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설산과 얼음 동굴
당신은 소한이 건네준 아침 식사용 빵을 우물우물 씹으며
소한이 먹는 모습을 힐끔거립니다.
되도록 잘 구워지게 납작하게 구웠지만
모닥불 불 조절이 될 수는 없으니
겉은 조금 타고 속은 조금 덜 익었지요.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긴 합니다.
어제 술 마시고 부린 추태며, 오늘마저 한결같이 끌어안고 일어났으니
민망해서 얼굴 들 수가 없네요.
이럴 거면 술 취했을 때의 기억이라도 날아가면 좋으련만.
선명하게 기억만 나니 미칠 노릇입니다.
물론 당신이 그러거나 말거나
소한은 항상 그렇듯 무뚝뚝한 표정으로
살얼음이 끼어가는 물을 마시며
빵을 꾹꾹 씹어먹고 있을 뿐입니다.
...내가 저놈을 팔이며 다리까지 다 올려서 끌어안고 잤다고.
저놈은 왜 무거워도 안 밀어낸 건데!
갑자기 조금 억울함이 몰려듭니다.



... 저기,


다음엔 끈으로 팔다리를 묶고 잘까?




다 큰 성인이 엉겨 붙으면 징그럽게 느껴지지 않,니...?


(바들바들바들) 아니, 뭐... 굳이 그렇게 붙을 이유도 없고...

(쟨 또 왜 저렇게 몸을 떨어?)

왜.......
안 밀어내는 거냐고!


내가 변태인 줄 알아?

갑자기 변태 얘기는 왜 나와. 너 아직도 술 덜 깼어?


물론 잠결이었겠지. 너 나 안 좋아하잖아.
의심도 안 했어.

뭐... 그럼 다행이고...
(다시 남은 빵을 먹는다) ...

(음, 상태 괜찮네. 도로 뚜껑을 닫고 넣는다)
(툭) 그러고보니 넌 우리가 어느 길로 갈지 한번도 나한테 안 묻더라. 날 그렇게 믿어?

지도도 있잖아.
어느 길로 가든 나보단 네가 더 베테랑 같으니깐... (냠냠)



그냥, 한 번도 안 물어볼 줄은 몰랐던지라.





(다 먹고 기지개를 쭉쭉 펴며) 으으- 별일 없어야 할텐데. 하루종일 걷는 것도 힘든데 괴물까지 마주치는 건 피곤해.

5분 뒤에 출발하자. 물건 빠뜨린 거 있나 체크해봐.

당신은 소한과 함께 물품을 챙기고 가방을 짊어진 뒤
다시금 거대한 백색의 침묵 속으로 몸을 던집니다.
밤 사이 새로 내린 눈이 뽀얗게 평야 위로 빛납니다.
당신은 소한과 여느때와 다름 없이 손목에 묶인 줄이 당겨지지 않도록
발자국을 따라 걷습니다.
무거운 짐을 짊어진 몸으로 소한의 등 뒤를 따라
어제 사투를 벌였던 언덕을 올라가면
누군가 물감을 뿌린 듯 진득했던 핏자국도,
거대했던 빙식체의 사체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매끄럽게 물결치는 하얀 눈의 곡선만이 끝없이 펼쳐져 있네요.
하지만 그 고요하고도 쓸쓸한 풍경 한구석에,
거칠게 깎은 나뭇가지를 엇갈려 묶은
십자 모양 말뚝이 서 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못 보았던 것인데...
소한이 어제 한다던 마무리가 이거였나 봅니다.


