)
무슨 일 있어? 오늘따라 앵기고. (말은 건조한 어투이면서도 몸으로는 저를 안는 너를 마주 안고 보듬어준다)
라비헨:없어. 그냥 이러고 싶어서...
'이렇게까지 건조할 일인가? 물론 내가 잘못하긴 했지만! 어차피 적도에 도착할 때까진 계속 같이 다녀야 하는 거 알면서!' (순간 억울해져서 안은 채 입술을 삐죽이더니 고개를 들어올린다) ...다시 말해줘.
내 파트너는 너뿐이라는 말.
빨리.
소한:? 뭘 당연한 걸 말하래. (이해 X)
(그렇게 말은 해도 일단 시키니까 하기는 한다) 내 파트너는 라비 너뿐이야.
라비헨:(삐죽) 영혼이 없어.
소한:난 원래 말투에 영혼 없어. (...)
라비헨:... 아직도 내가 마음에 안 들어?
소한:? (진심으로 이해 X) 그런 적 없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라비헨:어제부터 계속 건조하게 굴었잖아.
소한:(대체 무슨 소리지, 이게?) 그건 내 디폴트고. (;;)
내가 너 싫어진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그대로인데 그럴 이유 없잖아.
라비헨:원래부터 건조한 건 알지만, 어제 별다른 대답도 없었잖아.
그 후로는 뽀뽀도 안 했고...!
소한:...?
어제 너 혼자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더니 내 대답도 안 듣고 잘 자라고 했잖아.
그래서 나도 잘 자라고 한 건데. (진짜임)
뽀뽀는 하고 싶으면 네가 먼저 하면 되지. (이런 쪽에 둔함)
라비헨:그야...!
그거야... '사실이긴 한데.'
... (고개를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무서워서.
소한:뭐가 무서워.
(고개 숙인 네 정수리를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얘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알 수가 없네)
라비헨:네가
...
'왜 이해가 안 간다는 것처럼 말하는 거야? 먼저 쌀쌀맞게 굴었으면서!'
(입술을 말아넣었다가 눈을 감고 소리친다) 네가 후회한다고 할까봐 그랬다, 어쩔래...!?
(안았던 팔을 풀고 잔뜩 삐진 얼굴로 밖으로 향한다)
소한:... 내가 후회할 거라고 생각해? 그건 네 생각이지.
(단단히 토라져 휙 뒤돌아보이는 너를 물끄러미 보다가 어색하게 네 어깨에 팔을 두르고 품에 폭 끌어당긴다) 걱정이나 시키네. 못된 걱정꾸러기.
화났어?
라비헨:화났어.
내가 못됐어? 나도 알아. 내가 너한테 잘한 거 하나도 없다는 거!
그래도 잘 지내고 싶어서 노력했는데 이해가 안 간다는 것처럼 굴고! 나는 내내 걱정했는데...!
... (지금도 딱히 잘하는 것 같지는 않아서 답답한 숨을 내쉬고는, 네 팔을 풀으려 한다) 잠깐만 바람쐬고 싶어.
소한:(언제는 얼굴 보고 푸는 게 좋다더니, 변덕도 심하다는 생각만 든다) ...알았어. (놔두면 괜찮아지려나 싶어 순순히 너를 놔준다)
라비헨:'대화로 풀려고 해도 무미건조하게 반응한 게 누군데. 바보 멍청이 소한. 다시는 먼저 말 안 걸을 거야!!' (밖으로 나간다)
소한의 품에서 벗어나 차가운 복도로 걸음을 옮기는 당신의 등 뒤로,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시선이 전해지다 맙니다.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억울함과 민망함에 홧김에 밖으로 발을 내디디지만,
살을 에듯 파고드는 바깥 공기가 오늘만이라도 당신의 편이 되어줄 리 만무합니다.
성채의 거대한 정문을 밀고 나오자마자,
끝이 보이지 않는 하얀 지옥이 당신의 시야를 가로막습니다.
북받치는 서러움에 눈가가 시큰거리지만,
지금 울면 눈물이 뺨 위에서 그대로 얼어붙겠죠.
