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절체절명

  






라비헨:
SAN Roll
기준치:53/26/10
굴림:91
판정결과:실패
rolling (1d3+2)
(
(
2
)
+2)
=
4
선홍색 핏줄기가 하얀 설원 위를 더럽히며 솟구쳤습니다.
견고해 보이던 소한의 등이 당신의 눈앞에서 맥없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
세상의 모든 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집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뇌가 상황 처리를 멈춥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도,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도
머릿속이 하얗게 지워짐에 따라 똑같이 백짓장으로 물듭니다.
사방을 메운 하얀 눈보라 속에서 굶주린 빙식체 무리가
당신들의 여정을 비웃듯 사방에서 튀어나와 앞길을 가로막았었고,
소한은 당신을 등 뒤로 밀어 넣고는 굶주린 짐승처럼 달려드는 빙식체들을 향해
총을 쏘고 도끼를 휘둘렀다는 것까지는 기억이 납니다.
몰아치는 눈의 비린내와 화약 연기가 뒤섞인 아비규환 속에서,
소한은 괴물들의 거칠고 날렵한 공격을 피해 몸통을 찢어발겼고,
그 결과가 이겁니다.
끝없이 밀려오는 빙식체들의 물량 공세에,
찰나 균형을 잃은 순간 날카로운 발톱이 가슴팍을 길게 찢어낸 것.
소한의 두꺼운 방한복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가며 들리던
찌익, 불쾌한 파열음이 아직도 귀를 울립니다.
그리고 당신이 분수처럼 터져나오는 피를 보고 질렀던 비명도.
소한은 가슴이 길게 찢어지는 치명상을 입고도
마지막 남은 괴물의 숨통을 끊어놓은 뒤에야 안심된다는 듯 무너졌습니다.
그의 뜨거운 피가 차가운 눈을 녹이며 주변을 붉게 물들이고,
거친 숨소리는 가느다란 신음 그 이하로 계속해서 떨어져갑니다.
가슴이 난도질당하는 기분입니다.
라비헨:(믿기지 않는 상황에 눈을 크게 뜨며) 소, 한...
(무너져버린 소한에게 다가가 자신에게도 피가 스며드는 것도 개의치 않고 끌어안는다) 소한...! 소한!!
소한:(초점 없는 눈으로 너를 가만히 올려다보다가, 울컥 검붉은 피를 토해낸다) ㄱ, 찬... 쿨럭...
라비헨:(온통 피범벅이 된 소한을 보며 시야조차도 붉어진다. 눈가에 점점 눈물이 들어차더니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힘없이 고개를 젓는다) 아냐, 안 돼... 말하지 마... 피 나잖아...
(자신의 옷으로 네게 묻은 피를 미친듯이 닦으며)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내가 붕대를, 아니, 굴부터...
(대체 뭘 해야 좋을까. 머릿속에 긍정적인 희망보다 당장 소한이 죽어버리는 건 아닐까란 생각만 가득찬다) 죽지 마... 죽으면 안 돼-
당신은 떨리는 손으로 그의 상처를 압박하려 하지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그 뜨거운 열기에 정신이 아득해집니다.
평소라면 당신의 호들갑을 무뚝뚝하게 받아쳤을 그는
이제는 창백하게 질린 채 초점 없는 눈으로 파랗게 질려 있을 뿐입니다.
지금 당신의 무릎에 머리를 뉘고 누운 소한의 가슴팍에는,
어깨부터 명치까지 이어지는 참혹한 흉상이 길게 입을 벌리고 있습니다.
출혈이든, 장기 손상이든, 빙식 현상이든
그 어느 것 하나 피해가기 힘들어보일 정도입니다.
당신의 손가락 사이로 쉼 없이 차오르는 그 뜨겁고 진득한 액체는
소한의 생명력을 앗아가는 모래시계처럼 느껴집니다.
마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죽음도 자연히 따라온다는 것처럼.
무자비하고, 사람을 무가치하게 만듭니다.
소한의 창백한 입술 사이로 터져 나온 검붉은 선혈은 당신의 뺨에 튀어 차갑게 식어가고,
그의 눈동자는 이제 당신의 얼굴조차 제대로 담지 못하는 듯 흐릿해져 갑니다.
그러는 와중에도 빙하기의 냉기는 참혹하게도
그 울컥 터져나오는 피마저 금세 얼음처럼 사각사각 얼려버립니다.
소한:(찢겨나간 가슴팍이 불을 지지는 것처럼 뜨거워 생리적인 눈물을 맺다가, 아른거리는 네 얼굴을 보고는 길게 한숨을 뱉으며 눈이 까무룩 감긴다. 죽으면 안 되는데, 얘를 혼자 어떻게 둬... 미치겠네... 한 숨, 잘까...) ...
라비헨:자면 안 돼, 흡... 조금만 버텨줘. (제 품에 있던 홍심석을 꺼내 덜덜 떨리는 손으로 네 손에 쥐여준다) 당장 응급처치해줄게. 피가 너무 많이 나...
라비헨:
지능
기준치:50/25/10
굴림:82
판정결과:실패
응급처치를 하려고 하지만 무엇부터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머릿속은 그저 멍하니 누군가가 불에 태운 것 같고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불을 피워서 체온부터 높여야 하는지,
안전하게 굴을 판 뒤에 소한을 눕히고 상태를 봐야 할지,
그것도 아니면, 당장 여기서 상처에 바느질을 해야 할지.