소한은 당신의 말에도 대꾸 없이 마저 걷습니다.
언덕 정상을 넘어 비탈길을 내려가기 시작하면
정면에는 깎아지른 듯 뾰족한 산맥이 옆으로 지나가고
그 끝에 아지랑이처럼 무언가가 가물거립니다.
당신은 소한이 발을 내딛었던 자국을 따라 걸으며
그렇게 어제의 격전의 현장을 벗어납니다.
.
.
.
회색빛으로 빛나는 상록수가 이끼처럼 끼어 있는 숲.
당신은 나무 뿌리에 발이 걸리지 않도록 신경쓰며
소한의 뒷모습을 조용히 따라갑니다.
나무가 바람을 막아주어서인지 바람 한 점 느껴지지 않아
그나마 따뜻하다고 느껴지네요.
발밑에서 밟히는 푹신한 이끼와 마른 나뭇가지 소리가 당신의 귓가를 채웁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상록수들은 마치 거대한 거인이 늘어선 것처럼
하늘을 빽빽히 가리고 있습니다.
나뭇가지마다 내려앉은 서리는 보석처럼 차갑게 반짝이고,
그 사이를 지나는 당신들의 입김만이 하얀 안개가 될 뿐입니다.




| 기준치: | 55/27/11 |
| 굴림: | 37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그렇게 얼마나 걷고 있었을까요.
무언가 확언할 수 없는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옵니다.
무언가, 우드득 부러지는 소리입니다.
발끝이 반사적으로 멈춰섭니다.
이건... 무슨 소리죠?
빙식체의 소리?
아니면 짐승이 접근하는 소리?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소리라 알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멀뚱멀뚱 선 채로 가만히 서 있으면
소한은 곧 심상치 않은 기색을 알아채고는
당신에게 가까이 다가와 곁에 서고 주변을 엄호합니다.

빙식체?

무언가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당신의 귓가를
계속해서 간지럽힙니다.
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무겁고, 사방에서 짓누르듯
당신의 신경을 압박해옵니다.
그렇게 얼마나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었을까요.
우르르 무언가 쏟아지는 굉음이 대지를 뒤흔듭니다.
지진과도 같은 진동이 발끝으로 넘실거리며 몸을 흔듭니다.

| 기준치: | 75/37/15 |
| 굴림: | 68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34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간신히 중심을 잡아 바닥에 제대로 발을 딛고 서면
숲을 뒤덮고 있던 평화가 눈 깜짝할 사이 깨지고
산맥의 거대한 설벽이 무너져 내리며 쏟아집니다.
생각이 잠시 멈춥니다.
이거... 말로만 듣던 눈사태? 지금?


발끝에 나뭇가지가 부스러지고 나무 뿌리가 걸리는 일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금 정수리부터 덮쳐오는 눈더미를 빼면 말이죠.
당신은 소한과 함께 발바닥에 불이 붙도록 지변을 박찹니다.
까마득히 스쳐가는 나무들을 뒤로하고 정신 없이 달리다보면
반대쪽 산맥에 발이 닿습니다.

| 기준치: | 55/27/11 |
| 굴림: | 56 |
| 판정결과: | 실패 |
도망칠 곳도 없는 상황에서 정신이 급격하게 무너집니다.
당신이 입술을 바들바들 떨며 점점 가까워지는 눈더미에 질끈 눈을 감으면
소한이 급히 당신의 손목을 붙들고 다시금 질주합니다.
공포로 물들었던 시야가 조금 가벼워지며
눈앞에 입을 벌린 작은 동굴 입구가 드러납니다.
홱!
당신들이 동굴 안쪽으로 몸을 던지고 옆 벽면에 몸을 숨기자
아슬아슬하게 수천 톤의 눈더미가 입구를 집어삼키며
'콰아앙!' 하는 소리와 함께 세상의 모든 빛을 차단해버립니다.
잠시 정적이 흐릅니다.
머리 끝까지 차오른 숨이 헐떡거리고
심장은 입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습니다.
죽음의 기로에서 벗어났다는 작은 안도도 잠시,
단단히 막혀버린 입구와 쏟아져들어온 눈 일부가
당신의 어두운 시야를 가리고 희미하게 비칩니다.
완벽한 정적.
그리고 코를 찌르는 흙먼지와 차가운 습기.
밖을 휩쓸고 지나간 눈사태의 여진이 동굴 천장을 타고 미세한 진동으로 전해집니다.

라비, 살아 있어?


