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깨진 유리 온실

  





언제 잠이 들었던 걸까요.
열이 끓는 소한을 따뜻하게 해준다고 함께 누워있다가
언제 깜빡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눈을 떠서 옆 자리를 바라보면
그곳엔 모포 자락만 남아 있네요.
소한이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나봅니다.
밖에 타닥, 타닥 모닥불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보면
바로 근처에 있긴 한 모양이네요.
라비헨:'설마 자는 사이에 괴물이라도 왔던 건가? 아니면 늑대?'
(등에 소름이 바짝 끼쳐서 다급하게 굴 밖으로 기어나온다) 소한?!
당신이 급히 굴의 가죽 덮개를 밀고 나오며
이름을 부르면 모닥불 앞에 앉아 있던 소한은
비교적 차분해진 표정으로 당신을 돌아봅니다.
뒤늦게 코끝으로 마른 겨울의 냄새와
살짝 비릿하면서도 고소한 지방질 냄새가 납니다.
소한:일어났어?
라비헨:어... (깜빡깜빡) 살아있네...
소한:...당연히 살아 있지. 내 목숨줄이 얼마나 질긴데.
와서 앉아, 밥 먹어야지. 자느라 계속 굶었잖아.
라비헨:그렇,지... (<< 상황이 상황이라 배고픈 것도 잊었다)
소한:...걱정하느라 배고픈 것도 몰랐어?
너도 참...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린다)
라비헨:(슬쩍) 너 때문이잖아...
(다시 굴로 들어가 겉옷을 챙겨 입고는 네 옆에 앉는다)
소한은 당신이 급히 겉옷을 챙겨입고 나오자
별뜻 없는 손길로 당신의 겉옷을 마저 여며줍니다.
그리고는 다시 요리를 하는 데에 집중하네요.
무얼 만들고 있나, 확인해보면
작게 다져진 붉은 살코기가 말린 허브와 섞여
기름에 튀겨지듯이 구워지고 있습니다.
소한:내 걱정하지 말고 마음 놔. 나 이제 열 내렸어.
라비헨:그래 보여. ...깨워주지 그랬어.
소한:피곤했는지 푹 자길래. 아침 다 만들면 깨우려고 했지.
라비헨:(툴툴) 또 혼자 다 하려고 하지.
소한:챙겨주는 거거든?
라비헨:챙겨주다가 열 난 게 어디 사는 누구야?
소한:... 계속 뭐라 그러네. (툴툴)
라비헨:넌 잔소리 좀 들어도 돼. 도와주겠다 해도 뭐든 혼자 하려들잖아. (쫑알쫑알)
이번에도 나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소한:나보다 네가 약해보이니까. 그리고 내가 연장자고.
...몰라. 죽었으려나. (모닥불만 응시하며 고기를 계속 볶는다)
라비헨:연장자는 무슨- 얼마 차이도 안 나면서!
약하지도...!
...
(외면...) 총 든 놈이랑 칼 든 놈이랑 같아?
넌 키도 너무 크고...
소한:(피식 웃으며) 그래. 내가 훨씬 크긴 하지.
넌 더 먹고 더 크기나 해.
그래야 나도 마음 놓고 일 맡기지.
라비헨:또 열받게 하네...
네가 과할 정도로 큰 거라니까.
소한:그럼 내가 작아져?
라비헨:(찌릿) 무릎 꿇고 다녀. 내려다보는 거 은근 열받는다고.
소한:차라리 업고 다니는 게 낫겠는데. (나무 수저로 안을 휘휘 젓다가, 간단하게 맛을 본다) ...먹을만 하네.
라비헨:... 겉보기엔 엄청 고급 요리 같이 생겼어.
소한:먹어볼래? (가볍게 한 스푼 뜨고는 네 입가에 내민다)
라비헨:(별 생각없이 입을 벌린다)
소한:(잠시 김이 덜 날 때까지 식힌 후 네 입에 쏙 넣어주며) 어때. 괜찮아?
라비헨:(한 쪽으로 씹어서 볼이 튀어나온 채 우물우물거린다) 맛있어.
소한:(볼 빵빵해진 게 다람쥐 내지는 토끼 같네...) 그래? 더 먹을래? (다시 한 스푼을 뜨고는 잘 식혀 내민다)
라비헨:(아- 하고 입을 벌려 야물딱지게 받아먹는다) 너도 먹어.
