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조난 사건

  





소한의 고향 마을을 나선 지 벌써 한 달,
함께 여정을 나선 지 벌써 두 달째입니다.
당신은 소한과 꼭 ♥ 끌어안은 채로 눈을 떠
조심스럽게 작은 한숨을 내뱉어봅니다.
고향에서의 사건 이후부터 어쩐지
소한은 마치 분리불안이라도 걸린 것처럼
당신에게 툭하면 밀착하고 있기 때문이죠.
잠들기 직전부터 몸을 꽉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는다던지,
툭하면 손을 잡고 머리를 쓰다듬는다든지...
식사를 할 때면 당신의 몫을 먼저 챙겨주거나
먹기 힘든 음식의 경우 뼈나 가시를 다 발라준다든지...
소한은 "추워서 붙어자야겠다", "면역력이 약해진 것 같다",
"네가 빨리 먹어야 출발 시간이 빨라진다" ... 같은 말들을 하지만
그게 한 달이나 지속되고 있다 보니
변명이나 꼼수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소한:(네 한숨 소리에 조심스럽게 정신이 들지만, 품을 놓아줄 생각이 없어 도로 자는 척한다) ...
라비헨:...야.
소한.
깨어있는 거 다 알아.
소한:... (꿋꿋이 자는 척)
라비헨:언제는 빨리 출발하자고 독촉하더니...
언제까지 날 손난로처럼 쓸 작정이야?
목에 난 상처는 다 나았으면서!
소한:(여전히 자는 척 꾸물꾸물) ...
라비헨:'대체 왜 이러는 거야?!' 허- (눈을 가늘게 뜨며 네 옆구리를 콕 찔러본다)
소한:읏... (옆구리가 찔리는 감촉에 툭 신음했다가, 수습하긴 어렵겠다는 생각에 눈을 깜빡깜빡 뜬다) ... 좋은 아침, 라비.
라비헨:그래, 좋은 아침.
이 거짓말쟁이야.
소한:... 무슨 소리야. 아침부터. (시치미 뚝)
라비헨:이제는 시치미까지?
대체 그 면역력은 언제 회복되는 거야?
너 튼튼한 거 다 알거든?
소한:(시치미 뚝 2222) 난 너만큼 추운 곳에서는 안 살아봐서, 면역력이 더 낮은 건 맞는데. 어릴 때 성장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이런 건.
라비헨:참나- 혼자서 잘만 버텼으면서 무슨...
소한:(꾸물거리며 도로 파고든다) ... 10분만 더 자자.
라비헨:(슬슬 기분이 이상해서) ...진짜 친한 친구끼리 이러는 거 맞아?
너무 딱 붙어서 자잖아.
소한:극한의 환경에서 살기 위해 못할 건 뭐야. (뻔뻔하게 네 등에 팔까지 두른다)
라비헨:아- 그래-?
(굴이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만 눈을 조금 긁어서, 슬쩍 소한의 등허리에 집어넣는다)
소한:읏... 차가. 뭐해.
라비헨:장난.
소한:장난꾸러기. (툴툴거리며 인상을 쓰고는 눈을 툭툭 털어내고, 너를 다시금 푹 끌어안는다)
라비헨:'이래도 꼭 붙어있네... 고집불통...' (눈뭉치 조금으로는 통하지 않는 건가. 차가운 건 안 먹히니 뜨거운 걸 시도해보는 수밖에. 골려줄 마음으로 소한의 상의 안에 손을 넣고 간지럽힌다) 이래도 안 일어날 거야? 어?
소한:(잠잠히 옷 속에 파묻혀 있던 피부 속으로 뜨거운 손이 밀려들자, 별안간 몸을 빳빳이 굳히고 몸을 파르르 떨며 웅크린다) ㅇ, 흣... 10분, 10분만이라고 했잖아...
라비헨:(간지럽히던 것을 멈추고 손을 빼낸다) 진짜 10분만이야.
갑자기 왜 이렇게 느긋해졌나 모르겠네.
소한:(꾸물꾸물) ...넌 몰랐겠지만 난 원래 잠이 많았다고.
(잠시 얻어낸 유예에 따뜻하게 숨을 고르며) 10분 뒤 봐, 라비. (너를 폭 끌어안은 채로 다시 잠을 청한다)
라비헨:내가 지 곰인형인 줄 아나... (어이x)
에휴... 그래. 자자. (마저 눈을 붙인다)
어떻게든 다시 잠을 청하려고 하면
소한의 팔이 당신을 포근하게 감싸 안습니다.
분명... 처음엔 당신의 잠꼬대가 먼저였을 텐데.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거죠?
그렇다고 무언가 사심이 담겼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것이
마을에서의 짧게 다가왔던 입맞춤 말고
무언가 접촉에 더 진전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입술이 다가온 건 그때가 마지막이었고,
그저 그 이후부터 몸이 밀착되어 있는
빈도수가 늘었을 뿐이죠.
눈에 띄게 잦아진 게 문제지만...
소한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가끔 열이 오르는지 얼굴이 붉어지는 걸 빼면
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니까요.
짐작이 갈 턱이 없습니다.
라비헨:(멍-) '소한이 적도에서 정말 결혼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얘 마누라 될 사람은 진짜 힘들겠군...'
'친구한테도 이렇게 고집불통이니 배우자에겐 어떻겠어.'
그러거나 말거나
맞닿은 가슴팍과 끌어당겨 묻힌 뺨에서 느껴지는 체온은
따뜻하기 그지 없습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꽉 붙어서 자게 되려나 싶네요.
인간 손난로가 된 기분입니다.
그리고 소한은 그 손난로를 아주 애용하는 중이고 말이죠.
라비헨:'너무 잘 애용해서 사용료라도 받아야 할 판인걸.'
소한:(10분만 더 자겠다고 해놓고는, 제 품에 꼭 끌어당겨진 네가 숨쉬는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는 중)
라비헨:'얘가 진짜 결혼할 수 있을까?' 흠... (머릿속에서 소한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를 까맣게 칠해진 얼굴의 여자와 결혼식을 올리는 상상을 한다. 행복하게 웃고, 신부는 부케를 던지고... ) 으... '진짜 이상한데.'
소한:(...얘 대체 무슨 소리를 내는 거야? 의문이 들지만 따뜻하고 적당히 말랑한 네 체격이 좋아서 가만히 붙은 채로 떨어지지 않는다)
라비헨:(힐끔) 소한, 너는 이상형이 어떻게 돼?
안 자는 거 다 알아.
소한:(삐질) ...
...
갑자기 이상형은 왜.
라비헨:전에 그랬잖아. 적도에 가서 좋은 사람 있으면 결혼하고 싶다고.
소한:그랬지.
라비헨:외로움 잘 타기도 하고, 독거 노인이 되는 것도 싫고.
그렇다는 건 너도 "좋은 사람"의 기준이 있다는 거 아냐?
소한:... 뭐... 특별한 건 없는데. 다른 사람이랑 비슷할걸. 적당히 귀엽고 예쁘고 착하고 사려깊고.
똑똑하면 더 좋긴 하겠지.
라비헨:그렇구나... 네가 결혼하는 게 상상이 안 가.
소한:...적도까지 아직 한참 남았는데, 김칫국 마시는 꼴이네.
라비헨:결혼 얘긴 지가 먼저 꺼냈으면서... (툴툴)
소한:그거야 네가 술 마신 상태에서 얘기 좀 더 하자고 해서 꺼낸 말이고.
...
(마저 툴툴거리려다가 슬쩍 너를 내려다보며) 자기 주관 강한 사람이면 더 좋긴 하겠어.
라비헨:그런 사람은 많지 않나? (갸웃)
근데 조건 되게 까다롭다.
귀여운데 예뻐야 하고 착하고 사려깊기까지 한데 똑똑해야 하고.
평생 네 이웃으로 살아줘야겠네...
소한:못 찾으면 결혼은 안 하면 되지.
(툭) 평생 갈 이웃사촌이 있다는데.