'내 파트너는 너뿐이야'라고 말하던 소한의 건조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지만,
당신이 원했던 건 그런 사전적 의미의 대답이 아니었음을 그는 정말 모르는 걸까요.
당신은 무릎까지 쌓인 눈 위를 의미 없이 걷어차며,
자신의 불안을 '못된 걱정'이라 치부해버린 소한의 무심함에 다시금 울컥하고 맙니다.
그가 뒤따라 나와 다시 한번 당신을 붙잡아주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저를 혼자 내버려두는 그의 단호함에 가슴이 시커멓게 타들어 갑니다.
라비헨:(중얼) 후회되지 않는다고 했으면서.
괜히 다정하게 대해서 기대하게 만들고...
그러니까 쭉 건조하게 대했으면 좋았잖아.
(답답한 마음에 눈을 둥글게 뭉쳐서 바깥으로 휙- 던지기를 반복한다)
분노를 담아 허공으로 날려 보낸 눈뭉치들이
포물선을 그리며 하얀 눈밭 위로 흩어집니다.
당신은 차갑게 식어가는 손마디조차 잊은 채,
보이지 않는 소한의 가슴팍이라도 때리는 기분으로 연거푸 눈을 뭉쳐 던집니다.
그렇다고 기분이 풀리지도 않을 거면서.
그렇게 얼마나 툭툭 눈뭉치를 던져대고 있었을까,
당신이 던지던 눈뭉치가 언덕 너머 적막을 깨트리며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에 텅- 부딪힙니다.
동시에 눈더미 속에서 기괴한 관절 꺾이는 소리와 함께,
하얀 거죽을 뒤집어쓴 빙식체가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몸을 일으킵니다.
심장이 발끝까지 떨어지는 기분과 함께,
본능적인 공포가 머릿속의 서러움을 단숨에 집어삼킵니다.
당신은 비명을 삼키며 성채의 거대한 정문을 향해 필사적으로 달려가
육중한 문고리를 잡아당깁니다.
하지만 당신이 문을 나서며 밖으로 스며나왔던 공기가
바깥 냉기에 서리 맺힌 듯 문 틈 사이로 얼어붙어
쉽사리 열리지를 않네요.
라비헨:(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착각이 들 정도로 식은땀이 흐른다) 'X됐다.' ㅅ, 소한!
(미친 듯이 문을 두드리며) 소한! 소한!!!!
소한:
Listen Roll
기준치:50/25/10
굴림:96
판정결과:실패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문을 두드려봐도 내부 소리는 요지부동입니다.
좆됐습니다, 이걸 어쩌죠?
당신이 절박하게 문을 쾅쾅 두드려대고 있으면
눈바닥을 긁는 직- 직- 소리가 점차 가까워집니다.
라비헨:하아- 하- (점점 가까워지는 소리에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리고 숨이 턱-하고 차오른다) '어쩌지? 어떻게 해야...!'
(주위를 빠르게 둘러보고 쓸만한 것이 있는지 살핀다) '어차피 저 놈들은 열을 감지해서 숨는 의미가 없어. 뭐라도 던져서 소음을 일으켜 소한을 나오게 하는 수밖에.'
라비헨:
Spot Hidden Roll
기준치:55/27/11
굴림:31
판정결과:보통 성공
급히 주변을 살피던 당신의 눈에 성벽 한 구석에 방치되고 있던
녹슨 철제 횃대와 비어있는 대형 철제 기름통이 보입니다.
기름통 내부는 속이 비어 있어 강한 충격을 가하면
성채 내부까지 울릴 만한 공명음을 낼 수 있을 것 같네요.
라비헨:(다급하게 횃대를 들고 철제 기름통을 향해 젖먹던 힘까지 짜내 내려친다) 제발 이 방법이 먹혀야 할텐데!
라비헨:
기준치:55/27/11
굴림:22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깡-!! 깡-!!
당신의 얇은 팔목이 부러질 듯 비명을 지르지만,
횃대를 쥔 손에는 더욱 지독한 힘이 들어갑니다.
텅 빈 기름통이 비명을 지르듯 내뱉는 날카로운 공명음이
차가운 공기를 찢고 성벽을 타고 흐릅니다.