소한:(잘 먹네... 그래, 이 자식이 귀여워 보이는 건 내가 그렇게 보는 게 아니다. 이 놈이 원래 그런 거다)
그래, 접시 담아줄게. (옆에 꺼내뒀던 그릇에 잘 볶은 고기를 반씩 담고는, 수저를 꽂아 네게 건넨다)
라비헨:아, 땡큐- (심플하게 대답하며 그릇을 받고 마저 먹는다.)
소한:(저도 식사를 하려다가, 어쩐지 홀린 듯이 네가 먹는 모습을 먼저 구경한다)
라비헨:(또 한쪽으로 씹어서 볼이 톡 튀어나온다) '요즘 계속 고기만 먹는 느낌이네. 육포에- 생선에-'
(냠냠 먹다가 혀로 입맛을 다시고는) ...? 뭐 해?
안 먹어?
소한:구경.
라비헨:...???
뭘 구경해.
내가 밥 먹는 걸 구경한다는 거야?
소한:응.
라비헨:...? (일단 한입 또 먹고는 잠깐 생각에 빠진 듯 눈을 데굴데굴 굴린다) ... 혹시 머리를 다쳤어?
소한:...내 머리는 멀쩡하거든?
라비헨:근데 갑자기 밥 먹는 건 왜 구경해?
소한:원래 사람은 귀여운 걸 보면 기분이 좋아져.
라비헨:(쿨럭쿨럭) 켁, 켁...
소한:(무심하게 툭 물병을 내민다)
라비헨:ㄴ, 나, 물... 물
흐... (물병을 받아 마시고는 입술을 훔친다) 뭔 소리야?
소한:객관적 사실.
라비헨:진짜 열 내려간 거 맞아?
소한:? 맞는데.
라비헨:근데 왜 이상한 소릴 해.
소한:틀린 소리도 아니잖아.
라비헨:귀엽다는 말이 뭐가 맞아?!
소한:동물 같잖아.
라비헨:난 사람이거든?
소한:알아.
라비헨:그리고 남자한테 귀엽다니.
소한:내가 보기엔 작아서.
라비헨:또 작다고 그러네...
소한:(뻔뻔) 사실만 얘기하는 중인데, 난.
라비헨:너 뭐 잘못 먹었어?;;;
소한:?
라비헨:난 안 귀여워.
그리고 귀엽게 굴은 적도 없어.
소한:흠... (의외의 답변에 표정이 심각해진다) 믿기지 않는데.
라비헨:'쟤 진짜 왜 저래??!' 대체 뭐가.
소한:어딜 가나 귀엽다는 소리를 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라고?
라비헨:으... 전혀 아니거든?
너 어제부터 좀 이상해.
아니? 많이 이상해.
소한:흠...
진짜 내 머리가 맛이 간 건가? (툭 손을 뻗어 네 턱을 쥐고는 좌우로 돌려본다)
라비헨:(마저 씹고는) 당연히 네 머리가 콱 돌아버린 거지.
소한:가능성은 있지만, 그전에도 귀엽다고는 생각했던 것 같아. 그러니 그 가설은 기각.
라비헨:뭐가 "기각" 이야? 내가 안 귀엽다는데.
너 또 열받게 하려는 거지?
애새끼니 작느니 하는 거 못하니까.
소한:난 너 열받게 하려고 한 적 없는데.
네가 그렇게 받아들이는 거지.
라비헨:... 어쨌든 안 귀여워.
절대로.
소한:흠... (아닌 것 같은데. 자존심 문제인가) 그래. 알았어.
라비헨:(소름) '어으.. 씨;; 갑자기 왜 안 하던 짓을 하는 거야? 언제는 골칫덩이처럼 봤으면서.'
소한:(열심히 밥 먹는 일에 집중한다)
라비헨:...소한.
진짜 확 돌아버린 거면 말해...
해결할 수 있을 거야.
소한:어떻게?
라비헨:모르지. 난 의사가 아닌걸.
찾아보는 수밖에.
소한:의사는 다 죽었잖아.
라비헨:민간요법이라도 믿어야지. 별 수 있나.
소한:오... 야만스러워.
라비헨:그럼 뭐, 머리를 깨줄까?
소한:... 그건 덜 야만스럽다고 생각하는 거야?
라비헨:머리를 깨면 시원하기라도 할 거 아냐.
소한:저 세상 가니까 가벼워서 시원하긴 하겠네. (시큰둥)
라비헨:...