라비헨:내가 결혼할 거란 생각은 안 하나 봐?
소한:... (순간적으로 네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상상을 했다가 심기가 조금 불편해진다) 결혼하면 약속 깨고 가는 거였어?
라비헨:약속을 깨진 않겠지. 결혼한다고 집 위치까지 옮길 순 없잖아.
소한:그럼 뭐... (한결 안심하며 너를 더 꼭 끌어안는다)
라비헨:이웃이 되긴 할 건데 너랑 놀아줄 시간은 없겠지, 아무래도.
소한:...
...
그건 싫은데.
라비헨:?
소한:말만 이웃이잖아.
라비헨:그럼 자식들이라도 보내? "얘들아- 소한 아저씨란다-" 하고서?
소한:... (상상하고는 얼굴이 파삭 구겨진다) 나를 보육 담당으로 쓰는 거잖아, 그건.
라비헨:까다롭네. 외롭고 이웃도 있어야 하고, 애를 보내는 건 안 되고.
그렇게 생각하니까 역시 넌 결혼하는 게 좋겠다.
소한:너, 너 편하자고 나 결혼시키려는 거지.
라비헨:(능청스럽게 어깨를 들어올리고는) 아니지- 당연히 널 엄청엄청 생각해서 나온 말이라고.
소한:... (심기불편)
라비헨:(장난스럽게 네 등을 쓰담쓰담해주며 네 품에 뺨을 비빈다) 우리 소한... 이렇게 외로움을 잘 타는데 혼자 살면 얼마나 슬프겠어?
소한:(등을 토닥이는 손길과 제 품에 뺨을 비비는 너를 힐끔 보며, 입술이 둥글게 안쪽으로 말린다) ...
라비헨:조건이 좀 까다롭긴 해도 열심히 찾는 수밖에-
소한:... 그래. 열심히 찾아보든가.
(꼭 붙은 채로 네 정수리에 뺨을 댄다)
라비헨:그래그래- 우리 소한- (오구오구)
만약 네 이상형에 부합하는 사람을 결혼 적령기가 넘어서도 못 찾으면 우리 집(결혼했다는 가정)에서 사는 것도 허락해줄게.
소한:(건성으로 듣고는 끄덕끄덕거린다)
(...가 뒤늦게) ...근데 갑자기 웬 애 취급?
라비헨:그야 너랑 결혼할 사람 찾으려면 까마득하니까 그렇지. 사실상 우리 집에서 사는 게 확실할걸.
애 취급 싫으면 안 하고.
소한:... (슬쩍 딴청부리듯) 애 취급은 싫은데, 같이 사는 선택지는 괜찮네. 그거 해.
라비헨:...? 내 자식이랑 마누라랑 같이 한 집에서 사는 게 좋아?
소한:...
마누라 딸리고 애 딸린 집에 초대하는 거였어? 가족들 의사도 없이?
라비헨:아직 가족들이 없는데 어떻게 물어봐?
생각만 해본다는 거지.
소한:나 달고 결혼한다고 하면 어차피 다 도망갈걸.
라비헨:그런가...
소한:(끄덕)
라비헨:그치만 우리 소한- (슬슬 재미붙어서 열심히 등을 쓰다듬는다)
밥도 잘하고, 손재주도 좋은데.
소한:(뭐지? 이렇게 애 다루듯 어르고 달래고) 나 너보다 여섯 살이나 많은 거 기억은 해?
라비헨:그럼~ 당연히 알지.
에휴... 예쁘고 귀엽고 똑똑한 여자가 부디 소한을 좋아해야 할텐데.
소한:(뭐지? 은근 자존심 상함) 안 좋아할 건 뭐야.
라비헨:넌 표현을 잘 못하잖아.
소한:(정곡 찔림) ...
라비헨:사람은 표현을 잘하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소한 너, 생각해봐.
집에 들어왔는데 눈길만 휙 주고, "왔어?" 하는 배우자랑-
재빠르게 너한테 와서 "왔어? 사랑하는 남편-" 하는 배우자랑 누가 더 좋아?
소한:흠... (얼굴이고 몸이고 새까맣게 칠해진 가상의 사람이 네 말대로 하는 걸 생각하고는 진절머리 낸다) 으
둘 다 싫어.
라비헨:...?
그럼 결혼을 어떻게 하게?
소한:마음에 안 들면 안 할 거라니까.
라비헨:독거 노인 확정이네..
소한:그래, 끼고 살아라.
라비헨:상상하니까 이상한데.
소한:뭐가?
라비헨:그러니까 미래의 내 집에는... 배우자랑, 너랑, 언젠가 키울 강아지랑... 자식들이 산다는 거잖아.
이거 맞아?
소한:넌 어째 결혼을 하는 게 확정이라는 것처럼 들린다?
라비헨:(으쓱) 난 딱히 취향이 까다롭지 않아서.
산 사람이 있을 지가 문제지.
소한:웃기네... 살아있기만 하면 아무나랑 결혼하게? 마음이 가야 하지.
라비헨:그건 당연하지.
소한:너 연애는 해봤어?
라비헨:(생각x) 응? 전혀.
소한:난 취향이 까다로워서 못했다 쳐도, 너도 성인 될 때까지 연애 못한 거면 의외로 취향 까다로운 거 아냐?
라비헨:난 깡촌 사람이잖아. 내 또래는 별로 없었다고.
소한:흠...
흐음...
라비헨:왜?
소한:(생각 포기) 그래. 그렇게 생각해라.
라비헨:뭔데? 그 대답.
소한:그럼 네 이상형은 뭔데.
뭐긴. 그렇게 생각하라는 거지.
라비헨:내 이상형?
음...
음~ (사실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없어서 즉석으로 생각하는 중)
다정하고, 마음씨가 착하고, 표현이 많으면 좋겠지?
아, 키는 좀 작은 게 귀엽겠다.
소한:(툭) 네가 작으니까?
라비헨:아니거든?
소한:그래?
라비헨:그래!
소한:그래.
건장한 성인 남자 달게 생겼는데도 결혼해주겠다는 여자 어디 잘 찾아봐.
... (불현듯 여자 한 명에 남자 둘이 결혼했다는 모 신문 기사가 떠오름)
라비헨:(눈을 가늘게 뜨며) 너- 내 결혼을 어떻게든 방해하고 싶은 사람으로 보여.
소한:별 생각 없는데. 기분은 별로여도.
라비헨:...?
별로일 게 뭐가 있어?
소한:나랑 안 다닐 거잖아.
라비헨:그야 결혼하면 당연히 사랑하는 사람부터 챙겨야지.
소한:...
라비헨:너도 그럴 거 아니야?
소한:(딴청 부리며) ...10분 됐다. 나 먼저 일어난다.
라비헨:뭐야? (소한이 가는 것을 보며) 식상하게...
소한의 뒷모습은 평소보다 유난히 뻣뻣합니다.
대답하기 곤란할 때마다 특유의 '딴청 피우기'를 하긴 하지만,
이번에는 어쩐지 도망치는 기색도 섞여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투덜거리며 그를 따라 굴 밖으로 나옵니다.
'나랑 안 다닐 거잖아'라고 말하던 그 짧은 순간의 낮은 목소리.
그건 단순히 파트너를 잃기 싫어하는 불평이라기엔,
묘하게 '버려지기 싫어하는 어린애' 같은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죠.
혹시 당신의 말이 '예정된 이별'처럼 들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정확한 건 소한만이 알겠죠.
당신은 오늘따라 유독 시니컬한 소한을 따라
다시금 설원을 건너갈 채비를 합니다.
.
.
.
대체 왜 저러는 걸까요?
아니 어디서 기분이 상한 거야?
소한은 아침 식사를 먹고 배낭을 짊어지는 내내 토라지더니
기나긴 눈밭을 걸어가는 동안에도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평소에는 그렇게 꼭 붙어있으려고 안달이더니.
당최 영문을 알 수가 없네요.
당신은 소한의 손목과 연결된 밧줄 끈이 달랑거리며 흔들리는 모습만
멍하니 바라보며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점차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기 때문일까요.