다친 데는?
당신은 소한의 말에 천천히 행색을 살펴봅니다.
동굴 안쪽으로 그대로 몸을 던지는 바람에 무릎이 조금 쓸렸지만
방한복 겉면이 막아주어 피가 날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눈사태를 피하며 굴러들어온 탓에
옷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눈이
당신의 헐떡거리는 체온에 녹아 축축하게 젖어들기 시작했군요.
영하의 공기 속에서 젖은 옷은 그야말로 독.
당신은 서둘러 몸을 일으켜 그나마 남은 눈이라도 털어내보지만
당신의 노력이 무색하게 안에 파고든 옷은 거의 다 녹아버린 후입니다.
당신은 이가 부딪힐 정도로 몸을 떨며 팔을 감싸 쥡니다.


(내부가 어두운 탓에 네가 크게 다친 것으로 착각하고는) 피를 많이 흘렸어?


(주섬주섬 네게로 다가가 옷을 꼼꼼히 더듬어본다) 방한복이 축축하네. 안에 입은 옷도 다 젖었어?







(질끈-) 너 이거 성추행이야!

(보이지 않는 상태로 감각에만 의존해 위고 아래고 급한 손으로 마구 벗긴 다음, 속옷까지 다 끌어내린다)

(필사적으로 남은 속옷 한 장을 틀어잡으며) 씨... 너.. 너어-! 내가 알아서 벗는다니까?!







(가방에서 모포를 꺼내 급하게 바닥에 깔고는 너를 앉힌 뒤, 모포를 접어 방한복으로 덮이지 않는 허벅지와 종아리 부분을 덮는다) 동굴 안에서 바람소리 들려?


| 기준치: | 80/40/16 |
| 굴림: | 48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당신이 내뱉는 숨소리와 소한이 다급하게 내뱉는 숨소리 말고는
딱히 바람 소리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습니다.
내부에서 바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건
크게 두 가지 경우입니다.
동굴이 한 쪽으로만 파여져 있거나,
아니면 반대쪽 입구가 아주 멀리 있어서 소리가 희석되었든가.



삽질을 할 수도 없잖아.

무언가 쇠로 된 물체가 입구쪽 눈을 푹 틀어박히는 소리가 나더니
둥근 관을 통과하는지 스륵스륵 움직이고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울립니다.
아무래도 파이프로 무언가를 확인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딱히 소득은 없는지, 그는 여러 번 눈 속을 푹푹 찍고
곧 깊은 한숨을 내쉬며 눈에서 파이프를 뽑아냅니다.

제대로 갇혔어.

그럼 방법은 하나뿐이네.

너, 걸을 순 있겠어?





얼른 가자...

암흑이 지배하는 동굴 안,
소한의 단단한 팔이 밧줄 쥐이지 않은 손으로 당신의 허리를 감싸 쥐고
당신은 아무런 말 없이 그를 따라 걸음을 옮깁니다.
대충 걸친 모포 자락과 원래 옷보다 큰 방한복 사이로
찬 바람이 미세하게 스며들었다가 사라집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탓에 다른 감각이 더욱 선명해집니다.
이를 테면 겹치는 숨소리나, 옷감이 쓸리는 소리, 발을 옮길 때마다 신발에 채이는 돌멩이의 감촉.
소한이 벽면을 짚으며 천천히 발을 떼면 당신은 그를 따라 함께 발을 딛습니다.
바닥은 울퉁불퉁하고 고인 물 때문에 미끄럽지만
몸을 지탱하는 손아귀 덕에 균형을 잡는 게 비교적 쉽습니다.
질식할 수 있다는 그의 경고 때문인지,
들이마시는 공기 한 모금이 유독 무겁게 느껴집니다.
동굴 안은 기분 나쁠 정도로 습하고 비릿한 흙내음이 가득해,
마치 거대한 괴물의 식도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입니다.
벽을 짚은 가죽 장갑이 바위 표면을 미세하게 긁습니다.
정말이지, 이런 상황이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운도 지지리 없지요.