(밥을 다 먹고는 그릇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걱정하는 투로) 소한... 너무 미치지 마...
내가 있잖아...
소한:... 너, 기억하는진 모르지만 나 열 내렸거든?
게다가 고열도 아니었다고.
라비헨:알지...
아직 후유증이 남은 것처럼 보여.
그게 아니면 갑자기 귀엽다고 박박 우길 이유가 없잖아...
(가식적으로 눈가를 훔치며) 하아- 가엾은 소한...
소한:(어이 X)
내가 뇌에 이상이 생겨서 널 귀엽게 보는 게 아니거든?
라비헨:그게 아니면 뭔데.
귀엽다는 건 객관적인 사실이 될 수 없어. 상대적인 거라고.
그리고 난 객관적으로도 상대적으로도 안 귀여워.
소한:흠...
그럼 답이 도출이 안 되는데.
라비헨:그러니까 내가 말했잖아.
열 때문에 확 돌아버린 게 분명하다고.
후유증이 남은 거야...
소한:그 전부터 생각했다니까.
라비헨:... 수상한데.
소한:내가 할 소리야.
라비헨:넌 뭐가 수상한데?
소한:네가 거짓말 하는 거 아냐?
라비헨:내가 뭐하러 거짓말을 해?
소한:...자존심?
라비헨:...
에휴...
(그릇을 내려놓고 네 앞으로 다가가 눈높이를 맞춘다. 손바닥으로 네 이마 온도를 확인하며) 진짜 열 없는 거 맞아?
소한:(끄덕)
근데, 뭐 귀여워 보이면 어쨌든 좋은 거 아닌가?
라비헨:뭐가 좋은데?
너한테?
소한:정신건강?
라비헨:...?
역시 열이 있는 것 같다, 너.
아직 몸 속 깊은 곳에 열이 남아있는 게 분명해.
소한:? 나 정상인데.
라비헨:안되겠다. 제대로 확인해보자. (손을 치우고 이마를 맞대본다)
소한:(무덤덤히 부딪혀오는 네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굳이 이렇게까지?
라비헨:네가 엄청난 헛소리를 하고 있으니까 그렇지.
소한:난 네가 헛소리 하는 것 같은데.
라비헨:스스로 귀엽다고 하는 게 헛소리지.
소한:흠... 헛소리가 아니면, 눈치가 없어서 남들이 그렇게 봐도 모른 거 아냐?
난 솔직하니까 내가 사실대로 얘기해준 첫 사람인 거지. (온갖 추측)
라비헨:첫 사람이 너니까 무서운 거라고...
소한:?
라비헨:내가 아는 소한은 귀엽다는 말 같은 거 죽어도 안 할 놈이란 말야.
소한:? 나를 뭘로 보고.
라비헨:이상한 녀석.
소한:난 강아지 고양이 토끼 햄스터 할 것 없이 다 귀여워하는데.
너도 그 과잖아. (진짜로 그렇게 생각함)
라비헨:...?
'이게 드디어 미쳤나...?'
소한:표정이 이상한데, 너야말로.
라비헨:네가 자꾸 이상한 소릴 하니까 그렇지.
하아- 건강해졌으면 됐어.
머리가 이상해진 건 차차 생각해보자고.
소한:멀쩡하다고. 정 의심되면 산수 연산이라도 시켜보든가.
라비헨:... 아냐, 됐어. (<<어려운 산수는 잘 모름)
얼른 먹고 마저 앞으로 가자...
소한:(말이 안 통해서 답답해 뒤짐) ...그래.
라비헨:(<< 이쪽도 답답해 뒤지려고 함) 나 먼저 짐 싸고 있을게...
소한:어, 천천히 해. 나도 정리하게.
라비헨:(굴로 들어가 짐을 정리하며 생각에 빠진다) '약초 중에 정신을 깨우는 약초가 있었나...'
...그런 게 있을 리가요.
상처 치유용 약초도 귀한 이 판국에
있을 리가 없지요.
라비헨:(진지하게 걱정한다) '저거 저 정신머리를 어떻게 고치지? 단단히 이상해진 것 같은데...'
'키 다 큰 성인 남성을 보고 귀엽다고 우기는 걸 보면 진짜 심각한 수준인 것 같아...'
뭐, 그래도 어쩌겠어요.
이미 벌어진 일인 것을.