당신은 이 소리가 무심한 소한의 귓가를 사정없이 때려주기를,
그가 들고 있던 컵을 내던지고 달려나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빙식체는 고막을 찌르는 이질적인 금속음에 기괴한 소리를 내며 잠시 주춤거리는 듯하군요.
하지만 그것도 찰나, 소음보다 더 강렬한 당신의 뜨거운 체온이
괴물의 포식 본능을 다시금 일깨웁니다.
괴물이 바닥을 낮게 기며 뒷다리에 힘을 주는 것이 보이자,
등 뒤로 소름 끼치는 공포가 해일처럼 밀려옵니다.
당신은 눈물이 맺힌 눈으로 굳게 닫힌 철문을 돌아보며,
제발 그가 이 소란의 의미를 알아채 주길 빌며 다시 한번 횃대를 내리칩니다.
기름통이 찌그러지며 내는 거친 소음 사이로,
당신의 거친 숨소리와 괴물의 직- 직- 거리는 발톱 소리가 뒤섞여
지옥 같은 불협화음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빙식체의 붉은 안광은 그런 당신의 희망과 무관하다는 듯
당신의 턱끝까지 다가와 곧바로 팔을 뻗습니다.
빙식체의 거칠고 어둑한 거죽이 눈앞을 가득 메우고,
썩은 살점이 얼어붙은 듯한 역한 악취가 당신의 코끝을 찔러옵니다.
괴물의 날카로운 손톱이 당신의 목덜미를 찢어발기기까지
고작 몇 초 남짓만 남은 시점입니다.
모든 생각들이 슬로우모션처럼 지나가는 듯한 착각이 듭니다.
건물 잔해에 깔려 죽은 부모님 하며, 얼어붙어가던 로만, 소한이 당신에게 쥐여줬던 코코아 한 잔.
비명조차 되지 못한 말들이 목구멍 너머에서 맴돌고,
당신의 뺨 위로는 공포에 질린 뜨거운 눈물이 속절없이 흘러내립니다.
그렇게 죽음의 한기가 살갗에 닿으려는 찰나,
모든 정적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폭음이 성채 전체를 뒤흔듭니다.
탕-!!
날카로운 화약 냄새가 차가운 공기 속에 비산하고,
당신의 머리 위를 덮쳤던 빙식체의 육중한 몸이 힘없이 옆으로 고꾸라집니다.
괴물의 머리통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푸르스름한 연기가 공중을 메우며
기괴한 경련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당신이 떨리는 몸을 가누지 못한 채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면,
성채 2층의 유리창을 박살 내고 몸을 내민 소한이 보입니다.
평소의 무심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살벌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머스킷 총을 쥐고 있습니다.
총구에서 피어오르는 회색 연기가 그의 차가운 눈빛과 어우러져
마치 전장 속의 사신 같은 위압감을 뿜어냅니다.
소한은 당신의 무사함을 확인하려는 듯 거친 숨을 몰아쉬며 창문틀을 움켜쥐고는,
이내 총을 급히 바닥으로 내던지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곧,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꽝꽝 얼어붙었던 성문이
어거지로 활짝 열립니다.
소한:하아... 문짝 한 번 더럽게 열기 힘드네. (짧게 숨을 토해내고는, 네게 급히 다가가 안위를 확인한다) 괜찮아? 안 다쳤어?
라비헨:(잔뜩 긴장했던 탓에 입술이 달달 떨리고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ㅅ, 소한, 나, ... 나는...
소한:(네가 벌벌 떠는 듯하자 급히 몸을 부둥켜 안고 품에 번쩍 안아든 채 안으로 향한다) 응, 괜찮아. 다 괜찮아, 라비. 쉿.
소한의 단단한 팔이 당신의 겨드랑이 사이를 파고들어,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당신의 몸을 가볍게 번쩍 들어 올립니다.
금방이라도 빙식체에게 찢길 것 같았던 공포가 그의 묵직한 체온에 닿는 순간,
참았던 울음이 그의 어깨 위로 마구잡이로 쏟아집니다.
조금 전까지 저를 밀어내던 그 건조함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당신의 심장 박동을 확인하려는 절박함만이 몸짓에 가득합니다.