손이고 뺨이고 품이고 상관없이 흠뻑 피어오르는 피냄새에 아무것도 확신을 못하겠습니다.
파랗게 질린 그의 안색과 대비되는 붉은 상처가,
그가 당신을 지키기 위해 지불한 대가가
얼마나 가혹하고 처절한 것인지를 증명하듯 선명하게 빛납니다.
소한이 죽지 않기를 바라는 당신의 희망은 눈보라 속에 흩어져가지만,
소한은 대답 대신 당신의 손등 위로 힘없이 손가락을 겹치며
짧은 경련을 일으킬 뿐입니다.
라비헨:(눈을 질끈 감으며)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살 수 있는 확률이 늘어나지? 생각해. 생각해내란 말야!!'
라비헨:
지능
기준치:50/25/10
굴림:34
판정결과:보통 성공
당신은 공포와 절망으로 마비된 사고를 억지로 비틀어,
오직 생존을 위한 냉정한 답을 끌어올립니다.
소한이 죽는다는 상상은 하기조차 싫지만,
만약 죽는다면 미래고 나발이고 저도 오래 못 가 죽을 게 뻔합니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살리는 선택을 하는 편이 낫습니다.
당신은 피 냄새에 질식할 것 같은 공포 속에서도
떨리는 손으로 배낭을 뒤져 지혈 가루와 바느질 도구,
그리고 홍심석을 꺼내 바닥에 늘어놓습니다.
일단 지옥 같은 눈보라가 들이치는 이곳에서, 우선 차가운 습기를 몰아내야 하니까요.
굴을 파고 들어가는 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겠지만, 어두운 굴속에서는 바느질을 할 여력이 없을 겁니다.
당신은 홍심석을 피로 얼룩지지 않은 눈밭에 내려놓고
급히 생수용으로 보관해뒀던 물통을 꺼내 위에 주르륵 붓습니다.
곧 불꽃이 일듯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뿌연 증기가 좁은 시야를 메우고
위로 따뜻한 기압 상승을 만들어내며 눈보라를 멀찍이 밀어냅니다.
주변 온도가 미미하게나마 오르기 시작합니다.
한시도 지체할 수 없어 당신이 피로 젖어 얼어붙은 소한의 옷을
가차없이 찢어 발기면,
드러난 가슴에 선홍색 흉상이 기괴하게 일렁이며
여전히 뜨거운 피를 토해내고 있습니다.
참혹한 상처에 반사적으로 헛구역질이 올라오지만
입술을 깨물며 버티는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상처 부위에 지혈 가루를 한 움큼 쏟아붓자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며 통증을 느낀 소한이 끙끙 앓는 신음을 흘립니다.
하지만 그의 투정을 받아줄 상황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쉴 틈 없이 불꽃에 달군 바늘을 집어듭니다.
장갑이 조금 타들어갈 정도로 뜨겁지만, 소독은 제대로 됐겠죠.
라비헨:
Sleight of Hand Roll
기준치:50/25/10
굴림:36
판정결과:보통 성공
수증기가 공기를 밀어낸 탓에 산소가 조금 줄어들어 숨이 탁해지지만
바늘을 쥔 당신의 손목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하게 고정됩니다.
당신은 바늘 끝에 실을 맨 뒤 차분하게 소한의 상처를 따라
한땀한땀 생살을 뚫고 바늘땀을 남깁니다.
마취조차 없는 지독한 고통에 소한의 몸이 짧은 경련을 일으키며 뒤틀리지만,
당신은 차마 봐주지도 못하고 한 땀 한 땀 찢어진 가슴을 엮어 나갑니다.
바늘이 살을 파고들 때마다 전해지는 둔탁한 감각이
손을 타고 심장까지 전달되며, 어쩐지 섬뜩하게 몸이 뻣뻣해집니다.
이윽고 상처를 다 꿰매고 나자, 우뚝 몸이 멈춰 섭니다.
가장 원초적이고 효과적으로 지혈을 막는 방법은,
시골에서 살던 당신조차 알던 것입니다.
생살을 불에 달군 인두로 지지는 것이죠.
라비헨:하아...하아- '마취조차 안 하고 이지랄하는 것도 미치겠는데, 생살을 지지라고?'
(당장 인두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파악한다. 그러나 자신이 상처를 봉합할 때도 괴로워하던 소한이, 살을 지져지기까지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안 봐도 고통스럽다. 숨을 헐떡이다가 입술을 짓씹으며 배낭에서 칼을 꺼낸다) '무섭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아무것도 안 하면 소한이 죽는 건 시간문제니까!'
당신은 뿌연 수증기 너머 홍심석을 도로 주워들고
아직까지 뜨겁게 타오르는 그것에 식칼을 빨갛게 달궈냅니다.
기분 나쁜 열기가 타오르며 살짝 타는 냄새를 눈동자에 전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건 압니다.
당신은 이 뜨거운 쇳덩이가 소한의 찢어진 가슴에 닿는 순간 벌어질 일을 상상하며
지독한 무력감과 절박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머뭇거릴 시간조차 사치라는 듯 소한의 가슴팍에서 배어 나오는 붉은 액체가
바느질한 땀 사이로 다시금 울컥 치솟아 오릅니다.
눈물을 닦을 새도, 주저할 시간도 없습니다.
당신은 짓씹힌 입술에서 나는 피 맛을 느끼며
뜨겁게 달궈진 칼날의 옆면을 그의 봉합된 상처 위로 단호하게 내리누릅니다.