아주 조금은 덜 추운 것도 같습니다.
하긴 북부에서의 빙하기는 도저히 사람이 살 날씨가 아니었죠.
영하 50도까지 이른 적도 있었으니...
이 정도로도 감읍할 따름입니다.
라비헨:'오늘따라 되게 조용하네. 결혼 얘기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었나? 왜지? 평생 독거 노인으로 살 것 같다고 해서 삐진 건가?' (아님)
소한:(평소처럼 굴려고 하지만 기분이 영 나아지질 않아 툭툭 발에 채이는 얼음덩이를 차면서 걷는다)
라비헨:소한, (뜸을 들이다가) ... 무슨 일 있어?
기분이 안 좋아보이는데.
소한:... (사실 본인도 왜 본인이 기분이 안 좋은지 모름. 라비가 이상한 소리를 한 것도 아닌데)
라비헨:음...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소한:(이걸 꼭 설명해야 하나... 싶지만 네가 괜히 움츠러드는 것도 싫어서 괜히 퉁명스럽게) ...너랑 붙어지내는 거 좋은데, 나중엔 안 그럴 거란 뜻으로 들려서 꽁했다. 왜.
라비헨:(깜-빡-) 뭐...?
소한:뭐.
라비헨:'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그러니까... 나랑 계속 붙어있고 싶다는 뜻이야?
소한:응.
라비헨:평생? 죽을 때까지?
소한:... 몰라. (홱)
라비헨:(자리에 서서 멍하니 눈만 깜빡이다가 소한이 이동하며 손목의 줄이 당겨져 정신이 든다.) 자, 잠깐만...! 같이 가!
소한:(삐죽) ...
오늘따라 왜 저렇게 퉁명스럽담?
이해할 수가 없네요.
당신은 소한을 쫓아 탁탁 거리를 좁힙니다.
줄이 느슨해지며 아래로 늘어지는 감각이 날 때쯤일까요
소한은 여전히 대놓고 툴툴거리는 기색이면서도
천천히 걷는 속도를 줄입니다.
...나란히 걷고 싶으면서 괜히 퉁명스럽게 굴기는.
완전 바보가 따로 없네요.
그때...
라비헨:
Listen Roll
기준치:80/40/16
굴림:73
판정결과:보통 성공
사아아악-!
고막을 반으로 쪼개버리는 듯한 돌풍 소리가 들립니다.
순간적으로 그 선명하고 날카로운 소리에 온몸이 섬뜩해집니다.
단순한 눈보라 소리가 아닙니다.
그보다 더 흉포하고, 거칠기 짝이 없는,
야수의 숨결 같은 소리네요.
라비헨:(다급하게 줄을 당기며) 소한, 잠깐만 멈춰봐.
느낌이 안 좋아.
소한:... 빙식체야? (가만히 몸을 낮추고 주변을 살핀다)
라비헨:빙식체라기엔 좀 달라.
뭔가... 눈사태가 일어나기 직전이랑 비슷해.
소한:... (순간 지난 눈사태의 기억을 떠올리며, 입술을 짓씹고는 네 손목을 탁 잡아챈다) ... 심상치 않은 일이 터질 것 같으니까 일단은 후...
소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습니다.
대기를 짓누르던 무거운 정적이 일순간
'콰아앙—!' 하는 파열음과 함께 산산조각 납니다.
사방으로 얼음 파편이 거칠게 튀어나가는 것에 잠시 눈앞을 가렸다가
다시 눈을 떠 확인한 것은
저 멀리 지평선 끝에서부터 하늘과 땅을 이으며 요동치는
거대한 백색 기둥입니다.
단순한 자연현상으로 보기 어려울 만큼
설원의 눈과 얼음, 산소까지 빨아들이며 몸집을 불리는 거대한 괴물 같습니다.
토네이도의 중심부는 회색빛 소용돌이로 가득 차 있고,
그 외곽은 날카로운 얼음 파편들이 초속 수십 미터의 속도로 회전하며
모든 것을 갈아버릴 듯한 기세를 내뿜습니다.
아까 들었던 '사아아악—!' 하는 소리는 전주곡에 불과했습니다.
이제는 수천 개의 얼음 결정이 동시에 깨지는 듯한 굉음이 고막을 직접 타격합니다.
당신과 소한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십니다.
방랑자로서 수많은 위기를 넘겨왔지만
자연이 주는 이 압도적인 폭력 앞에서
어찌할 도리가 있을 리 없습니다.
소한:(네 손목을 부러질 듯 꽉 당기며 단명하게 외친다) 뛰어!! 뒤도 돌아보지 말고!!
가자!
라비헨:읏... (한 손으로 귀를 막으며 소한을 따라 뛴다)
라비헨:
민첩
기준치:75/37/15
굴림:3
판정결과:극단적 성공
소한:
민첩
기준치:65/32/13
굴림:95
판정결과:실패
뒤에 있던 당신이 앞에서 뛰고
소한은 그런 당신을 바짝 뒤쫓습니다.
공포스러운 얼음 기둥을 차마 돌아볼 새도 없이
발바닥이 뜨끈하고 아릿해질 정도로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바짝 당겨지지 않는 손목에 달린 끈으로 소한이 잘 따라오고 있겠거니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다가...
돌풍 소리가 안전 거리를 유지할 만큼 멀어졌을 때 멈춰섭니다.
바람은 싸늘하고 차가운데도 숨은 거칠게 헉헉거리고
필사적으로 도망쳤던 이마에서 난 땀방울이 냉기를 맞아
작게 얼음처럼 굳어 있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한참이나 무릎에 손을 짚고 헉헉거리다가
끈 매어진 손목을 들어 이마의 결정들을 잠시 걷어냅니다.
그때,
덜렁,
손목에 매인 끈의 반대편 끝이
당신의 앞에서 축 처집니다.
소름이 돋아오릅니다.
라비헨:... (순식간에 안색이 파리해지더니 왔던 곳을 되돌아간다) 소한!! 소한...!!
손목에는 끊어진 밧줄 조각만이 처량하게 매달려 흔들리고 있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당신은 미친 듯이 왔던 길을 되돌아 달리기 시작합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폐가 터질 듯 아파오던 고통은 온데간데없고,
심장이 발등까지 떨어지는 것 같은 공포만이 차오릅니다.
손목에 매달린 밧줄 끝은 아무런 저항 없이 스르륵 끌려옵니다.
누군가 칼로 벤 듯 매끄럽게 잘린 것이 아닙니다.
거대한 힘에 의해 짓이겨지고 뜯겨 나간 듯한 거친 단면.
토네이도에 휘말린 파편 중 무언가가 두 사람 사이를 가르고 지나간 것이 분명합니다.
그 와중에도 돌풍이 쓸고 지나간 자리는 공포스러울 정도로 매끈합니다.
당신이 필사적으로 밟고 왔던 눈길도, 당신을 뒤쫓던 소한의 묵직한 발자국도,
거대한 백색 소용돌이가 모두 삼켜버린 지 오래입니다.
라비헨:(숨이 목끝까지 차오르는데도 쉬지 않고 소한의 흔적을 찾아 헤맨다) 소한! 어디 있어?!
들리면 대답해!
라비헨:
Listen Roll
기준치:80/40/16
굴림:37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눈앞을 가로막는 백색의 장막 너머로
당신은 필사적으로 청각을 곤두세웁니다.
당신의 감각은 이제껏 살아온 것 중 손꼽힐 없을 정도로 예민하게 날이 서 있습니다.
아주 작은 눈송이가 바스라지는 소리,
얼음판이 수축하며 내는 비명조차 놓치지 않을 기세입니다.
하지만, 들려오는 것은 잔인할 정도의 정적뿐입니다.
보통의 눈보라라면 바람의 울음소리라도 들려야 하건만,
토네이도가 지나간 자리는 진공 상태처럼 고요합니다.