소한은 그렇게 당신을 품에 안은 채 설원을 뒤로하고 서둘러 성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고는
급히 발로 문을 걷어차 닫아 버립니다.
육중한 철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지옥 같던 바깥의 소음이 차단되자,
비로소 소한의 안전한 품 안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그는 당신을 품에 안은 채 당신의 입술이 보랏빛으로 질린 것을 발견하고는,
고통스러운 듯 미간을 일그러뜨리곤 가장 따뜻한 근처 벽난로 앞으로 향합니다.
그리고는 제 겉옷까지 벗어 당신을 겹겹이 감싸네요.
소한:(많이 무서웠나 본데... 위로에는 소질이 없는지라 어색하게 너를 끌어안고 토닥이며 보듬는다) ...괜찮아, 별 일 아니야. 미안해, 진작에 못 알아채서.
라비헨:(훌쩍거리는 소리를 내며 코를 먹는다) 아, 아니야. 내가 흑... 괜히 눈을 던져서, 미안, 해...
소한:(품에 마주 안고 꼭 끌어안은 채로 등을 다정하게 토닥이며) ...놀랐겠네.
내 귀염둥이, 뚝.
라비헨:(익숙하고도 낯간지러운 "귀염둥이"란 말에 무슨 스위치라도 눌린 것마냥 더욱 서럽게 운다)
소한:... (식은땀;; 어째 더 우는 것 같은데) ...아침 먹고 코코아 마실까, 라비?
라비헨:(울면서도 고개를 끄덕끄덕거린다)
소한:(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어가는 네 얼굴을 빤히 보다가 거리끼는 기색 하나 없이 네 얼굴 곳곳을 곱게 손등으로 문질러 닦아준다) 옳지, 예쁘다.
라비헨:(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은 듯, 웅얼거리며 고개를 젓는다)
소한:(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은 듯 고개를 가로젓는 너를 보며) 거울 뺏지 말 걸 그랬어. 본인 예쁜 줄 모르니까 자꾸 이상한 소리나 하지.
라비헨:(훌쩍) 너나, 이상,한...소리, 하지, 마...
소한:내가 뭘. 내 애인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건 당연한 거 아냐? (쓰담쓰담 보듬보듬)
라비헨:(훌쩍22) 애인, 맞아...? 나는 맨, 날... 너한,테, 못된 말,만 하는, 데...
소한:(얘 진짜 바보구나(이제는 바보인가?라며 물음표도 안 붙임)) ...언제는 안 그랬어? 사귀기 전에도 그랬잖아.
...너 그런 사람인 거 알고도 좋아한다고. 이걸 말해줘야 알아?
라비헨:(훌쩍훌쩍 찡얼찡얼) 내가 어떻,게 알아?!
나 때문, 에... 기분 상,한 티, 팍팍 냈, 잖아...
소한:그거야 잠깐이고... 1분도 안 갔어. (;;)
라비헨:(찡얼찡얼)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구...
소한:(이 멍청이 바보 똥개 같은 놈...)
...사랑한다고. 그러니까 좀 믿어.
(이런 단어를 자발적으로 내뱉는 게 민망해서 시선을 슬쩍 피한다)
라비헨:(울다가 갑자기 뚝 그치며) ... 진짜?
소한:(끄덕끄덕...)
라비헨:안 미워?
소한:안 미워.
라비헨:실망하거나 후회하는 것도 아니야?
소한:(고개를 내저으며) 전혀.
라비헨:...
그럼 믿을게.
소한:(아직까지도 민망해서 어색해 죽을 것 같다) ...응. 이젠 기분 괜찮아?
라비헨:(끄덕끄덕)
소한:귀엽긴... (너를 꼭 끌어안고 양뺨에 입술을 대고 쪽쪽 소리를 낸다)
라비헨:거기 말고...
입에다 해줘.
소한:(상상도 못한 말에 속이 울컥거리며 심장 소리가 쿵쿵 울려댄다) ...응. (숨을 가늘게 쉬느라 벌어진 입술을 주체하지 못한 채로 조심스럽게 다가가 살포시 입술을 겹친다)
라비헨:(입술이 닿는 동시에 속눈썹이 스르르 내려앉고 네 손을 찾아 제 손과 겹친다)
소한:(심장이 날뛰다 못해 입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아서 평소와 달리 가볍게 뽀뽀 정도로 마무리하고 입술을 뗀다. 뺨이 뜨거워서 터질 것 같다) ...