아무리 180도 돌아간 무언가를 한 번 더 돌리면
360도가 된다고 해도 사람한테 적용은 안 되겠죠.
라비헨:'앞으로 소한에게 친절하게 대해줘야겠어. 불쌍한 놈...'
당신이 복잡한 심경으로 물건을 배낭에 꼭꼭 챙겨넣으면
밖에서는 소한이 채비를 하는 달그락 소리와 발 소리가
간헐적으로 울립니다.
일단 복잡한 마음은 뒤로 하고
여행에 대한 걱정이나 합시다.
소한이 뭐가 어떻게 되었든
생존보다 중요한 건 없는 빙하기니까요.
.
.
.
밖으로 나오자, 소한은 이미 정리를 마치고 설원 위에 우뚝 서 있습니다.
차가운 바람에 흩날리는 그의 머리카락과 날카로운 눈매는 여전히 위협적이지만,
어디 아픈 놈이라는 생각 때문일까요, 좀 측은해 보입니다.
라비헨:(옆에 나란히 서서) 출발하자.
소한:(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다 챙겼으면.
라비헨:(흘긋) '상태는 정상인 것 같기도 하고...' 제대로 다 챙겼어.
소한:그래. (가까이 다가가 여느때와 똑같이 네 손목에 밧줄을 단단히 묶어주고는) 가자.
두 사람은 다시 끝없는 백색의 평원을 가로지릅니다.
소한은 평소처럼 묵묵히 앞장섭니다.
당신은 그 뒷모습을 보며 '밧줄 잘 묶는 걸 보면 인지 능력은 멀쩡한 것 같은데...'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죠.
하지만 설원의 날씨는 고민할 틈을 주지 않습니다.
지평선 너머로 검은 구름은 또 다시 몰려오고 있으니까요.
몸집을 불리는 검은 구름은 마치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저 구름이 머리 위를 덮는 순간,
단순한 눈발은 시야를 완전히 차단하는 화이트아웃(White-out)으로
다시금 변하겠죠.
벌써부터 이가 달달 떨리는 것 같습니다.
이 가혹한 환경에서 시커먼 구름이란
그 자체로 사람 목숨을 앗아가는 악천후니까요
발이 푹푹 빠지는 설원을 밟는 걸음마다
미미하게 눈송이들이 부츠 안쪽으로 파고들며
피부를 강렬하게 깎아냅니다.
그렇게 잠시 걷고 있었을까,
검은 구름이 정수리를 가득 메우며 굵은 눈발을 흘리기 시작할 때,
라비헨:
Spot Hidden Roll
기준치:55/27/11
굴림:68
판정결과:실패
소한:
Spot Hidden Roll
기준치:60/30/12
굴림:58
판정결과:보통 성공
소한이 잠시 설경을 가만 바라보더니
이윽고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킵니다.
눈이 부옇게 번지는 사이로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비칩니다.
어떤, 건물의 형태 같은데
반짝거림만 간헐적으로 비출 뿐
눈에 쌓여 자세히는 보이지 않네요.
소한:눈보라가 너무 거치니까 저기서 쉬었다 가자.
유리 온실 딸린 별장인 것 같네.
라비헨:여기서 저게 보여? 신기하네.
소한:시력은 좋은 편이라. (네 손목과 이어진 밧줄을 조금 당기며) 바닥면에 큰 돌이 많아. 더 붙어서 가자.
라비헨:알았어. '... 어째 내가 이녀석의 개가 된 기분인데.'
어쩐지 묘한 기분에 입술을 씰룩이며 걸음을 재촉하면
두 사람이 눈을 헤치고 도착한 곳은 과거 귀족의 별장이었을 법한
고풍스러운 별장 저택의 잔해입니다.
지붕은 반쯤 무너져 내렸고, 둥근 아치형의 유리 온실은
군데군데 유리가 깨진 채 내부를 드러내고 있네요.
그럼에도 안으로 들어서자 찬바람이 조금 잦아들 정도는 됩니다.
깨진 유리 파편들이 발밑에서 '작작' 소리를 내며 부서집니다.
내부를 둘러보면 각종 화려한 꽃들이 만발했다가
얼음에 그대로 얼어붙어 있는 것이 보입니다.
마치 투명한 조각품을 늘어둔 것 같은 모양새입니다.
소한:(발끝으로 유리 가루 섞인 눈을 툭툭 차대며) 급하게 들어왔는데 쉴 만큼의 장소는 못 되네.