당신의 가쁜 숨소리와 고동치는 심장 소리만이 고막을 때릴 뿐,
소한의 낮은 목소리도, 신호탄이 되어줄 날카로운 총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당신은 무릎까지 빠지는 눈더미를 헤치며 아까 달려온 길을 되짚으려 하지만,
이미 지형도 바뀌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언덕이었던 곳은 평지가 되어 있고,
얼어붙은 개울물 위로 눈이 함빡 쏟아져
평지나 다름없어 보입니다.
라비헨:하아...하... (부족한 숨 때문에 괴로워서 눈을 꾹 감고 마른 침을 삼킨다.) 젠장...
'어디로 가야 하지? 지도도 소한이 갖고 있고...' 진짜 X됐네...
라비헨:
지능
기준치:50/25/10
굴림:36
판정결과:보통 성공
당신은 불현듯 조난 상황일 때를 대비해 챙겨뒀던
가방 속 호루라기를 떠올려냅니다.
고작 이런 걸로 소한이 저를 찾아올 수 있을진 확신이 없지만...
그래도 가만히 서 있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입니다.
당신은 얼어붙은 손으로 급히 가방을 뒤지며 호루라기를 찾다가
잘 보이지 않자 배낭도 뒤집어깝니다.
툭툭 쏟아진 물건들 사이를 헤집어내자 곧
작은 뼈로 깎인 호루라기가 당신의 손에 들어오네요.
라비헨:(호루라기를 들어올리며) 박박 우겨서 챙긴 거지만 정말 이걸로 소한을 찾을 수 있을까...?
안 하는 것보단 낫겠지. (숨을 최대한 크게 들이마시고 호루라기를 분다)
당신은 차가운 손을 벌벌 떨며 작은 뼈 호루라기를 입술에 가져다 댑니다.
소한이 구조대도 없는데 조난 상황은 왜 걱정하냐는 말에
억지를 부려 챙겼던 물건입니다.
지금 당신에게 남은 유일한 동아줄이기도 하죠.
피이이이이익—!!!
당신이 폐부의 공기를 쥐어짜 내 불어넣자,
작고 초라해 보이던 호루라기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날카롭고 높은 고음을 내뱉습니다.
그 소리는 둔탁한 눈보라의 벽을 뚫고,
얼어붙은 대기 속을 화살처럼 날카롭게 가릅니다.
주변의 정적을 무참히 깨부수는 그 소리는,
길을 잃은 누군가에게는 유일한 등대이자
굶주린 포식자들에게는 만찬의 종소리 같은 것이겠지요.
당신은 호루라기를 입에서 떼고, 심장이 터질 듯한 기세로 주변을 살핍니다.
하지만, 바람 소리뿐입니다.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그 이상의 소리를 들을 수 없네요.
라비헨:역시 안 들리나...
눈 속에 파묻힌 거면 어쩌지?
온통 눈밭인데 어딜 파야 하는 거냐고...
가면서 파이프로 땅을 찔러보기라도 해야 하나...
(주변에 소한의 물건으로 보이는 게 있는지 살펴본다)
라비헨:
Spot Hidden Roll
기준치:55/27/11
굴림:91
판정결과:실패
눈을 부릅뜨고 하얀 장막 속을 훑어보지만,
지독한 운명은 당신의 편이 아닙니다.
토네이도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공포스러울 정도로 매끈하고 깨끗합니다.
소한의 손목 끈 하나, 그가 흘린 물건 하나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사방이 그저 끝없는 백색의 무덤일 뿐입니다.
너무 집중해서 눈밭을 노려본 탓인지, 이제는
하얀 눈 위에 검은 잔상들이 떠다니기 시작합니다.
무엇이 소한의 흔적이고 무엇이 그저 흙먼지인지 분간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당신이 망설이며 배회하는 1분 1초마다
새로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은 소한이 남겼을지도 모를
마지막 단서까지도 지워내버리는 중이네요.
작은 희망까지도 바스러지는 것 같습니다.
소한은 눈 속에 묻혔는지 바람에 날아갔는지 알 수 없고,
생존에 필요한 물품도 없고,
심지어 당장 쉬어갈 곳도 없습니다.
라비헨:하아... 귀가 좋으면 뭐 하냐고. 기절한 사람을 못 찾는데.
'너무 멀리까지 가면 오히려 못 찾을 확률만 높아질테니, 주변을 빙 둘러보자.' (호루라기를 한 번 불고, 소한의 이름을 부르기를 반복하며 주변을 배회한다) 소한...! 소한-!
그렇게 얼마나 주변을 배회했을까요.
한참이나 찬기에 노출된 얼굴 근육이 뻣뻣하게 얼어굳고
이가 딱딱 부딪힐 만큼 추위가 몰려옵니다.
구조물도 없는 허허벌판에 너무 오래 선 채로 찬 바람을 맞았습니다.
...설마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요.
생명에 지장이 갈 정도로 크게 다쳤다든가.
아니면 눈 속에 파묻혀 질식사했다든가.
홀로 거칠게 살아온 것을 생각하면 그의 생사를 걱정할 일이 없을 텐데도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은 초조해집니다.
라비헨:설마 진짜로 죽기라도 한 건...
(도리질치며 애써 부정한다) 아냐, 혼자서도 잘만 살아남았으니까 이번에도 살아있을 거야. 분명히 그럴 거라고...
(파르르 떨며) 흐으... 너무 추워...
이 정도 날씨면 소한은 분명 더 추울텐데...
발견하기도 전에 동사하는 거 아니야?
하씨... 쓸데없는 생각 그만하자.
라비헨:(차갑게 식다 못해 무겁게 느껴지는 발을 한 발짝씩 움직여 앞으로 나아간다) 소한-!!
하얗게 질린 입술 사이로 터져 나오는 외침은
차가운 눈가루에 섞여 허공으로 흩어집니다.
발가락 끝의 감각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허벅지는 천근만근 무거워 마치 진흙탕 속을 걷는 기분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멈출 수 없습니다.
지금 멈추면, 저 하얀 장막이 소한을 영원히 삼켜버릴 것만 같으니까요.
그저 살피고, 호루라기를 불고, 이름을 부르는 것만 반복하며
얼마나 더 걸었을까요.
시야를 가리는 눈보라 사이로, 평소와 다른 이질적인 형태가 눈에 들어옵니다.
자연스러운 설산의 곡선이 아닌, 인위적이고 묵직한 사각형의 실루엣.
소한이 늘 등에 매고 다니던 가죽 배낭입니다.
라비헨:(멀리 보이는 것을 더 자세히 보려 눈을 좁힌다) 저건...
(배낭이 있는 곳으로 서둘러서 발걸음을 옮긴다)
당신은 필사적으로 눈을 헤치며 다가갑니다.
반쯤 눈에 파묻힌 소한의 배낭은, 붉은색 가죽 끈이 밖으로 삐져나와 있고
겉면은 토네이도의 위력에 긁혀 넝마가 되어 있습니다.
배낭의 어깨끈 하나가 무언가에 쓸린 듯 끊어져 있습니다.
주인과 강제로 분리된 듯한 모습에 속이 싸해집니다.
자연 재앙이라고는 생각했지만, 그 위력 앞에서 찢긴 가죽을 보니
가까스로 살아있대도 소한의 몸이 성치 않을 것만 같습니다.
라비헨:(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던 것이 현실에 더 가까워진 것 같아 얼굴에 있던 핏기가 싹 가신다.) '당장 소한을 찾아야 해...!'
(하늘을 보며) '슬슬 해가 기울고 있어. 만약 밤이 될 때까지 소한을 못 찾으면 분명...'
(입을 꾹 다물고는 소한의 배낭을 챙기고 목에 피맛이 느껴질 정도로 크게 이름을 부른다) 소한...! '배낭이 여기 있으니 분명 근처에 있을 거야.'
라비헨:
Listen Roll
기준치:80/40/16
굴림:93
판정결과:실패
마음은 급한데, 발을 뗄 때마다 눈은 무릎까지 차오르고
몸 상태는 점점 한계에 다다르기 시작합니다.