치익-!!
날카롭고도 불쾌한 소리와 함께 살이 타들어 가는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가 좁은 공간을 가득 메웁니다.
반쯤 정신을 놓고 허공을 헤매던 소한의 눈동자가 그 지독한 고통에 반응하며
순간적으로 번쩍 뜨이고,
짐승 같은 비명과 억눌린 신음이 뒤섞인 괴성을 내뱉습니다.
그래도 이것이 응급 처치 과정이라는 걸 아는 덕인지
손톱이 갈라지도록 바닥을 긁어대면서도 몸은 가까스로 버팁니다.
핏줄이 터질 듯 붉게 충혈된 그의 눈에서 생리적인 눈물이 흘러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고,
손바닥을 타고 처절한 떨림이 전해집니다.
지혈을 위해 생살을 지지는 그 짧은 시간이 당신에게는 영겁보다 길게 느껴집니다.
마침내 칼이 적당히 식어 피부에서 떼어내고 나면
검게 그을린 상처 아래로 피는 더 이상 울컥 튀지 않고
반쯤 타버린 피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손이 경련하듯 파들거립니다.
소한은 뜨겁게 지져지던 고통이 사라지자
마지막 기력을 다 쓴 것처럼 풀썩 바닥에 늘어집니다.
덜컥 두려움이 밀려와 숨을 확인해보면,
정신을 놓고 기절을 했을 뿐, 다행히 아직 살아 있습니다.
이후의 생사는...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 없겠죠.
사위는 점점 어두워지고 눈발은 더욱 거세집니다.
사방이 피 범벅인 데다가 물건이 늘어져 난장판이지만
이곳이 피로 물든 무덤이 되지 않으려면,
조금이라도 빨리 서둘러 굴을 파는 수밖에요.
당신은 급히 모포를 꺼내 소한의 몸을 빙빙 둘러 감고는
굴을 파기 위해 삽을 꺼내듭니다.
라비헨:
근력
기준치:55/27/11
굴림:78
판정결과:실패
당신은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 꽁꽁 언 눈밭을 삽으로 쾅쾅 두드리지만
햇빛이 물러가고 난 자리의 설면은 딱딱하기 그지 없습니다.
게다가 응급처치까지 하느라 기력까지 거의 떨어진 상태.
라비헨:
Spot Hidden Roll
기준치:55/27/11
굴림:53
판정결과:보통 성공
절박하게 주변을 둘러보던 당신의 눈에 구덩이가 스칩니다.
방금 당신이 눈보라를 몰아낸다고 홍심석을 냅다 바닥에 던지고 물을 부어버렸던
바로 그 자리네요.
슬쩍 아래로 내려가보면 깊이는 1.5미터쯤 되고,
구덩이 안쪽의 눈은 그나마 연약합니다.
당신은 지체할 시간 없이 연약해진 구덩이 안쪽의 눈을 걷어내며,
소한이 몸을 뉘기에 충분한 공간을 필사적으로 넓혀 나갑니다.
당신은 소한과 함께 지내며 익숙해진 것처럼 안쪽에 급히 텐트를 치고
끙끙거리며 소한을 업어와 그 안에 밀어넣습니다.
그리고는 제 몸도 던져 넣고, 가죽 덮개로 입구도 막고 나자
밖의 매서운 칼바람이 막히더니 묘하게 아늑한 정적이 감돌기 시작합니다.
...제발 이곳이 무덤이 아니라 보금자리였던 곳으로 끝나면 좋겠습니다.
정신을 잃은 소한의 몸을 모포째 끌어당겨 안자
아직은 찬 공기 속으로 당신의 가쁜 숨이 하얗게 흩어집니다.
어둠이 짙게 깔린 구덩이 안에서 들리는 것은
오직 소한의 미약한 심장 소리와 당신의 억눌린 울음 섞인 숨소리뿐입니다.
피 냄새와 탄내가 뒤섞여 눈꺼풀이 축축하게 무거워집니다.
라비헨:'내가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했어. 그치만... 피를 정말 많이 흘렸는데, 소한이 살 수 있을까?' (자꾸만 불안한 상상이 머리를 스쳐서 또 눈물이 터져나오려다 고개를 휙휙 젓는다. 잃고 싶지 않아서 간절하게 소한을 더욱 끌어안으며) 소한, 제발 죽지 말아줘... 흑... 그동안 전부 잘 이겨냈었잖아. 너는 충분히 강한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
(눈을 꾹 감으며 흐느끼는 목소리로) 제발 나를 두고 가지 말아줘... 부탁이야...
좁은 텐트 안, 당신이 내뱉는 처절한 간청만이 얼어붙은 정적을 조심스럽게 흔듭니다.
하지만 당신의 눈물 섞인 부탁에도 소한은 그저 깊은 늪에 빠진 사람처럼 고요하기만 합니다.
심장이 자꾸만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기분입니다.
소한이 평소처럼 무뚝뚝하게 눈을 뜨고 시끄럽다고 대꾸해주면 좋겠습니다.
두고 가지 말라는 말에, 당연한 소리를 한다며 타박하는 목소리가 그리워집니다.
당신은 흐느끼는 와중에도 혹여나 그의 숨결이 잦아들까 싶어
그의 가슴팍에 귀를 바짝 댄 채 숨을 죽입니다.
가족을 모두 앗아간 차갑고도 무정한 죽음이
이번만큼은 옆에 있는 사람을 비켜가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
.