라비헨:그러게. (꽃들을 살펴보며) 그래도 눈뭉치만 보다가 꽃밭을 봤으니까 좋은 구경했다고 쳐야지.
소한:... (너를 먼저 슥 보고는, 주변의 꽃들을 살펴보며) 꽃 좋아하나 보네.
라비헨:(당연하단 듯이 끄덕인다) 응, 예쁘잖아.
넌 안 좋아해? '보나마나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은데.'
소한:(잠시 말을 줄였다가) ...좋아하지. 예쁘잖아.
라비헨:...?
소한:? 왜 그런 반응이야.
라비헨:(잘못 들은 건가 싶어서) 진심이야?
소한:예쁜 거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
라비헨:... 안 좋아할 거라 생각했어.
넌 효율적인 거 좋아하잖아.
예쁘기만 하고 쓸모 없다고 생각할 줄 알았지.
소한:세계가 이지랄 나기 전에는 나도 그렇게까지 효율만 따지진 않았거든?
뭐, 예뻐도 쓸모는 없지. 그건 인정해야지.
라비헨:뭐야?
소한:꽃의 효용성은 보통 선물이지만, 선물할 사람도 없잖아.
라비헨:그건 그렇지...
난 보기만 해도 좋던데. 향도 좋잖아.
소한:(엄청 좋아하나 보네... 잠시 고민하며 주변을 살피다가 가장 크게 핀 모란꽃 줄기를 나이프로 삭 베어내 네게 준다) 얼어서 향기는 못 맡겠지만, 그렇게 좋아하면 큰 걸로 챙겨.
라비헨:(뭐지? 얘가 나한테 꽃을 선물한다고? 얼빠진 얼굴로 눈만 깜빡이다가 뒤늦게 꽃을 받는다) ... 이거 선물로 주는 거야?
소한:(끄덕)
라비헨:아니면 좋아하니까 챙기라는 ㄱ...
선물이구나.
소한:별로야? 그럼 다른 걸로 골라봐 네가.
라비헨:아니, 별로라는 뜻은 아니고 ... 의외라서.
소한:선입견이 의외로 엄청나네...
라비헨:선입견이 박힐 만도 하지. 싹싹한 편은 아니잖아, 네가.
꽃은 보통 특별한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기도 하고.
소한:흠... 파트너면 특별한 거 아냐?
라비헨:다른 파트너들한테도 이런 거 줬어?
소한:그건 아니긴 해.
라비헨:왜?
소한:발견하면 지들이 알아서 먼저 챙겼거든.
라비헨:아.
... (슬쩍) 난 꺾을 사람은 아니지. 꺾으면 금방 시들어버리잖아.
소한:얼어붙은 건 안 시들어. (담담하게 얘기하고는 주변을 조금 더 둘러본다) ...앉을 만한 데가 없네.
라비헨:그럼 이건 이미 죽은 건가... (중얼)
소한:어떤 면에서는 영원히 산다고 생각하는 게 낫지.
라비헨:(피식) 네 입에서 그런 감수성 넘치는 말이 나올 줄이야.
소한:뭐, 우리가 보는 건 죄다 살아생전이잖아.
실질적으로 겉보기에 다를 것도 없고.
라비헨:그렇지.
... (옅게 미소지은 채 꽃 줄기를 돌려가며 천천히 감상하다 소중하게 두 손으로 잡는다) 고마워, 소한.
꽃을 선물한 적은 있어도 받은 적은 처음이야.
소한:? 네가 받은 적이 처음인 게 더 의왼데.
라비헨:? 왜 의외라 생각해?
소한:인기 많았을 것 같아서.
라비헨:하하, 또 그 소리야? 난 숲에서 살았는걸.
소한:얼마나 깡촌이었길래.
라비헨:이웃집이 있지는 않았지...? 그래도 조금만 걸으면 마을이었어.
소한:...진짜 깡촌이었네.
라비헨:솔직히 내가 인기 많았을 것 같단 말도 잘 모르겠어.
소한:성격이 좋잖아. 깡촌만 아니었으면 좋았을걸.
라비헨:그럼 너는? 인기 없었어?
소한:모르겠는데. 관심이 없어서.
라비헨:...? 선물 같은 거라도 받아봤을 거 아냐.
소한:(잠시 고민하며) 흠... 선물인가. 뇌물은 받아봤어.