라비헨:(고작 몇 시간 안 한 건데도 오랜만인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작게 웃음소릴 내며 아이처럼 활짝 웃는다) 하하...
좋아.
(너를 소중하게 꼭 안고 어리광부리듯 네 품에 머리를 비빈다) 좋아해, 소한...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를.
소한:(꽃처럼 활짝 만개한 네 웃음을 멍하니 입 벌리고 바라만 보다가, 좋아한다는 말에 뻣뻣-하게 굳어 기름칠 덜 된 기계처럼 덜그럭덜그럭거리며) ㅇ, 안, ㅇ, 그래.
라비헨:(장난) 넌 안 좋다고?
소한:ㅈ, ㅎ, 지... (덜그럭덜그럭22222)
라비헨:뭐라는지 안 들려.
소한:조, ㅎ, 좋, ㄷ다고...
라비헨:...?
너 왜 그래?
소한:...
...
몰, 라...
(외면)
라비헨:... 너 지금 얼굴 엄청 빨개.
소한:(한차례 크게 심호흡하며 진정하고는) ... ㄴ, 너 때문에 심장 터지겠잖아...
라비헨:정말?
(악의없이 귀를 네 가슴팍에 갖다대며) 나도 들어볼래.
소한:ㅅ,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투덜거리면서도 가만히 놔둔다(...))
라비헨:와- 진짜 걱정될 정도로 엄청 뛰네...
(표정을 빤히 구경하다가 귓가에 대고) 소한- 좋아해-
소한:(네 속삭임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죽 돋아 파르르 떨며) 알ㅇ, ㅏ...! 방금 말했잖아... (얼굴이 너무 뜨거워서 푹 수그린다)
라비헨:그럼 말하지 마? "좋아한다"는 말.
소한:ㅅ, 그건 싫어. (단호하게 말하고는 네 작은 몸에 꼭 매달린다)
라비헨:그럼 언제 한 번 해? 하루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아니면 한 달에 한 번 할까?
소한:(얼굴이 시뻘개져 있음) ... 너-하고 싶, 을 때...
라비헨:'귀여워.' 그럼 다음에도 이렇게 심장이 뛸 거야?
소한:... (체념) 그거야, ...그렇겠지... 그만 놀려...
이쪽은 부끄러워 죽겠다고...
라비헨:그럼 뽀뽀도 나중에 해?
소한:...
(힐끔 시선만 올려 네 눈동자를 스치듯 보다가 네 입술로 번갈아 보며) ... 뽀뽀를 나중으로 미루는 게 어딨어.
라비헨:그치만 네가 죽을 것 같다며.
(꼬옥-) 죽으면 안 돼, 소한.
소한:(투덜투덜) ...나 죽을까봐가 아니라 놀리느라인 거잖아. 내가 바보냐?
라비헨:(잠깐 고민하는 척) 음- 지금은 바보가 맞는 것 같아!
소한:... 흥. (새침하게 고개를 돌려버린다)
라비헨:고개 돌리면 뽀뽀 못 해.
소한:(네 말에 잠시 흠칫해 쭈뼛거리다가, 삐그덕거리며 다시 고개를 슬금슬금 정면으로 돌린다) ...
라비헨:(널 안은 채 스스럼없이 쪽쪽 버드키스를 남기고는 네 품에 뺨을 비빈다)
소한:(일련의 짧은 키스와 애교를 받다가 혈압과 심박수가 천장도 모르고 치솟아 너를 마주 끌어안고 끙끙거리며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씨발, 너무 좋은데 죽을 것 같아)
라비헨:'심장 소리 엄청나게 크네. 진짜로 저러다 죽는 거 아니야?' (조금 걱정됨)
소한:(가면 갈수록 얼굴이 새빨간 홍시처럼 푹 익고 열이 펄펄 끓기 시작한다)
라비헨:...?
(잠깐 상체를 뒤로 물리고) 너 진짜 몸이 뜨거워.