목이 터져라 부르는 외침도 본인의 귓가에서만 웅웅거리고
거친 눈보라 탓에 그마저도 금세 묻혀 사라집니다.
너무 크게 소리를 지른 탓일까요, 아니면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일까요.
귀 안쪽에서 '삐이-' 하는 소음이 들리기 시작하며 주변의 모든 음성을 차단해 버립니다.
해는 점차로 기울며 세상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합니다.
시야가 좁아집니다.
마지막 희망조차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려는 순간,
라비헨:
Listen Roll
기준치:80/40/16
굴림:8
판정결과:극단적 성공
소름으로 부르르 떨려오는 뒷목 그 언저리에서
귀가 쫑긋 섭니다.
모든 감각이 마비되고, 세상이 백색 소음으로만 가득 차던 그 절망적인 찰나.
당신의 고막을 뚫고 들어온 것은 바람 소리도, 환청도 아니었습니다.
탁, 타드득— 탁.
지극히 인위적이고, 지극히 규칙적인 암석의 마찰음.
살아있는 존재가 내는 소리입니다.
라비헨:(숨을 헐떡이며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다가간다) 소한-! 윽,... 거기 있어?!
당신은 바람결에 쉽게 묻혀버릴 외침을 내지르며
소리가 흘러드는 곳으로 다가갑니다.
저녁 노을이 물들어가는 하늘의,
어스름한 보랏빛 그림자가 드리운 절벽 틈새.
아슬아슬하게 깎아지른 절벽 끝, 눈 쌓인 바위 틈새로 고개를 내밀자
겨우 발끝 일부만 디딜 수 있는 암벽 틈새에
소한이 한쪽 팔로 어떻게든 암벽을 붙잡고 붙어 있습니다.
몰골이 처참하기 그지없습니다.
단정하고 꼿꼿하던 머리카락은 눈과 피에 엉겨 산발이 되었고,
날카롭게 베인 뺨에서는 붉은 피가 얼음장 같은 공기를 만나
검붉고 딱딱하게 굳어 있군요.
라비헨:
SAN Roll
기준치:53/26/10
굴림:25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소한...!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에 잠시 안도하지만 누가 봐도 아슬아슬한 상황을 확인한다. 무작정 팔을 뻗으며) 잡을 수 있겠어?
소한:(멍하니 버티다가 힘이 거의 빠져 절망에 빠져 있다가, 네 목소리에 퍼뜩 초점 풀린 고개를 든다) ... 라... 비...?
라비헨:(네게 조금이라도 바짝 닿으려 상체를 더 내민다) 윽, 내 손 잡아...! 어서!
소한:... (네 말에 멍하니 손을 쭉 뻗어보지만, 2피트 정도 간격을 두고 닿지 않는다) ...안 되겠는데.
라비헨:젠장...! 어떻게 하지?
소한:... 밧줄... 아직 쓸만해? 남아 있어?
라비헨:내 손목에 남은 게 다야...
이미 한 번 끊어졌었는데 괜찮을까?
소한:... 괜찮지 않더라도, 이거라도 해야지. 자칫하다간 진짜 산채로 얼어죽겠어...
라비헨:벌써부터 그런 무서운 소리 하지 마;;
근처에 있던 네 배낭을 가져왔어. 도움이 될만한 게 있을까?
소한:
지능
기준치:60/30/12
굴림:50
판정결과:보통 성공
(잠시 생각했다가) 등반용 갈고리랑 카라비너. 가장 가장 안쪽에 있을 거야. 카라비너 고리 안쪽을 밧줄로 단단히 묶어서 이쪽으로 내려주면 내가 잡을 수 있어.
라비헨:알았어. 그렇게 해볼게!
정신줄 놓지 말고 기다려!
소한:응... (슬슬 체온이 떨어져서 잠이 온다)
라비헨:(배낭 두 개를 낑낑거리며 소한이 있는 절벽쪽으로 질질 끌고 온다. 그리고는 소한의 배낭에서 갈고리와 카라비너를 꺼내 밧줄로 꽉 묶는다)
(네가 정신을 잃을까봐 계속 큰소리로 말을 건다.) 소한! 정신 차려!
(서둘러 갈고리를 내려주며) 이거 잡아!
소한:... 걱정은. (반쯤 졸고 있었으면서도 괜히 너를 걱정시키기 싫어, 부러 괜찮은 척 네가 내려주는 도구를 받아 밧줄 묶인 카라비너는 손목에 둘러 차고, 갈고리를 손에 맨다) ...라비.
너 혹시 몇 kg이야.
라비헨:어... 마지막으로 쟀을 때가 60kg이었어.
소한:... 나 끌어올릴 수 있겠어?
라비헨:(삐질...) 나도 같이 끌려내려가려나?
소한:삐쩍 말라서는... (잠시 고민하다가) 우리 배낭 네가 다 가지고 있어?
라비헨:평균이거든...
다 갖고 있어.
소한:(배낭 두 개 다 합치면 60kg쯤 될 테니까... 합치면 120. 어찌저찌 가능은 하겠네) ...밧줄 반대쪽 손목이나 허리에 감고, 배낭은 앞뒤로 둘러매서 무게를 늘려. 그리고 뒤로 눕듯이 당기기. 할 수 있겠어?
라비헨:해볼게!
이 상황에선 못 해도 해야지...!
넌 꽉 버티고 있어! (계속해서 쫑알쫑알 말을 걸며 소한의 말대로 밧줄을 허리에 감고 배낭을 앞뒤로 둘러맨다.) 네 말대로 했어!
소한:... (이러다가 눈밭에 미끄러져 둘 다 죽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지만, 이마저도 할 수밖에 없겠지) 이제 뒤로 푹 누우면 돼.
라비헨:지금부터 누울게. 꽉 잡아!
하나, 둘-! (발등부분에 힘을 주며 온몸을 뒤로 눕는다)
라비헨:
근력
기준치:55/27/11
굴림:786180
+2:실패
+1:실패
  0:실패
-1:실패
-2:실패
당신은 뒤로 힘껏 누우며 체중과 근력으로
소한을 어떻게든 끌어올립니다.
그러나 다리의 버티는 힘이 부족했던 탓일까요.
당신의 발끝이 옅게 언 눈 위를 스치며
몸이 속절없이 앞쪽으로 끌려갑니다.
엉덩방아를 찧은 엉덩이가 얼얼해집니다.
라비헨:으앗!
'시간이 없어! 빨리 구해야 해!' (쓰라린 엉덩이를 문지를 틈도 없이 다시 벌떡 일어나 몸을 비틀어서라도 더 힘을 주어 눕는다)
밧줄이 팽팽하게 당겨진 허리 위로
까칠한 쓰라림이 옅게 스칩니다.
라비헨:
근력
기준치:55/27/11
굴림:349069
+2:보통 성공
+1:보통 성공
  0:보통 성공
-1:실패
-2:실패
당신은 어릴 때 젖먹던 힘까지 쏟아부어
소한의 몸에 매달린 밧줄을 힘껏 끌어올립니다.
과하게 힘이 들어가고 조여든 허리와 등허리에서
근육이 경직되듯이 빳빳해지지만
생사의 갈림길 앞에서는 미약한 통증입니다.
아래에서 작게 소한이 신음을 토하며
갈고리를 절벽 끝에 찍고 올라옵니다.
피 범벅인 상태로 힘을 써서인지 상태가 그리 좋지 않습니다.
산 채로 움직이는 것보다 시체가 움직이는 것에
더 가까운 모양샙니다.
소한:헉... 헉... (눈앞이 시퍼렇고 시뻘겋고 힘들어 죽겠다. 어지러워...) 라비, 라비... (손목에 있던 끈을 풀고 네게 다가가 정신없이 끌어안고 몸을 떤다)
라비헨:(소한이 무사히 평지까지 올라온 것을 확인하고는 힘을 뺀다. 앞뒤로 배낭의 무게가 몸을 무겁게 짓눌러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든 와중, 소한이 안는 동시에 눈밭 위에 그대로 기울어진다) 윽...