라비헨:뇌물...? '공장 주인도 아닌데 벌써부터?'
예를 들면?
소한:흠... 공장 신입의 부모가 자기 자식 잘 보살펴달라고 건넨 거?
라비헨:...그,렇구나.
소한:보통 나를 어려워하니까, 그럴만도 하지.
라비헨:
Listen Roll
기준치:80/40/16
굴림:88
판정결과:실패
눈보라가 유리 천장을 갈갈 긁어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당신이 멍하니 소한의 말을 곱씹으며 생각에 빠질 찰나,
'챙강-! 콰아앙-!'
굉음과 함께 날카로운 유리 조각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립니다.
소한:(급히 머리 위로 깨지는 유리 조각을 피해 이마를 가리며 너를 뒤로 팍 밀친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죠?
당신이 얼떨떨하게 소한에 의해 뒤로 밀쳐지고
반사적으로 눈을 꽉 감으면, 그 잔상 너머로
공중에서 떨어지는 빙식체의 형체가 보입니다.
천장의 철골 프레임에 매달린 채 동면 중이었던 걸까요.
육중한 몸이 천장을 부수며 직하강한 모양입니다.
유리 가루에 소한은 도저히 눈을 뜨지 못한 채 손을 급히 뻗어
총신을 한 손에 쥐고 공격을 막아보려 하지만,
소한:
민첩
기준치:65/32/13
굴림:34
판정결과:보통 성공
빠각-!
급히 정면으로 꺼내든 총은 공격을 가까스로 받아낸 뒤
절반으로 두동강나고 맙니다.
빙식체가 앞발을 낫처럼 휘두리며, 곧장 공격을 시작합니다.
좁은 온실 안인지라 활동하기가 여의치 않네요.
라비헨:
Spot Hidden Roll
기준치:55/27/11
굴림:2
판정결과:극단적 성공
소한의 총에서 뜯겨나온 금속 파편이 바닥을 구르고
소한의 손등은 찢긴 금속에 의해 붉은 선이 지익 터집니다.
라비헨:
SAN Roll
기준치:53/26/10
굴림:45
판정결과:보통 성공
당신은 급박하게 벌어진 상황에 튄 혈흔을
신경쓸 겨를 없이 무기를 쥐어듭니다.
지금은 공포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니까요.
빙식체는 소한과 너무 근접한 상태입니다.
일반 빙식체인지라 처치가 힘들 것 같지는 않지만
소한은 총이 부러졌다는 사실에 놀랐는지 잠시 머뭇거리네요.
이곳에서 석궁을 쏘면 잘못하다간 소한이 맞을 수도 있겠습니다.
공격순서: 라비헨 > 빙식체 > 소한
라비헨:(즉시 배낭에서 석궁을 꺼내 조준한다. 소한이 흐르는 피가 시야에 또렷하게 담겨, 조준한 손이 아슬아슬하게 떨린다. 숨통이 조여들 정도의 정신적 고통을 무시하려 입술을 짓씹으며 눈을 반쯤 구긴다) '제발 한방에 맞아라...!'
쇠뇌(석궁)
기준치:60/30/12
굴림:2
판정결과:극단적 성공
피해:5
빙식체 1:
회피
기준치:25/12/5
굴림:78
판정결과:실패
당신이 쏜 화살은 좁은 온실을 삭 뚫고 지나가
빙식체의 어깨에 콱 박힙니다.
그러나 고통을 느끼지 못해서인지
움직임이 둔화되지는 않는군요.
빙식체는 부상을 당했건 말건 소한을 향해 단번에 날카로운 팔뚝을 위로 치켜올립니다.
빙식체 1:
할퀴기
기준치:25/12/5
굴림:6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피해:1
소한:
Dodge Roll
기준치:30/15/6
굴림:96
판정결과:대실패
공격을 미처 피하지 못한 소한의 목선에서
일순간 붉은 혈흔이 짝 솟구칩니다.
라비헨:
SAN Roll
기준치:53/26/10
굴림:33
판정결과:보통 성공
시야가 잠시 흔들렸다가 멈춥니다.
모든 장면이 슬로우모션처럼 건너가지만
뺨을 거칠게 때리는 눈보라의 냉기 때문인지
감각은 더 예리해집니다.