소한:... (꾸역꾸역 붙잡아 안으며) 주변이 추워서 그래, 추워서.
라비헨:난로 앞인데도 그래? 큰일이네.
소한:(뻔뻔하게 구라까기) 성이 너무 커서 보온이 안 되잖아. 게다가 어제는 너랑도 떨어져 자서, 체내 심부 온도도 낮아졌어.
라비헨:(피식) 그게 내 탓이야? 자면서 알아서 거리 벌리던데?
소한:그런 적 없어. (진짜 없다)
라비헨:그래, 그런 걸로 해줄게.
... 근데 나 슬슬 배고파.
소한:...
라비헨:계속 안고 있을 거면 먹여주든가.
소한:...응. (저도 떨어지기는 싫어서, 접시에 담아서 식지 않게 벽난로 옆에 둔 식기를 들고 햄과 채소를 콕콕 포크로 찔러 네 입가에 내민다)
라비헨:뭐야, 반은 농담이었는데 진심이야?
소한:? (끄덕)
라비헨:너도 참...
(입을 벌려 네가 내민 음식을 받아먹는다)
소한:(그런 네가 귀엽기 짝이 없어서 음식을 입에 쏙쏙 넣어주며) 다 먹고 코코아 먹고, 올라가서 나도 좀 먹자.
라비헨:(냠냠) ? 뭘 먹어?
소한:어제 못 먹은 거.
라비헨:어제 못 먹은 ㄱ...
아.
(슬쩍) ...기억력 되게 좋네.
소한:중요(?)한 거니까. 기억하지.
라비헨:... '이 녀석, 엉덩이 먹으려고 살려준 거 아니야?'
'천천히 먹어야겠다.' (일부러 평소보다 골고루 씹어먹는다)
.
.
.
소한:(슬쩍 입술을 떼어내며) 잘 먹었어, 라비.
라비헨:(얼굴에 김이 모락모락 난 채로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며 웅얼거린다) 드디어 만족했구나...
소한:(끄덕거리고는 네 비문에 두어 번 쪽쪽거리고는, 완전히 몸을 일으켜 네 옆에 눕는다)
라비헨:바지... 바지 입을래... (힘이 쪽 빨린 사람마냥 퀭한 눈으로 네가 벗긴 속옷과 바지를 주워서 다시 입는다)
소한:(네가 도로 옷 입는 모습을 빤히 보다가 손을 뻗어 거시기를 한 번 주물럭거리고는 손을 미련없이 뗀 뒤 하품한다) 조금 쉬다 출발하자.
라비헨:히익...! 왜 만져!
네 거시기나 만지란 말야!
소한:싫어. 네 거가 좋아.
라비헨:ㅈ, 주인 허락도 안 받고 만지는 건 실례라고!
소한:너 내 거잖아. (뻔뻔)
라비헨:그 논리면 나도 네 거 확 만져버린다?!
소한:그래. (덤덤)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책임질 각오가 있으면.
라비헨:... (삐질...)
이건 불공평해!
소한:뭐가 불공평한데?
라비헨:내 건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데, 네 건 만지면 뒤까지 책임질 생각을 해야 하는 게...!
소한:나도 너 책임질 생각 하고 만지는데. (진짜임)
라비헨:너는 뭘 책임지는데?
설마... 발기하면 도와주겠다는 걸 책임진다고 얘기하는 거야?
소한:... 그런 거 아냐. (바보)
라비헨:그러면?! (바보 맞다)
소한:너... 진짜 바보야?
라비헨:...
'진짜 모르겠는데.' 히, 힌트...!
소한:(한숨 푹) ...미래 얘기야.
라비헨:(깜-빡) 미...래...?
소한:(보아하니 짚이는 게 없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아닌가? 얘는 내 상상 이상으로 바보니까 모를 수도) 후우... 일단 쉬자. 나가기 전 체력 보충해야지.
라비헨:'미래? 고추 잡는데 무슨 미래를 책임지는 거지?' (진짜 모름) 어어...
소한:(네 허리를 꼭 붙들어 안고 얕게 낮잠을 청한다)
라비헨:(멍한 얼굴로 미-래- 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크게 띄워놨다가 역시 모르겠어서 같이 잠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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