소한:(네 기울어지는 몸을 그대로 받아 천천히 눕히고는, 천천히 무거운 배낭을 옆으로 치워내고 너를 다시 꼭 끌어안는다. 방금 전까지 죽기 직전의 상황에 놓여 있던 탓일까 온갖 감격이 몰려오더니 눈앞의 네게로 죄다 쏠린다) ...괜, 괜찮아? 라비, 라비... (소심하게 어깨를 툭툭 흔든다)
라비헨:(긴장이 조금 풀린 탓에 굳어있던 어깨가 스르르 내려간다. )후... 난 괜찮아.
(숨을 돌리고는 네 양 뺨 위에 손을 올리고는 여기저기 살핀다) 나는 신경쓰지 말고, 너는? 괜찮은 거야? 또 다친 데 있어?
소한:(고개를 도리도리 젓고는, 너를 마지막 동앗줄처럼 꼭 끌어당겨 뺨을 비빈다) ...
라비헨:하아- '충격을 많이 받았나 보네...' (자신도 온몸이 얼음장이지만 너를 마주 안고 토닥여준다)
소한:(부비부비...) ...무서웠어. 네가 날 못 찾아줄까봐...
라비헨:난 네가 이미 죽은 줄 알고 걱정했어... 다행이야.
살아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네 어깨를 붙잡고 바짝 붙어있던 너를 떼낸다) 일단 굴 파고 소독부터 하자.
소한:(도리도리...) ...더 붙어 있을래. 라비. 10분만.
라비헨:(단호하게) 안 돼. 너 지금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몸도 얼음장이란 말야.
이러고 있다가는 살린 보람이 없어질까봐 걱정된다고;
소한:(풀 죽은 강아지처럼 낑낑거리다가 천천히 떨어진다) ...다 파고 나면 붙어 있을래.
라비헨:'갑자기 왜 저렇게 응석부리는 거지? 엄청 충격이었나 보네...' 소독하고 나면 네 마음대로 해도 되니까 조금만 기다려. 얼른 굴 팔게. (몇 번 토닥거리고는 배낭에 있던 삽을 꺼내 허겁지겁 굴을 판다)
보랏빛 밤이 내려앉는 설원 위로,
삽이 눈을 가르는 서걱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당신은 필사적으로 눈을 파헤치며 뒤를 돌아봅니다.
소한이 다친 머리를 부여잡고 멍하니 당신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탓에
몸을 움직이고 있는데도 마음이 더 급해집니다.
탁탁, 열심히 눈을 걷어내고 텐트를 내부에 펼친 뒤
모포를 깔고 소한을 냅다 밀어넣으면
소한은 딱히 반항하는 기색 없이 순순히 안으로 들어가더니
빨리 오라는 듯 팔을 양쪽으로 벌립니다.
...응석꾸러기가 다 됐네요.
당신이 조심스럽게 모포를 밀어넣고 응급처치 용품을 챙긴 뒤
조심스럽게 내부로 들어오면 따뜻한 홍심석의 열기가 번지며
추위는 조금씩 가시기 시작합니다.
라비헨:
First Aid Roll
기준치:30/15/6
굴림:20
판정결과:보통 성공
당신은 배낭 가장 안쪽, 홍심석에 맞닿아 있어 따뜻하게 데워져 있던 물을
빈 가제 천에 쏟아 적시고는
엉망진창으로 피가 굳은 소한의 얼굴을 먼저 문지릅니다.
...몰골을 봤을 때도 처참하다 싶었지만,
생각보다 피를 많이 흘렸던 모양인지
천에 묻어나오는 피가 쉼 없습니다.
가까스로 상처를 닦아주고 마른 약초를 물에 빻아 빈 천에 적시고
얼굴에 올린 채 테이프로 고정하자
소한이 눈을 찡그리며 슬금슬금 안겨듭니다.
소한:...놔두면 어련히 나을 텐데.
라비헨: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너 완전 피투성이였거든? (잔소리하면서 아프지 않게 등짝을 팍팍 친다)
소한:아파아... 라비. (네가 등짝을 때리려 해도 피하지 않고 꼬깃꼬깃 안기려 든다)
라비헨:어휴... (한숨을 푹푹 쉬며 네 어리광을 받아준다. 꼭 안아주며 등을 토닥거리고는) ... 살아서 다행이야, 바보야.
소한:... 네 덕이지. 고마워. (네 옆구리로 팔을 끼워넣어 빈틈없이 안기고는, 옆으로 풀썩 쓰러져 눕는다)
...나 한참 찾았어?
라비헨:당연히 한참 찾았지. 못 찾으면 나도 죽는데.
... 네가 살아있을 거라는 데에 걸고 싶기도 했고.
소한:(네 품에 꼭 껴안긴 채 죽은 듯이 아주 가늘게 숨을 쉬다가, 네 가슴팍에 귀를 대고 손가락을 꼬물거린다) ...놀라긴 놀랐나 보네. 불규칙해, 심장 소리가.
라비헨:(흠칫) 미, 민망하게 뭘 확인하는 거야...
왜 이렇게 딱 붙는 거야? 괜히 안 하던 짓을 하니까 이상하잖아.
소한:...싫어?
...
난 좋은데. (네 허리를 푹 끌어안으며 네 가슴팍에 얼굴을 좌우로 비빈다)
라비헨:(갑작스런 애교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얼굴이 조금 붉어진다) 너 원래 안 이랬잖아. 전엔 내 잠버릇 때문에 잔소리도 했고...
소한:... 몰라, 그게 언젯적인데. (네 말에 조금 민망해져 입술을 우물쭈물한 채로 가만히 고개를 틀고, 네 다리에 제 다리도 엮으며 더 딱 붙는다)
(심장이 콩닥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빈틈없이 붙은 몸이 따뜻해져 올 수록 가슴팍 언저리가 뭉근하게 녹은 초콜릿처럼 흐물거린다. 한치라도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네게 더욱 꽉 안기고 싶어 몸을 비트는 자신이 제가 알던 제 모습 같지가 않지만... 이상하게 너랑 이렇게 있는 건 너무도 평온하고, 따뜻하고, 의지가 되고, 행복하고...)
... (그렇게 한참을 조용히 침묵하다가, 가만히 고개를 들어 너를 바라본다) 라비. 나 그대로 죽었으면 어땠을 것 같아?
라비헨:너 진짜 아무렇지도 않게 무서운 소리 할래? (;;;)
방금까지 죽기 직전이었던 사람이 말하니까 진짜로 얼마 안 남은 것 같다고.
'아까 피를 너무 많이 흘렸나? 아니면 상처가 감염된 건가?' 너 진짜 죽는 거 아니지? 어?
소한:안 죽어.
... (꼭 안기며) ...내가 너 두고 어떻게 죽냐?
라비헨:방금은 진짜 죽을 뻔했으니까 걱정돼서 그렇지.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죽어라 뛰었더니만 줄이 끊어져 있을 줄 누가 알았겠냐고...
소한:... 바보. 주변은 살펴가며 뛰었어야지. (몸을 꼼지락거려 네 얼굴과 얼굴을 마주볼 수 있도록 올라오더니, 부드럽게 네 머리통을 두 팔로 감싸 안고 이마에 쪽 뽀뽀한다)
라비헨:네가 할 소리냐? 지금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했는ㄷ... (제대로 눈이 마주치자 말문이 막힌다. 원래 이런 식으로 바라보지 않았는데. 생각을 하기도 전에 이마에 따뜻한 감촉이 닿았다 떨어진다. 놀란 토끼 눈을 하며 입만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뭐지? 머리를 크게 다친 건가? 봉합해야 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소한과 몸이 얽히는 것이, 그의 입술이 닿는 것이 이상하리만큼 거부감이 없어 혼란스럽다. 친한 친구라 해도 이렇게까지 가까울 필요가 있나? 이건 마치...) 너...
소한:(눈을 감은 채로 입술에 닿는 살갗의 촉감과 체온을 음미하듯 대고 있다가, 천천히 떨어지며 네 눈을 다시금 마주본다) ...응, 라비.