소한:윽...! (잠시 신음하다가 치명상이 아님을 깨닫고 곧장 마저 빼어든 도끼를 휘둘러 빙식체의 목을 가격한다)
벌목용 도끼
기준치:60/30/12
굴림:52
판정결과:보통 성공
피해:5
빙식체 1:
회피
기준치:25/12/5
굴림:7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그러나 상황이 상황이라서일까요.
소한이 비틀거리며 내지른 공격을
빙식체는 손쉽게 회피해버리고 맙니다.
공격순서: 소한 > 라비헨 > 빙식체
소한:아씹...! 좆만한 게. (거리를 확 좁히며 도끼를 거칠게 휘두른다)
벌목용 도끼
기준치:60/30/12
굴림:15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피해:7
빙식체 1:
회피
기준치:25/12/5
굴림:80
판정결과:실패
퍽-!
소한의 도끼가 거칠게 달려들기 무섭게
공격 범위에 그대로 노출된 빙식체의 가슴팍이
도끼날에 팍 찔리며 잘려나갑니다.
소한의 일격으로 빙식체의 가중심이 무너지고
괴물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온실의 화단 위로 볼품없이 처박힙니다.
소한:으... 쓰려라. (갖은 인상을 쓰며 목덜미에서 울컥울컥 치솟는 피를 손바닥으로 꽉 지압한다)
라비헨:(긴장했던 탓에 숨을 몰아쉬며) 헉... 헉... 끝,난 건가...?
소한:(숨을 작게 할딱이며) 어, 죽었어.
하씨... 왜 위에서 튀어나오고 지랄이람.
라비헨:(들고 있던 석궁을 옆에 내동댕이치고 네게 달려간다) 소한...! 너... (곧 울 것처럼 초조한 목소리로) 피가 나.
소한:으... 괜찮아. 급소라서 피만 많이 나는 거야. (네가 또 겁에 질릴까봐 상처 부위를 가린 채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라비헨:급소를 다친 거면 큰일이잖아...! 말하지 말고 있어!
당신은 소한에게 황급히 다가가 환부를 숨기려는
그의 손을 잡아채 슬며시 떼어봅니다.
울컥,
소한이 손을 떼어내자마자 새빨간 피가
막힌 강둑 터지듯이 왈칵 터져나옵니다.
라비헨:
SAN Roll
기준치:53/26/10
굴림:23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라비헨:
First Aid Roll
기준치:30/15/6
굴림:33
판정결과:실패
당신은 황급히 배낭을 닥치는대로 뒤지고
소한이 소지하고 있던 가루형 지혈제를 꺼낸 뒤
옷깃 한쪽에 맥가이버 칼을 대 찌익 찢어냅니다.
그러나 울컥 치솟는 피가 손바닥을 가득 적시는 감각에
손끝이 오갈데 없이 자꾸만 그대로 정지합니다.
소한:(가만히 네게 치료를 받으려다가, 눈동자가 떨리는 것을 확인하고는) ...내가 할게. 괜찮아.
밖에 망 좀 봐줘. 괴물이 또 올 수도 있으니까.
라비헨:피가 계속 나는데 어떻게 혼자 하겠다는 거야...! 내가...! (까지 말하고는 멈춘다. 막무가내로 하겠다고 우기기에는 손이 세차게 떨리는 걸 인지한다.) ...
(이런 긴급한 상황에서도 제대로 된 도움이 되질 못해 잠시 입을 다물었다 뗀다) 알았어.
소한:응. (네 손에 들린 지혈제와 천을 대신 들고 천천히 응급처치를 시작한다)
소한:
First Aid Roll
기준치:60/30/12
굴림:63
판정결과:실패
당신은 짙은 피비린내를 맡으며 한 걸음 물러섭니다.
소한은 이따금 통증으로 얼굴을 찌푸리면서
천천히 지혈제를 뿌리고, 천을 쥔 채 목에 감으려 애씁니다.
그러나 어깨가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더 크게 번져서일까요.
좀처럼 제대로 감아내지를 못하네요.
소한:(한숨을 푹 쉬며) ...라비, 한 번만 더 도와줄래?
라비헨:(심장이 고막을 찌를 것처럼 미친 듯이 쿵쾅거린다. 속눈썹이 잔잔히 떨릴 정도로 눈을 감고 심호흡한다. 마음을 조금이라도 진정시킨 후, 다시 네게 다가가 처치를 도와준다) ...급소라 조금 세게 감을 거야. 아파도 참아.
소한:...걱정 마. 아픈 건 잘 참으니까.