.
축축한 어둠과 피비린내가 뒤섞인 좁은 텐트 안.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겠고, 허기며 갈증까지 다 잊어버린 상태에서
당신은 세상이 멈춘 듯한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가
소한이 죽는 광경이 꿈에서 재생되어 소스라치게 눈을 뜹니다.
굴 속은 여전히 어둡습니다.
다만 숨구멍으로 뚫어놓은 가느다란 통로로 빛이 살며시 비치는 것을 보면
시간이 밤이나 새벽은 아닌 모양입니다.
당신은 잠시 몸을 돌리다가, 품 안의 소한이 아직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의 가슴팍에 귀를 가져다 댑니다.
하지만 들려오는 숨소리는 이전보다 더 가늘고 위태로운 데다가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한 가느다란 실처럼 흩어집니다.
라비헨:(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손발이 차게 식는다. 소한은 죽어가는 걸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는데도 떠나버린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좋지?) ...소한.
소한... 너 죽는 거 아니지? 그렇지...?
소한:(무의식에 풍덩 잠겨 있다가, 벌벌 떠는 듯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아주 천천히, 어둠을 밀어내듯 눈을 뜬다) ...ㄹ, (목이 건조하게 말라붙어 목소리가 갈라진다) 라...비.
라비헨:(갈라진 목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나 뺨을 쓸어내린다) 소한...!
(아직 살아있다는 걸 확인하고는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얼굴로) 정신이 들어?
아차- 목 마르겠다. 잠깐만... (허겁지겁 배낭에서 물을 챙겨서) 잠깐 일어날 수 있겠어?
소한:... (네 말에도 딱히 대꾸하지 않고 위를 바라본 채 눈꺼풀을 느릿하게 감았다 뜨고는, 눈동자만 미약하게 굴린다. 내가 죽어도... 얘가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모르겠다) ...
라비헨:(대답이 없는 것을 신경쓰지 않으려 애쓴다. 아직 말도 하고 살아있으니 몇 밤만 더 자면 평소처럼 자신의 손을 잡아줄 거라고...) ...내가 일으켜줄게. 입 벌려줄래?
소한:(피를 너무 많이 흘렸고 목도 마르지만, 전혀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마 너도 모르지는 않을 텐데... 제게 별로 가망이 없다는 것쯤은...) ㅈ, 금만 더... (목구멍에서 피비린내가 올라와 잠시 멈추었다가) 쉬고...
라비헨:(목소리를 들어도 알 수 있다. 소한이 로만과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것쯤은. 살 수 있는 확률보다 죽을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을. 밑입술을 굳게 깨물었다가) '이래서는 안되는 거잖아. 부모님도, 로만도 데려가놓고 소한까지 사라진다면 난...' ...
(울음을 꾹 참고 물이 든 병을 내려놓는다) 그래, 그러면... 조금만 더 쉬자, 응?
이럴 땐 푹 쉬는 게 최고랬어.
소한:(여전히 별 의욕 없이 느릿하게 눈을 깜빡거리다가 울먹임 묻어나는 네 목소리가 안타까워, 정수리 위에 손을 툭 얹고는 금방이라도 무저갱으로 끌려갈 것처럼 눈을 감는다) ... 밥은, 먹었어...? ㅁ, 어야지.
라비헨:(힘없이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는다) 난 괜찮아. 너랑 같이 먹고 싶어서 기다렸지-
소한:(혹시라도 널 두고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넝마처럼 찢긴다) ... 혼, 자라도, 먹어야지... 그래야 살지.
라비헨:...나는 너랑 같이 먹는 게 좋아. 그러니까 얼른 회복하는 데에만 집중해, 응?
소한:...
... 노력, 은 해볼게.
(하고 싶은 말은 한가득이지만, 말을 할 수 있는 기력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체감한다. 꼭 필요한 말만 해야 할 거라는 걸)
...라... 비. 만약 내가 죽으면... 근처에, 대충 묻어. 괜히 애쓰지 말고.
라비헨:... 하하-, 죽는다니 무슨 이상한 소리야... 너답지 않아.
소한:... (역시 아직은 받아들이기 어렵겠지, 라는 생각에 네 말에 대꾸하지 않고 마저 입술을 움직인다)
그리고... 변이가 시작되, 면... 네가 죽여줘.
...
네, 손에 죽고 싶어.
라비헨:...자꾸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 네가 죽긴 왜 죽어?
(네 손을 두 손으로 꼭 붙잡으며) 살아서 같이 살기로 약속했잖아...
빨리 살겠다고 약속해줘. 금방 기운을 차릴 거라고...
소한:...
너한텐... 거짓말... 하기 싫어.
운이 좋으면 살...겠지만. 알잖아... 살 확률이 적은 거.
라비헨:아니야. 너 엄청 강하고 튼튼하잖아.
상처가 나도 전부 다 나아서 흉터만 남았잖아...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해줘.
어서 약속해. 잘 이겨내겠다고... (간절하게 네 손을 더욱 붙잡으며) 나 버리고 가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
나, 흑... 저번에 빌지 못했던 소원... 지금 빌래.
내 소원은 네가 이번 상처도 말끔히 나아서, 함께 적도로 가서 사는 거야.
(눈물방울이 뺨을 가르고 뚝뚝 떨어지더니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펑펑 흐른다) 소원 들어줘... 그게 약속이잖아...