라비헨:(대체 무슨 말을 해야 좋을까. 요즘 들어 부쩍 달라붙는 것 같긴 했지만 그저 자신과 가까워져서일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입술을 달싹이며 말을 고르다가) ... 너, 오늘 많이 이상해.
소한:... (살며시 부끄러워지기도 하지만, 네 얼굴을 계속 보고 싶은 마음에 그저 뺨을 손바닥으로 감싼다. 말랑하고 따뜻하고, 귀엽고, 간질거린다) ...뭐가 이상한데?
라비헨:그, ... (다시 한 번 눈이 마주치자 입술을 움찔거리더니 시선을 내리깐다) ..."친한 친구" 사이에 뽀뽀도 한다지만 이건 너무... 가까운 것 같아서. 이거 맞아? 기분이 좀 이상한데.
갑자기 엄청 어리광을 부리질 않나, 성격도 엄청 부드러워진 것 같고.
(슬쩍) 너 혹시... 머리를 세게 다친 거야?
소한:(대답 대신 엄지를 옮겨 네 아랫입술을 슬며시 잡아당긴다. 찬 바람을 맞아 살짝 거칠어졌는데도 말캉한 촉감이 닿자, 눈이 느리게 깜빡인다) ...글쎄. 제 정신이 아닌 건 맞을걸.
내가 이러는 거 싫어?
라비헨:'뭐야? 이 분위기 뭐냐고 대체!' (침을 꿀꺽 삼키고는) ... 싫,지는 않지. 그래서 더 이상해.
소한:(천천히 엄지를 더 움직여 네 입술 중앙을 좌우로 문지르며) ... 그것 참... 이상하네.
라비헨:(눈을 마주치기도 민망해져서 아예 감아버린다. 귓가가 새빨갛게 물든 채) ㄴ, 내가 뭐... 지금 제일, 무진장 이상한 건 너거든...?!
소한:... 그렇게 이상하면 싫다고 밀어내면 되는데. 그러긴 또 싫고. 참 까탈스럽네, 라비. (네 뺨을 감싸고 입술을 문질렀던 손을 거두고는, 무의식중에 그 엄지를 제 입술에 댄다)
라비헨:그야... 그야... (왜 밀어내지 못하는지 스스로도 모르겠어서 변명거리를 급하게 찾는다) 넌 지금 환자니까...!
아까도 뭔진 모르겠지만 삐졌던 것 같고...!
소한:... 늘 생각하지만, 넌 참 선이 물러, 라비.
그래, 말 잘했다. 내가 왜 삐졌던 것 같은데.
라비헨:(여전히 눈을 꾹 감은 채) 모르지...! 네가 독거 노인으로 살 거라고 확신해서 그래?!
소한:아니.
라비헨:그러면...?
소한:나보다 더 가까운 사람 생기면 질투날 것 같아서.
난 독거 노인 확정이라며.
라비헨:그, 럼... 어떡하라고...
나도 똑같이 독거 노인으로 살으라고?!
소한:...
(뻔뻔) 그래.
라비헨:(뻔뻔한 대답에 기가 차서 다시 눈을 뜬다) 너무해!
소한:뭐가 너무해.
라비헨:난 혼자 사는 거 싫어!
소한:나 입주시켜줘, 그럼.
이참에 둘 다 고독사만 면하는 걸 목표로 하자.
라비헨:뭐, 무슨 헛소리야?;;;
너 진짜 머리 아프냐?
소한:안 아파, 화상아. (손을 다시 뻗어 네 말랑한 볼을 주욱 가볍게 늘린다)
라비헨:아 아프데 그른 흣스리르 흘 수 이어? (안 아픈데 그런 헛소리를 할 수 있어?)
소한:뭐, 같이 살면 가족 아냐? 그게 그거지.
축하한다, 혼자는 안 살겠네.
라비헨:난 연애는 하고 죽고 싶단 말야!
소한:그래, 할 수 있으면 어디 해봐. (네 머리통을 다시금 끌어당기고 네 뺨에 제 뺨을 가볍게 댄다)
라비헨:(찡얼) 너어- 어떻게든 방해하려고 그러지?
소한:당연하지. 어디 못 가게 할 거야.
라비헨:그런 게 어디 있어? 평생 고자로 살란 말야?!
소한:... 네 머릿속에선 동정이랑 고자가 동의어냐.
라비헨:... 그거나 그거나!
둘 다 별로라고!
소한:흠, 그럼 딸 많이 쳐라. 고자라도 면하게. (덤덤)
라비헨:너어- (슬슬 걱정되기는 커녕 열 받아서) 떨어져. 확 떨어져서 자라고!
소한:싫어. 따뜻해서 노곤노곤해. (고개를 조금 숙여 네 목덜미에 코끝을 대고 가볍게 숨을 들이킨다)
라비헨:(찡얼거리며 안긴 채로 버둥거린다) 언제까지 붙어있을 건데? 딸 칠 때도 붙겠다고 할 것 같다고!
소한:(버둥거리는 너를 잠재우려는 듯 엉치뼈 위를 간질이듯 문지르며, 네 목덜미에 가볍게 입술을 붙였다 뗀다) 아니거든. 비약이 심하네.
라비헨:흐익...! (민감한 부분에 입술이 닿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솜털이 바짝 솟는다. 어깨를 바짝 세운 채) 왜 자꾸 뽀뽀해?!
소한:(눈을 나른하게 깜빡이며 홀린 듯 고개를 떼고, 입술이 닿을 듯 말 듯한 가까운 거리에서 멈춰서 너를 빤히 바라본다) 귀여워서.
라비헨:언제는 귀엽다-귀엽다- 하다가 소동물 다루듯이 뽀뽀하는 거 아니냐 했을 때 부정했으면서...!
거짓말쟁이! (얼굴이 가까워지는 만큼 목이 뻣뻣하게 굳으며 고개를 뒤로 물린다) 왜, 왜 이렇게 가까이 오는 거야?
소한:글쎄. 짐작 가는 것도 없어? (슬그머니 따라붙어 코끝을 가볍게 맞댄다)
라비헨:(질끈) 이러다 진짜 닿게 생겼다고! 너, 너... 나 놀리려는 거지?
소한:...뭐가 닿을 것 같은데? 말 좀 제대로 해.
라비헨:이, 입술!!! 입술이 닿을 것 같다고!!
소한:그것 때문에 이렇게 화난 토끼처럼 구는 거야?
라비헨:(얼굴이 잔뜩 새빨개져서는) 이게 "그것 때문에" 수준이야?!
ㄴ, 너 설마... 아니지?
첫키스를 뺏어서 마누라도 못 만들게 하려는 그런 작전 아니지?!
소한:... 할 생각도 없지만, 첫키스 뺏기면 마누라 못 만든다는 소리는 뭐야?
라비헨:그야... 사랑하는 사람이랑 해야 하는 거니까...?
소한:너 키스가 뭔지는 알아?
라비헨:모르지...?
그냥... 뽀뽀를 좀 길게 하는 거 아니야?
소한:넌 참... 갈 길이 멀다. (대놓고 혀를 찬다)
라비헨:ㄴ, 내가 뭐!
소한:너 애무나 섹스는 뭔지 알아? 성교육은 받았어?
라비헨:당연히! 기, 기본적인 건 안다고!
소한:못 믿겠는데. 설명해봐. (덤덤)
라비헨:(삐질) '제대로 설명하라니, 그걸 어떻게 하라고?' 일단은... 아기는 황새가 물어다주는 게 아닌 건 알아.
손 잡고 자면 생기지 않는 것도 안다고!
소한:너 답 모르지. 그래서 회피하는 거지.
라비헨:아냐!
애, 무는 그러니까... 그...
"열심히" 뽀뽀하는 거...?
소한:...
그래. 그럼 섹스는?
라비헨:그거는 이제... 어...
아기를 만들기 위한...
아이씨! 왜 내가 너한테 이걸 설명해야 하는 건데?!