라비헨:
Sleight of Hand Roll
기준치:50/25/10
굴림:8
판정결과:극단적 성공
당신은 떨리는 손가락 끝에 온 신경을 집중합니다.
소한의 목덜미에서 솟구치는 붉은 박동이 손등에 뜨겁게 닿을 때마다 심장이 덜컥거리지만,
지혈이 늦어지면 그의 생명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당신을 각성시킵니다.
주변의 소음이 소거되고, 오직 소한의 거친 숨소리와
피가 배어 나오는 상처 부위만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당신의 손은 방금까지 떨렸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계적이고 정교하게 움직입니다.
지혈제가 상처 깊숙이 스며들도록 정확한 압박점을 찾아 누른 뒤,
천을 당겨 매듭을 짓자 왈칵 솟던 피의 양은 어느새 줄고
비릿하던 피 냄새도 눈 냄새에 슬며시 지워지기 시작합니다.
소한:(고통으로 굳었던 표정을 서서히 풀며, 긴 숨을 내뱉는다) 하아... 죽지는 않겠네. 고마워.
(잠시 시선이 어두워지며) 이대로 행군 계속할 수 있으려나. ...총까지 부서져서는.
라비헨:(화내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르겠는 투로) 당연히 안 죽어야지...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지도 상에서 제일 가까운 마을은 없어...?
소한:...
내 고향이 이 근처긴 해. 사흘 정도.
(사실 황폐화된 모습을 본 뒤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는데...) ... 총은... 거기 내 다른 수렵용 총기도 있으니까, 그중에서 하나 고르면 될거야.
라비헨:하아... 다행이다. 최대한 빨리 이동해야겠네.
사흘이면 정말 운이 좋지 않는 이상은 괴물을 마주치지 않긴 어렵겠네. 그놈들이 무식해서 소리를 꽥꽥 내주길 비는 수밖에.
... 만약 가는 도중에 이번 같은 상황이 또 일어나면, 나를 앞에 세워. 피하는 데에는 자신 있으니까.
소한:(잠시 입술을 달싹이다가) 원거리 주력인 사람이 앞에 서서 어떡하려고.
라비헨:그럼 다친 사람을 앞세우란 말이야? 그렇게는 못 해.
소한:고집불통...
라비헨:고집은 환자인 네가 부리는 거겠지.
그리고 많이 말하지 마. 상처 벌어지니까.
평소처럼 조용히 해.
소한:엄청 까탈스럽네. (잠시 짐이 가득 든 배낭을 골칫거리처럼 바라본다) ...이동하려면 무게를 더 줄여야겠네. 먹을 게 많아져서 좋았는데.
라비헨:마을 가서 재정비하면 되지.
... 오늘은 내가 식사 준비할게. 넌 좀 쉬어.
소한:...미안. 요즘 짐만 되네.
라비헨:(찌풀) 무슨 헛소릴 하는 거야? 언제 짐이 됐다고.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무게 비울 겸 만찬이라도 차려야겠네. 환자를 위한 특식이라 생각해.
소한:... 알았어. 야영은 근처에서 해? 아니면... (온실 너머의 지붕 무너진 별장을 가리키며) 저쪽이 아직 쓸만한지 확인?
라비헨:(무릎을 짚고 일어서며) 확인을 하긴 해야겠지. 이런 다 무너진 온실에서 좋은 게 나올까 싶지만.
소한:그래도 밖에서 모닥불 피우는 것보단 낫겠지. (다치지 않은 쪽 어깨로 배낭을 매고는) ...빨리 나을게.
라비헨:빨리 낫고 싶으면 무리하지나 마.
... 잠깐.
(발걸음을 옮기려다 다시 네 뺨에 손을 올리고 얼굴을 돌려가며 요리조리 살핀다) 근데 너, 눈은 괜찮은 거야? 얼굴은?
아까 저 놈이 떨어졌을 때 유리조각 나 대신 다 맞았잖아.
소한:(잠시 가까워진 네 얼굴을 홀린 듯 빤히 바라보다가, 뒤늦게) ...괜찮아, 눈에는 안 들어갔어. 총은 박살났지만.
라비헨:흠... 확실히 눈에 들어가진 않은 것 같네.
총은 어쩔 수 없지. 안에 장전했던 탄환이라도 챙겨.
소한:응. (주섬주섬 탄환을 챙겨 주머니에 넣는다) ...확인하러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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