소한:... (저도 너와 떨어지기 싫은 마음이 간절하고, 함께 적도로 가서 사는 꿈도 그려봤지만... 그렇다고 꿈을 현실처럼 얘기하기엔 지금은 너무도 멀어진 얘기처럼 느껴진다. 실랑이한다고 해서 말이 통하진 않겠구나... 너는 원래 그런 애였지, 참. 내가 사랑하는 너는 원래 이런 애였던 걸 잠시 잊었다)
... 소원 못 들어주면... 원망할 거야?
(네 헤집어진 머리카락을 가늘게 쓰다듬으며 눈을 깜빡인다)
라비헨:(쉴새없이 눈물을 쏟아내며 끄덕인다) 그래... 흣, 엄청 원망할 거야.
평생 원망할 거라고.
소한:... (성깔은 여전하네... 귀엽긴. 네가 저 없이도 살 수 있다고만 하면 원망하든 안 하든 저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텐데도)
... 노력... 한다고 했잖아.
라비헨:약속도 같이 해...
(터져 나오려는 숨을 토해내고는) 꼭 살아서 나랑 함께할 거라고 말하란 말야...!
소한:... (말썽꾸러기... 고집쟁이... 바보 멍청이... 어쩔 수 없이 저 하고 싶은 말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눈동자를 슬쩍 굴려 네 반대편을 바라보며) ...혼자 짐 다 들고 가면 힘드니까... 홀로 가게 되면 지금 불러주는 것만 챙겨. 지도, 나침반, 식량, 철 냄비, 손도끼, 삽, 맥가이버 칼... 모포랑 텐트 천, 여분 옷...
...다른 거 무거워서 못 챙기면 이거라도 챙겨. 알겠지.
(이런 소리 하면 당연히 반발할 너를 알지만, 언제 또 정신이 들지 모르는 마당에...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한다)
라비헨:(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싫어...! 안 들을 거야!
네가 죽으면 나도 따라서 죽을래... 어차피 살 생각도 없었단 말이야...
(네 몸을 꼭 안으며 흐느낀다) 네가 살린 목숨이잖아. 그럼 이렇게 떠나면 안되는 거잖아...
소한:(애처롭게 우는 네게 마음이 기울어 어쩔 수 없이 꼭 끌어안고는, 작게 한숨을 쉬며 토닥거린다) ...너까지 죽으면 나 진짜 개죽음이야. 살아서 적도 가.
(지도를 조용히 떠올리며) ...남하하다 보면 방랑자들이 많이 모이는 마을이 하나 있을 거야. 지도에 적어뒀는데 물자는 없을 게 뻔해서 웬만하면 피해 가려고 했어... 거기 가서, 다른 파트너 구해서 적도까지 가.
(어쩐지 저도 눈물이 맺힐 것 같지만 꾹 눌러내린다. 누군가는 할 말을 해야 하니까) ...넌 귀엽고 착하고 사교성도 좋으니까 금방 새 파트너 구할 거야.
라비헨:(네 말 중 틀린 말은 하나도 없고 자신이 억지를 부린다는 것을 알지만 꿋꿋하게 부정한다) 너 말고 다른 파트너를 내가 왜 구해...? 싫어- 살아남아줘.
소한:(...알고 있었다. 넌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부정하고, 제가 살아남기만 하면 된다는 것처럼 얘기할 거란 거. 하지만 안다고 해서 가슴이 안 아픈 건 아니구나) ...
내가 죽어도... 넌 살아. 약속해줘.
나 죽는 날에 너도 죽겠다고 자꾸 오기부리면, 내가 너 두고 어떻게 가...
라비헨:그러니까 안 가면 되잖아!!
(네 손을 잡아 제 뺨에 비비며) 그러니까 너 먼저 약속해, 응? 부탁이야...
그럼 네 말 들을게.
소한:정말이지... 고집불통. 말도 안 듣고... (슬그머니 네 허리춤에 손을 넣어 제 품에 꼭 끌어안는다. 정말 울기 싫은데...)
(지키지 못하게 될 약속이라는 걸 예상함에도 약속해야 하는 건 정말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알았어, 약속할게. 안 두고 갈게.
그러니까... 너도 약속해. 안 죽겠다고.
라비헨:(연신 훌쩍거리며) ...알았어. 안 죽을게.
(약속을 강요하긴 했지만, 소한이 살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안 든다. 소한이 죽으면 저도 따라 죽을 생각으로 눈을 내리깐 채 네 품에 파고든다) 쭉- 함께하자, 소한.
소한:(네 거짓 약속을 제가 정말로 믿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바보. 바보 라비)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이라면, 내가 먼저 죽는 상황이 된다면 네가 제 유언을 들어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치졸한 계산을 해보며)
...
...라비.
라비헨.
...
소한:사랑해.
라비헨:(눈썹을 크게 들어올리며 입을 벌린 채 말없이 널 바라본다. 입술을 달싹이다가 눈물을 매달고 부서지듯 웃으며) 나도.
나도... 사랑해, 소한.
소한:(아직 더 널 보고 싶은데... 얼마 없는 기력을 한계까지 쥐어짠 탓인지 의식이 다시금 속절없이 침묵으로 빨려들어간다. 아직, 아ㅈ-...)
당신을 품에 가만히 끌어당기고 있던 소한의 손끝이
아래로 툭 곤두박칠치며 떨어져나갑니다.
순간 심장이 덜컥 밑바닥까지 떨어집니다.
당신은 다급하게 소한의 가슴팍에 귀를 대고,
여전히 심장이 뛰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후에야
조심스럽게 눈물을 훔치고 한숨을 토해냅니다.
