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악몽
당신의 의식은 차가운 설원을 지나 기억의 가장 어두운 심연으로 굴러 떨어집니다.
꿈속의 세상은 온통 붉은색과 흰색이 뒤섞인 비릿한 지옥입니다.
저 멀리, 잔뜩 찌그러진 몰골을 한 형체가
눈더미를 헤치며 당신을 향해 기어옵니다.
그것은 빙식체도, 짐승도 아닌...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동생 로만과 부모님입니다.
기괴하게 꺾인 팔다리를 바닥에 질질 끌며 다가온 그들의 눈구멍에선
눈물 대신 검붉은 핏물이 울컥 쏟아져 내립니다.
로만?:(턱이 빠져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형... 왜 나만 두고 갔어? 왜 혼자만 따뜻한 곳에서 숨 쉬고 있어?
부모님?:(부서진 두개골 사이로 뇌수가 흐르는 끔찍한 모습으로) 네가 우리를 죽인 거야, 라비헨. 네 그 잘난 귀로 우리 비명도 다 들었으면서...!
로만?:(피 묻은 손으로 당신의 목을 조르듯 다가오며) 왜 우릴 죽게 둔 거야?! 어? 형도 우리처럼 얼어붙어야 해. 혼자 살아남은 벌이야...!

난... 그러려던 게 아니야... 미안해. 죄송해요...
(눈이 새빨갛게 달아오를 정도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입술을 달달 떤다) 잘못했어요, 전부 다 ...내가... 못나서 죄송해요...
죽이려던 게 아니야... 살리고 싶었어. 흑... 가까이 오지 마...
로만?:(피 섞인 침을 뱉어내며 비릿하게 웃는다) ...형, 그날 눈보라 속에서 못 들었어?! 내가 형 이름 부르면서 살려달라고 했던 소리. 그 잘난 귀로도 못 들었냐고! 어?!
부모님?:(손톱이 빠진 손가락으로 당신의 가슴팍을 거칠게 긁어대며) 혼자서 잘 먹고 잘 마시고...! 따뜻한 텐트 안에서 자니까 행복해?! 가족이 죽었는데?!
넌 살아남은 게 아니야. 우리를 제물로 바치고 목숨을 구걸한 거지. 배신자... 비겁한 자식...!

당신은 발작하듯 몸을 들썩이며 비명을 삼킵니다.
그때, 아무도 없는 줄로만 알았던 당신의 등 뒤에서
묵직하고 따뜻한 손이 어깨를 강하게 잡아챕니다.
'라비, 라비...!'
번쩍!
눈을 뜨자, 새카만 어둠이 몸을 감싸고 있습니다.
어느덧 서늘하게 식어내린 공기가 피부를 기어가며
소름 끼치는 한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꿈, 꿈이었던 걸까요.
하지만 그것이 한낱 꿈이었다는 안도보다는
가족을 남기고 혼자 살아남은 데 대한
지독한 모멸감이 먼저 치고 올라옵니다.
꿈속에서 느꼈던 동생의 서늘한 손길이 여전히 목덜미에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괜찮냐는 질문이 들려오는 쪽으로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어둠 속에서 어렴풋하게 보이는 시야 너머로
걱정과 짜증이 묘하게 섞인 듯한 소한의 얼굴이 보입니다.










당신은 입술을 달달 떨며 소한이 밀어넣은 조각을
엉겁결에 입안에 머금습니다.
처음 혀끝에 닿은 그것은 마치 나무토막처럼 딱딱하고 차가워서,
씹기는커녕 입천장이 까질 것만 같습니다.
당신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지도 못한 채,
입안 가득 찬 그 이질적인 딱딱함을 굴리며 멍하니 숨을 고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입안의 온기가
서서히 그 단단한 결을 파고들기 시작하네요.
바싹 말라 비틀어졌던 사과의 과육이
당신의 타액을 머금으며 조금씩 부풀어 오르고,
뻣뻣했던 섬유질이 말랑하게 풀려납니다.
질겅, 질겅.
조심스럽게 씹는 소리가 텐트 내부에 울립니다.
꿈속에서 당신을 옥죄던 로만의 차가운 손길이 조금씩 멀어져 갑니다.
현실의 단맛은 왜 이토록 끈질기고 질기기까지 한지요.
당신은 턱 끝까지 차올랐던 절망을 사과와 함께 씹어 삼킵니다.
싸늘했던 체온이 점차 정상으로 돌아옵니다.
당신은 입안에 남은 마지막 조각을 삼키며,
몸 위로 둘러진 모포를 조금 더 꽉 껴안습니다.

...사과 다 먹었으면 입 닫고 자. 내일도 강행군이야.
그리고 꿈은 현실이랑 달라. 착각하지 말고.

그런 건 나도 안다고...
나는 바보가 아니야.





너 때문에 시끄러워서 깼잖아.

그건 사과할게.

(...모포를 다 줬더니 조금 추워서 몸을 떤다)

(슬쩍 몸을 네쪽으로 붙이고 모포를 같이 덮어준다) 내일도 강행군이라며. 감기 걸리면 귀찮아질 거 아냐.

...잘 자. 악몽꾸지 말고.

너도 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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