아직도 바람 소리는 안 들려?

하아... 기다려봐. (다시 눈을 감고 집중한다)

| 기준치: | 80/40/16 |
| 굴림: | 19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쿵, 쿵, 쿵 낮은 심장 소리가 겹쳐 들립니다.
당신의 심장도, 소한의 심장도 이 상황에서 진정하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겠죠.
당신은 애써 심장 소리를 무시하며 귀끝으로 온 감각을 집중시킵니다.
돌멩이 구르는 소리, 살얼음이 끼어 부서지는 소리,
간신히 맞추어 걷는 발걸음 소리가 세세하게 귓가를 파고듭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쎄한 바람 소리는 들리지 않는군요.


그나저나 이 동굴은 왜 이리 깊은 거야?




당신들의 발걸음은 동굴 안을 향해 더욱 더 깊숙이 들어갑니다.
추운 상태로 이동해서 숨이 벅찬 거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공기가 더 답답해진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같습니다.
소한 또한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지
허리춤에 느껴지는 손아귀에 더욱 힘이 들어갑니다.
당신은 그의 등 너머로 혹시나 작은 빛이라도 새어나오지 않을까 눈을 부릅뜨지만
조우하는 것은 오직 고체처럼 시꺼멓게 굳어버린 어둠뿐이네요.

넌 몸집이 작아서 공기도 덜 쓸 거야.


여기선 나보다 네가 생존가능성이 높잖아.



동굴의 경사면은 갈수록 점점 더 가파라집니다.
당신들은 어느새, 바닥으로 미끄러지지 않도록 반쯤은 동굴벽을 디디고 이동합니다.
허벅지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숨이 턱끝까지 차오릅니다.
이제는 힘들어서 숨이 차는 것인지, 공기가 희박해진 것인지조차
분간이 가질 않습니다.
스스로가 내뱉는 숨소리가 너무도 벅차
저 너머에 바람소리가 들리는지 아닌지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렇게 얼마나 반쯤은 암벽 등반을 하듯 동굴을 더듬었을까요,
소한이 갑자기 자리에 우뚝 멈춰 섭니다.
그의 뒤를 계속해서 따라 움직이던 당신은
소한의 듬직한 어깨에 이마가 불현듯 콩 부딪힙니다.


더 심해졌어.




거의 입구야.


이거 순 등반을 한 꼴이잖아?

게다가 경사만 다르지, 맨날 하던 거잖아.

하긴, 죽지만 않으면 됐지.
마저 가자. 이제 숨 크게 쉬어도 돼.

...근데 이렇게 꼭♥ 붙는 건 언제까지 해?


팬티까지 벗긴 놈이랑 꼭 붙어있으려니까 기분 되게 이상하거든?


이 변태야.










또 화상이라고 생각했지, 너?


당신은 궁시렁궁시렁 중얼거리면서도
소한이 끌어당기는 힘을 따라 마저 동굴을 오르고
이윽고 손에 잡히는 평평한 바위면을 딛어 일어섭니다.
하아, 여기까지 오는 데 기력을 잔뜩 썼네요.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 눈앞이 어지러울 지경입니다.
소한도 이 고행이 벅차긴 했는지 짧은 들숨과 날숨을 토해내네요.
소한은 잠시 쉬다가 입구가 근처라는 것을 감지했는지,
가방에서 양초를 꺼내 가볍게 성냥으로 불을 붙입니다.
당신은 바닥에 반쯤 앉은 채로 가만히 쉬다가
소한이 켠 촛불을 따라 안쪽을 바라봅니다.
길고 울퉁불퉁하기만 했던 동굴 속이건만
이곳은 무언가의 보금자리처럼 둥글게 반원아치형으로 깎여나가 있습니다.
촛불이 더 이동하고 다른 구역을 비추자,
그곳에는 차갑게 얼어붙은 거대 빙식체 하나가
쓰러져 벽에 기대어 있습니다.

(그리고는 빙식체의 움직임과 형태를 눈으로 쫓고는, 천천히 정자세로 돌아오며) ...안 움직이네.
놀래라.