생사의 고비는 여전히, 아직도...
버티기 힘들 만큼 많을 테지만.
소한이 부디 버텨주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
.
.
시간이 어찌 흘러가는 줄도 모르고,
울다 지쳐 잠들고, 깨어나 물을 먹고 먹이고,
다시 울다 지쳐 잠들고, 다시 깨어나 상태를 확인하고.
정신은 그에 따라 갈수록 멍해집니다.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고 하염없이 잠만 자며
체온이 급격히 올랐다가 내렸다가를 반복하는 소한을 보고 있으면
희망이 솟았다가도 구렁텅이로 처박히는 기분입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체온이 오르는 행위만큼은
소한이 빙식 현상에 오염되지 않았다는 증거라는 것이겠지요.
그보다 더한 문제라면, 소한이 갈수록 좀처럼 깨어나지 못하고
끊임없이 사경을 헤메고 있다는 사실이 될 테고요.
안정을 취하고 있으니 몸이 나아져야 하는데
소한은 조금씩 옅은 경사면을 내려가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무언가... 문제가 있습니다.
다른 방도가 필요합니다.
환부를 확인해봐야 할 것 같군요.
라비헨:(작게 속삭이며) 미안해, 소한. 잠깐 실례할게.
(상처 부위를 다시 보기에 두려운 마음이 앞서지만, 어쩌면 소한을 살릴 확률이 더 올라가진 않을까. 조심스럽게 소한의 옷을 벗겨 환부를 확인한다)
당신은 떨리는 손으로 소한의 옷을 조심스럽게 헤칩니다.
그리고 잠시 숨이 멈춥니다.
어떻게 잘 낫겠거니, 밑도 끝도 없이 믿고
봉합 상태를 보고 가만히 놔두었던 상처 부위는
봉합 자국 주변의 피부가 불길할 정도로 붉게 부풀어 올라,
마치 살아있는 괴물처럼 박동하고 있습니다.
지져진 상처 끝부분에서는 탁한 진물이 배어 나오고
그 주변의 혈관들이 보라색 줄기가 되어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심장이 차갑게 식어내립니다.
소한이 이 지경인 줄 몰랐습니다.
그저 다시 보기 두렵다는 마음 때문에, 미뤄뒀던 일이
이렇게 심각한 상황까지 번질 줄은.
라비헨:
Medicine Roll
기준치:1/0/0
굴림:99
판정결과:대실패
소한이 대체 어떤 상태인지
짧은 식견으로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고보니 상처가 곪은 것 같기는 한데...
보통은 이럴 때 무얼 하던가요.
라비헨:
지능
기준치:50/25/10
굴림:94
판정결과:실패
모르겠습니다.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무얼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감 잡히는 것마저 없습니다.
이대로 두면 소한이 죽는 건 시간 문제인데
제 뜻대로 굴러가지 않는 머리와 손이
미치도록 원망스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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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비헨:
Medicine Roll
기준치:1/0/0
굴림:1
판정결과:대성공
그러고보니 아주 예전에 스치듯이
'패혈증'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기억이
아주 깊고 깊은 무의식에서 떠오릅니다.
세균 감염이 인체 국소가 아니라 혈관을 타기 시작해
전신으로 퍼지고 장기까지 다다르면
보통은 살갗 표면에서 일어나고 회복되어야 할 염증이
장기에서 일어나며 장기 부전이 일어난다고요.
이런 경우엔, 상처부위에서 고름을 제거하고
소독용 알코올이나 소금물을 부어
상처 부위의 세균을 모두 씻어내야 합니다.
실밥을 뜯는 것도,
소한이 고통에 차 비명을 지르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수순이긴 합니다.
그래도, 소한은 버텨줄 거라고 믿어야 합니다.
라비헨:(중얼) 알코올은 없고... 마침 소금이 있으니 홍심석을 이용해서 물을 끓여야겠어. 실밥을 제거해야 하니까 밖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겠네.
그럼 일단 나가서 불부터 피워야겠다.
(소한의 앞머리를 들추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 뗀다) 잠깐 혼자 있어줘. 금방 올게.
당신은 서둘러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갑니다.
라비헨:
Listen Roll
기준치:80/40/16
굴림:59
판정결과:보통 성공
다행히 들려오는 빙식체의 소리는 없습니다.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해
응급처치를 하기 좋은 날씨입니다.
하늘이 그나마 도와주는 걸까요.
서둘러야 합니다.
라비헨:(근처에 있는 나뭇가지를 줏어다 한 곳에 늘어놓고 홍심석을 이용해 불을 붙인다)
당신은 홍심석의 열기로 나뭇가지에 불을 지피며,
불 위에 냄비를 올려두고 눈 녹인 물을 바글바글 끓여냅니다.
그리고는 제일 깨끗한 천을 찾아 가볍게 삶은 뒤 건지고,
소금을 넉넉히 푼 뒤 소한의 실밥을 풀고 고름을 쨀
나이프도 함께 던져 넣어 소독합니다.
장기를 파먹어 들어가는 보이지 않는 세균들과 싸우기 위해
겨우 이어 붙인 그 가슴팍을 다시 갈가리 찢어발겨야 한다는 사실이
정말이지 잔인하기 짝이 없게 느껴집니다.
라비헨:(다시 굴 안으로 들어가 조심스럽게 소한의 겨드랑이에 팔을 넣어 부축해 밖으로 나간다) 밖으로 나가자. 이번에도 아프겠지만... 좀만 참자.