소한:라비.
넌 내가 방해 안 해도 결혼 못하겠다.
연애도.
라비헨:너 진짜 짜증나!!!
저리 가!
떨어져!
소한:여기 떨어질 데가 있어? 안 그래도 좁은데.
그리고 너 말은 그렇게 해도 내일 아침도 나 끌어안고 일어날 거잖아.
하루도 안 껴안은 날이 없구만
라비헨:(씩씩거리며) 너 때문에 열 뻗쳐서 못 참겠다. 차라리 밖으로 나갈래!
소한:나 환자야. 너 나가면 추워.
라비헨:지금 엄청 덥거든?!
몰라! 안 죽는다며. 응급처치도 다 해줬구만!
소한:몰라. 나 추워. 빨리 안아. (당연하게 명령)
라비헨:(황당...) 이젠 명령하네.
소한:얼른. (네 허리에 손을 밀어넣고 부드럽게 감으며 꼭 안긴다)
라비헨:열 받게 해놓고 진짜 뻔뻔하네...
소한:내 장점 중 하나야. (뻔뻔)
라비헨:칭찬 아니야, 이 멍청아.
씨... 맨날 사람 놀리고, 장난치고...
소한:난 칭찬으로 들을게. (네 품에 파묻혀 부드럽게 체향을 들이킨다)
라비헨:(꾹꾹 밀어내며) 힘만 쎄면 다야? 저리 가-
소한:(칭얼) 싫어. 너랑 있을래.
라비헨:난 싫어. 네가 나 놀리고 열받게 했잖아.
소한:말은 그렇게 해도 나 안 싫어하잖아.
라비헨:싫, ... (공장에서처럼 또 거짓말을 하긴 미안해서 한숨을 내쉰다) 그럼 나 그만 놀려.
소한:...놀린 거 아냐. 안심한 거지. (네 품에서 점차 고른 숨을 쉬며 뺨을 부드럽게 비빈다)
라비헨:평생 같이 독거 노인으로 살 것 같아서 안심한 게 열받는다고!
소한:억측은... 너랑 같이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안심한 거야.
내가 독거 노인 싫다고 아무한테나 같이 지내자고 할 사람으로 보여?
라비헨:그치만... 외로운 거 싫어서 나랑 다니기로 했다고...
소한:그건 척박한 환경에서 어쩔 수 없었다는 이야기였고. 지금은 살만한 곳에 가서도 같이 있자는 이야기 중이니까. 엄연히 다르지.
라비헨:그런, 거야...?
소한:응. 그런 거야. 라비.
라비헨:... (좋은 의미처럼 들려서 마음이 수그러지려다 방금 전의 대화가 다시 생각나서 툴툴거린다) 그래도 나더러 연애도 결혼도 못하겠단 말은 너무했어.
그러는 너는 잘 알아?
키스나 뭐... 거시기한 것들.
너도 누구 좋아해본 적도, 연애 경험도 없다며!
소한:해봐야지만 아는 것도 아니고.
기본적인 행위 전개나 구성은 알아.
라비헨:어, 어떻게 아는데?!
소한:배워서.
라비헨:...?
그걸 하는 걸 봤어?
소한:... 그렇겠냐고.
(어이 X) 엄연히 정식 교육이거든?
라비헨:그, ...
ㅁ, 몰라도 뭐, 상대가 알려주면 그만이지!
둘 다 모르지만 않으면 되잖아!
소한:참나... 그래, 힘내라.
라비헨:뭐야...
소한:너희 집은 2인용이면 맞겠다. (너 결혼 못할 거란 소리)
라비헨:뭔 소리야?
...
... (무슨 뜻인지 뒤늦게 파악하고는 이를 드러낸다) 너-!
자꾸 저주할래?
소한:응.
사실만 얘기한 건데.
라비헨:너보다도 빨리 결혼할 거거든?!
소한:키스를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면서?
아서라.
라비헨:지도 해본 적 없는 건 똑같으면서...
소한:어떻게 하는진 알지.
라비헨:이론이랑 실전이랑 같냐?!
소한:크게 다를 것도 없지.
라비헨:입만 살아서는...
소한:뭐, 그럼 키스가 뭔지나 가르쳐줘?
내가 아무리 실전 경험이 없대도 백짓장인 너만 할까.
라비헨:뭐 어떻게 가르치게? 책도 없으면서.
소한:흠, 그런 건 보조 도구고. 난 실전파라. 검지랑 중지 겹쳐서 앞으로 내밀어봐.
라비헨:...? 경험도 없으면서 무슨 실전파라는 거야... (중얼거리면서 검지랑 중지를 겹쳐서 내민다)
소한:(네 손을 가만히 빤히 보다가, 저도 검지랑 중지를 겹쳐서 내밀고 끝을 툭 부딪힌다) 키스는 뽀뽀가 아니라 입술과 혀가 다 닿는 거야. 물론 처음엔 입술부터 닿다가, 그 다음에 혀를 섞는 구조긴 하지.
(손가락으로 네 검지와 중지 마디를 가볍게 쓸고 비빈다) 표현하자면 이렇게.
라비헨:(손가락이 비벼지는 것을 보며 자연히 그것이 입술이라 상상한다. 간질거리고 이상해서 얼굴이 터질 것처럼 새빨갛게 달아오른다) 이, 이렇게 자세하게 알려준다고? 대체 도시에서는 어떤 수업을 하는 거야?!
소한:보통 교육에선 애무와 섹스를 가르치긴 하는데, 내가 일하던 공장은 다들 말투가 적나라해서. 주워듣다 보니 자연히 다 알겠던데. (부드럽게 제 손가락으로 네 손가락을 둥글게 어루만지고 손가락 틈 사이를 문지른다)
라비헨:대체 뭘 듣고 자란 거야? (손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부분이 어쩐지 민망해져서 손가락을 살짝 뒤로 물린다) 이, 이제 그만 알려줘도 돼...
소한:이제 네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착각을 했는지 알겠어?
라비헨:(질끈) '하씨... 저런 걸 대체 어떻게 해?' 알았다고...!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
소한:(천천히 손을 내려 네 허리를 다시금 끌어안고 어깨에 턱을 기대 눈을 감는다) 그래. 알았으면 됐다.
라비헨:하아... 기운 빠져...
소한:고작 이걸로 기운 빠져서 섹스는 어떻게 하겠다고 결혼 타령을 했대?
라비헨:그치만 사랑 정도는 해보고 싶었단 말야. 부모님 사이가 좋았으니까...
그리고 잘 몰라서 그렇지, 하다 보면 이 정도로 기운 빠지지는 않을 거라고!
소한:섹스는 옷 다 벗고, 여성기에 남성기 넣고 쑤시는 건데?
라비헨:그, 그것도! 하다 보면....
아, 몰라. 고자만 아니면 어떻게든 되겠지!
소한:구멍도 못 찾을 놈이 괜히 목소리만 커서는.
라비헨:아니거든?!
소한:내가 맞아.
라비헨:너 계속 놀릴 거면 빨리 자기나 해.
소한:고집은. 그래, 자자. (너를 꼭 껴안은 채로 모포를 두르고, 등을 토닥인다)
라비헨:너나 자라니까?!
소한:넌 그럼 뭐하게. 섹스 생각?
라비헨:아니야!
소한:그래, 자라. (톡톡)
라비헨:환자라 이걸 팰 수도 없고...
소한:원래도 동료는 패는 거 아니다-
라비헨:열 받는 말만 하는데 참아야 해?
소한:네가 예민한 거야.
라비헨:에휴... 됐다.
소한:(쓰담쓰담) 못 자겠으면 자장가라도 불러줘?
라비헨:됐거든?
(완전히 몸에 힘을 빼고 눈을 감는다) 잘래...
좀 자야겠어.
피곤해.
소한:(이제야 자겠다고 하네) 잘 자, 라비.
내일 보자.
라비헨:그래 그래-
소한:(네 뒤통수를 쓰다듬다가 잠에 푹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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