죽어있는 듯 고요한 빙식체는 소한이 가까이 다가가도
손가락 하나 꿈쩍하지 않습니다.
정말로 얼어붙은 걸까요, 아니면 태어나지 못한 걸까요.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93 |
| 판정결과: | 실패 |

| 기준치: | 55/27/11 |
| 굴림: | 90 |
| 판정결과: | 실패 |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 어디에도 핵이 박혀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어제 소한이 사투를 벌였던 거대한 빙식체의 형태가
핵이 깨지고 머리가 동강난 뒤 흔적도 없이 연기처럼 사라졌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 멈춰있는 빙식체는 아예 평생을 동작하지 않았을 확률이 큰 것 같습니다.

| 기준치: | 80/40/16 |
| 굴림: | 17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당신과 소한이 그렇게 얼마나 숨을 죽이고 있었을까요.
외골격 뼈가 돋아난 빙식체의 뒤편에서,
좁은 틈새 사이로 휘익- 날카롭게 찢어지는 바람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번에는 소한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천천히 도끼를 손에 쥐어들고는
생겨날 때부터 버림받은 빙식체의 잔해를
거칠게 조각조각 부숴냅니다.
고요를 깨부수는 '콰드득, 챙—!' 하는 소리가
동굴 전체에 날카로운 메아리를 남깁니다.
딱딱한 것끼리 마찰하며 내부에 불꽃이 튀고 회색 파편들이 사방으로 흩어집니다.
곧, 소한의 거친 도끼질에 힘없이 부서져 나간 잔해들 사이로
마침내 감춰져 있던 출구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좁은 틈을 타고 밀려 들어온 바람이
동굴 안의 퀴퀴한 공기를 순식간에 밀어냅니다.
당신의 뺨을 스치는 그 시린 감각은, 역설적이게도
지금껏 느낀 그 어떤 온기보다 생생한 '삶의 증거'입니다.


소한은 들쳐메고 있던 배낭을 먼저 밖으로 던진 뒤
틈새를 비집고 밖으로 나가고는,
당신에게 배낭을 달라는 듯 손을 뻗습니다.
당신은 멍하니 동굴 내부를 둘러보다가
아차 싶은 생각으로 그에게 배낭을 건네줍니다.
여긴 대체 무얼 하는 곳일까요.
생각이 조금 많아집니다.
인간이 깎아낸 것이 아니라면 지어질 수 없는 이 둥근 아치의
요람 같은 공간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는 빙식체의 잔해라니.
물론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이것을 지었든, 아니든간에
당신들의 생존에는 관련이 없을 것입니다.

| 기준치: | 55/27/11 |
| 굴림: | 16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당신이 소한을 따라 동굴 밖으로 몸을 뻗으려는 찰나에
구석에서 무언가 둥그런 것이 반짝 빛납니다.
몸을 낮춰 그것을 본능적으로 확인해보려 하면,
표면에 의미심장한 각인이 박힌, 보석처럼 빛나는 구슬이로군요.
이런 건 또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색감이 숙성된 와인처럼 깊게 빛나는 것이
제법 값어치가 있어 보입니다.
어쩌면 진짜 보석일 수도 있겠군요.

당신은 보석을 챙기고는, 좁은 바위 틈새로 몸을 밀어넣습니다.
거친 바위 표면이 옷감을 긁지만,
눈앞에 점점 커지는 창백한 빛만은 선명합니다.
완전히 동굴 밖으로 빠져나오고 나면
당신은 소한과 거의 산꼭대기쯤 되는 능선에서
눈사태가 처참하게 휩쓸고 간 자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 위로 펼쳐진 흐린 하늘과 끝없이 펼쳐진 설원은
눈물겨울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오늘도, 어찌저찌 살아났네요.
인간의 목숨은 아주 연약하면서도, 이다지도 질긴 것인가 봅니다.

야... 소한... 나 옷 입고 싶어.




나 정했어.
지금 버릴래.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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