햇살이 부서지는 설원 위로 소한을 끌어내자,
어두운 굴 안에서는 보이지 않던 상처의 참혹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당신은 소한의 상처 주위에 맺힌 서늘한 식은땀을 닦아주며,
끓는 냄새를 풍기는 소금물과 소독된 칼날을 곁으로 가져옵니다.
당신은 숨을 겨우 내리누르고,
제 살을 깎는 심정으로 꿰맸던 실밥들을 다시 하나씩 끊어내기 시작합니다.
실이 풀릴 때마다 억눌려 있던 탁한 고름과 검붉은 피가 배어 나옵니다.
소한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습니다.
탁, 탁, 소리를 내며 실밥을 다 풀어내고 나자
안에서부터 밖까지 고름이 주륵 흘러내리고
시뻘건 살의 단면이 드러납니다.
...일단 고름을 제거부터 해야겠죠.
공포 따위로 시간을 지체할 순 없으니까요.
라비헨:
Sleight of Hand Roll
기준치:50/25/10
굴림:88
판정결과:실패
그러나 너무 긴장했던 탓일까요.
당신이 든 나이프는 덜덜 떨리다가 고름이 아니라 생살을 찢어내고 맙니다.
소한:(번지는 통증에 확 놀라 정신 없는 와중에도 끅끅거린다)
라비헨:미안...! 미안해...
(자신의 손으로 멀쩡한 살을 찢었다는 것에 대해 죄책감이 더해져 손이 덜덜 떨린다. 눈을 질끈 감으며) '정신 차려, 라비헨! 소한을 살려야지!'
라비헨:
Sleight of Hand Roll
기준치:50/25/10
굴림:21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당신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 나이프를 고쳐쥔 다음
조금 더 맑아진 정신으로 고름이 가득 차오른 곳에
나이프를 조심스럽게 쿡 찔러 넣습니다.
서슬 퍼런 나이프 끝이 소한의 부어오른 살결을 파고들자
억눌려 있던 노르스름한 고름이 울컥 쏟아지며 비릿한 냄새를 풍깁니다.
당신은 조금 전 생살을 긋고 말았던 자신의 실책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이제는 물러설 곳이 없음을 알기에 잇새를 사납게 사려 뭅니다.
고름이 빠져나갈 때마다 소한의 가슴팍을 짓누르던 부기가 아주 미세하게 가라앉아갑니다.
정말이지 다행인 일이네요.
당신은 떨리는 손목에 더욱 단단히 힘을 주고
나이프를 비틀어 깊숙한 곳에 고여 있던 염증까지 모조리 긁어내며
소한의 몸을 좀먹던 찌꺼기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갑니다.
소한은 여전히 고통으로 끙끙거리고 있고
마취도 없는 생살의 비경이 당신의 손바닥을 타고 전해져 오지만
그럼에도 멈출 수 있을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소한은 의식이 희미한 와중에도 전신을 타고 흐르는 격통에
입술을 피가 나도록 짓씹으며,
당신의 옷자락을 손톱이 하얗게 되도록 움켜쥡니다.
당신은 짧게 숨을 돌리고 빨갛게 배어나는 고름과 핏조각들을 보며
소독한 천으로 깨끗이 닦아 냅니다.
이제 제일 고통스러울...
소금물을 부을 차례입니다.
라비헨:(소한이 고통스러워할 것을 예상해 소한의 허리 위에 올라타고 한 손은 소금물을, 다른 한 손은 소한의 손을 붙잡아준다) ...많이 아플 거야. 거짓말은 못 하겠어. 금방 끝나니까 조금만 참아줘.
(소한의 입에 천을 물려주고 소금물을 환부에 천천히 들이붓는다)
당신은 쏟아지는 식은땀을 닦을 새도 없이
끓는 소금물을 상처 위에 조심스럽게 부어 넣습니다.
그렇게 붓기 시작한 지 2-3초 정도 지났을까,
기절해 있던 소한이 척추를 활처럼 휘며 짐승 같은 비명을 내지르고,
당신의 옷자락을 쥐어뜯으며 고통에 몸부림치기 시작합니다.
소한:거, 헉! 끄으으으윽...! 으아아아으...! 으윽, 으가아악-!! 하, 하아, 하아아아악!
눈동자는 뒤로 넘어가 흰자위만 남은 채,
소한은 당신의 팔을 부서져라 움켜쥐며 찢어지는 듯한 괴성을 내뱉습니다.
그 비명은 공허한 설원 위로 흩어지지도 못하고,
당신의 고막과 심장을 날카롭게 할큅니다.
찢어진 생살 사이로 소금물이 신경을 태우는 고통에,
소한은 더 이상 인간의 언어가 아닌 처절한 울음소리를 쏟아내며
처절하게 버둥거리고 사시나무처럼 떨어댑니다.
너무도 격렬한 통증의 표현에
귀를 막고 싶어지지만,
그 비명이 곧 그가 아직 살아있다는 유일한 증거이기에
당신은 피눈물을 삼키며 처치를 이어갑니다.
마침내 오염된 것들을 모두 씻어낸 뒤 다시금 새 실로 상처를 봉합하자,
소한의 거칠던 호흡이 거짓말처럼 조금씩 차분하게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당신은 피와 소금물로 범벅이 된 손을 내려다보며,
다시금 통증으로 의식을 잃은 소한을 바라봅니다.
소한은 고통에 지쳐 다시 까무룩 잠이 들었지만,
통증이 지나가고 나자 얼굴에 아주 미세하게나마
생기가 도는 것이 보입니다.
한동안은 또 고름이 재발하지 않도록
상처 겉부분을 식염수로 씻어주고 소독해야겠지만
죽지만 않는다면 희망이 있겠죠.
라비헨:'다행이야. 상처 치료는 잘 끝난 것 같아. ...내가 실수한 곳이 신경쓰이지만, 나중에 용서를 구하는 수밖에.' (응급처치를 하느라 숨까지 조절해갔던 것을 몰아쉬며, 소한을 다시 조심스럽게 부축해 굴로 옮겨준다)
식어가는 잿더미 같은 설원 위에서 당신은 승리했습니다.
진짜로??
소한을 살려냈다는 안도감이 밀려오자,
팽팽하게 당겨졌던 정신의 끈이 느슨해지며 온몸의 근육이 비명처럼 떨려오네요.
당신은 소한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감싸 안고,
그의 체중이 온전히 실린 묵직한 몸을 이끌고
다시 비좁지만 아늑한 굴 안으로 들어갑니다.
굴 안으로 들어서자 홍심석의 잔열이 섞인 눅눅한 공기가 당신들을 반깁니다.
소한을 모포 위에 눕히고, 피와 땀으로 엉망이 된 그의 얼굴을
수건으로 정성스럽게 닦아주고 나자
필요한 것이 더 있는지 배낭을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동안 소지품 점검을 안 한 지 꽤 되어
소한이 배낭에 무얼 짊어지고 다니는지 모르니까요.
준비성 철저한 소한이라면 그 사이 응급처치 용품을
더 구비해뒀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소한의 호흡은 이제 고통으로 일그러진 비명이 아닌,
깊고 차분한 잠에 빠져든 아이처럼 고르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안심입니다,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고비가 온대도 넘길 수 있을 겁니다.
라비헨:(이대로 계속 응급처치만 잘해준다면 어쩌면... 정말로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약간의 희망을 가지고 소한의 배낭을 뒤져본다)
당신은 소한의 고른 숨소리를 배경 삼아,
떨리는 손으로 그의 묵직한 배낭을 열어젖힙니다.
안에는 소한이 지금까지 챙기며 다닌 생존 도구들이 질서 정연하게 담겨 있습니다.
익히 보아서 알고 있던 전문 등반 장비와 지도, 나침반,
그리고 지혈 가루와 훈제 고기, 말린 과일...
지도에 위치를 표시하는 작은 연필 하나와 다용도 맥가이버 칼...
대부분은 당신도 알고 있던 것들입니다.
하긴 소한은 딱 필요한 것들만 들고 다니는 성격이니
웬만해서는 짐가방 무게를 늘리진 않겠지만요.
그렇게 물건들을 하나씩 살피던 당신의 손끝에 차갑고 매끄러운 유리병의 감각이 닿습니다.
꺼내어 보면 라벨이 다 해진 독한 위스키 한 병입니다.
마개를 가볍게 뽑고 향을 맡아보면,
안에는 아주 쓰고 짙은 알코올 냄새가 납니다.
양을 보면, 아직 제대로 한 번도 마시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지독한 추위 속에서 체온을 올리거나,
때로는 상처를 소독할 마지막 수단으로 아껴왔던 모양입니다.
라비헨:하하... 내가 마실까봐 말도 안 한 거야, 설마?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웃으면서) 진짜... 소한, 너...
그래, 너 다 줄게. 이 바보야.
나쁜 놈...
당신은 떨리는 손으로 위스키 병을 기울여,
가장 깨끗한 천 조각 위로 독한 술을 쏟아붓습니다.
투명한 액체가 천술에 스며들며 코를 찌르는 강렬한 알코올 향이
좁은 눈 굴 속을 가득 채웁니다.
당신은 알코올에 듬뿍 젖은 천을 들고,
조심스럽게 소한의 흉측하게 타버린 상처 주위를 닦아내기 시작합니다.
차가운 술기운이 상처에 닿을 때마다 소한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리고,
억눌린 신음이 그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옵니다.
하지만 눈밭 위에서 들은 처절한 비명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소리입니다.
당신은 손을 멈추지 않고, 피와 진물이 엉겨 붙었던 주변 살점들을 정성스럽게 닦아냅니다.
천이 지나간 자리마다 소한의 피부는 발갛게 달아오르지만,
역설적으로 그 붉은 기운은 그가 살아있다는 생동감 넘치는 증거라서
당신을 안심시키기도 합니다.
저한테 말하면 이 귀한 응급처치 용품을 다 마실까 싶어
그리도 걱정했던 걸까요.
...저도 양심이 있는지라
아니라고 확답은 못하겠다만.
그래도 애인한테는 조금 너무한 처사 같기도 합니다.
당신은 소독을 마친 뒤 남은 위스키를 아끼려
조심스럽게 마개를 닫아 머리맡에 둡니다.
수시로 닦아줘야 추가 감염을 막을 수 있을 테니
손 닿는 곳에 좋겠죠.
당신은 깨끗하게 정돈된 소한의 가슴팍을 바라보다가
배낭에서 새 붕대를 꺼내 소한의 몸에 겹겹이 감아주고
그의 옆에 나란히 눕습니다.
...소한이 하루 빨리 낫고 정신을 차려서
저 술이 남아 있을 때 같이 마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