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버리를 향해 걷는 100시간
칙—
치직, 칙.
아아, 아. 연합정부 소속 안전지대에서, 이 방송을 듣고 있을 생존자 여러분에게 알립니다.
여러분은, 파이로젠 바이러스, 통칭 좀비 바이러스로부터 생존한, 인류의 희망입니다.
아시다시피 아직까지 좀비 바이러스에 대한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은 상황이므로,
생존자 여러분은 아직 좀비가 되지 않은 ‘감염자’를 보실 경우 속히 처단해 주십시오.
지금 여러분이 듣고 있을 곳에서 가장 가까운 안전 지대는 캘버리 교도소에 위치해 있습니다.
좀비의 특성을 감안해 생존자 여러분은 최대한 해가 지고 움직여 주십시오.
낮에 움직이는것은 위험합니다.
그곳의 좌표는 xxx.xxx.xxx.
다시한번 반복합니다.
생존자 여러분은 캘버리의 안전지대로 와주십시오.
그곳의 좌표는...…
뚝.
당신은 몇번도 더 들은 라디오의 방송을 끄고, 주변을 돌아보았습니다.
오늘 쉬어가기로 한 폐공장의 창고 한 구석은 어둑합니다.
유일한 광원인 벽 꼭대기에 위치한 환풍구에서 정오의 햇빛이 비치고,
당신의 옆에선 소한이 고단한 얼굴로 잠들어 있습니다.
......
2020년.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동일한 질병 증세를 보였습니다.
곧 학자들에 의해 이 질병이 전례없는 바이러스 감염이 원인임을 알아냈고,
파이로젠 바이러스라 명명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과 미디어는 이 바이러스를 좀비 바이러스라고 불렀고,
최초 감염자가 발생한 시점부터 이를 좀비 사태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인류는 곧 좀비들에게 몇가지 특징을 발견했습니다.
첫째. 바이러스는 체액으로 전파되며 대표적인 감염경로는 좀비에게 물리는 것이다.
둘째.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24시간안에 좀비로 변한다.
그 증거로 완전히 좀비가 된다면 눈동자의 동공이 희뿌옇게 탁해진다.
셋째. 좀비는 시력이 퇴화하지만 청력이 발달해, 빛이 없는 밤에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이 바이러스는 곧 전 지구를 장악했고,
인류의 70%이상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며 전 세계가 혼란에 휩싸였습니다.
정부는 힘을 잃고, 집단 자살이 성행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인류의 멸망을 이야기 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인간은 생존할 길을 찾기 마련입니다.
좀비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연합정부가 설립되었고,
이 기관은 생존자들을 위한 ‘안전지대’를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좀비사태가 발발한지 일년 7개월 12일째.
당신과 소한은 이 절망적인 세상 속에서 서로를 의지해가며
안전지대로 향하는 여정을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
당신은 잠든 소한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 보았습니다.
그런데, 소한의 상태가 좀 이상합니다.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알아들을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습니다.

| 기준치: | 80/40/16 |
| 굴림: | 3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당신은 소한이 중얼거리는 말을 주의깊게 들어보았습니다.
“...약속해야해, 반드시…”
...뭘 약속한다는 걸까요?
소한의 표정은 마치 악몽이라도 꾸는 것 같습니다.

(조심스럽게 너를 흔들어 깨운다) 소한-
당신이 잠든 소한을 흔들어 깨우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깨어난 소한은 다급하게 주위를 둘러보다,
얼마 후 가까스로 진정합니다.

소한은 대뜸 당신에게 시간을 묻습니다.
지금 시간은 아침 11시 48분.
곧 정오가 될 시간이네요.
소한은 손목시계를 확인한 후 당신에게 말합니다.

그러더니 대뜸 소한은 당신을 꾹 껴안고 한동안 말이 없다,
오랜 침묵 후에 비로소 입을 엽니다.


안색이 안 좋던데, 악몽이라도 꾼 거야?



(제가 일어난 자리에 너를 부드럽게 눕히고,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저녁에 해 질 때 깨워줄게. 그때 출발하자.


여정의 피로 때문일까요.
소한이 무슨 악몽을 꿨는지 말해주지 않는 것이 걱정되면서도
당신의 몸은 다정한 쓰다듬에 휘말려 금세 잠에 빠져듭니다.
"라비, 이만 일어나."
당신의 어깨 위로 거칠지 않은 손이 내려앉아
몸을 가볍게 흔듭니다.
당신은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눈을 뜹니다.
눈을 뜨자 보이는 환풍구 너머의 하늘은 뉘엿하게 해가 지고 있습니다.
곧 좀비들은 활동을 멈출 테지요.
소한은 짐을 챙기며, 가방에 들어있던 에너지바를 꺼내
당신에게 내밉니다.










보초 서면서 별일 없었어?

(별 거리낌없이 제 몫의 에너지바를 가방에서 꺼내 껍질을 까고 야금야금 먹는다)



캘버리에 도착하면 우리 팔자도 피면 좋겠는데.
역시 현실적으로 그건 어렵겠지...
치료제가 개발되기 전까지는 쭉 이런 분위기겠지.


치료제가 개발되기 전에 바닥나려고 하면...
음. 아니다! 도착하기도 전에 우울한 소리부터 해서 미안.

... 그래도 아직 인류 30%는 남았으니까. 그중 똑똑한 사람이 남아 있을 거야. 식량이야 뭐... 교도소에서 채소밭이라도 일구겠지. 걱정 마.

정부에서 다 생각이 있으니까 거길 피난처로 지정한 거겠지.

당신과 소한은 그렇게 에너지바를 하나씩 까먹고
간단하게 배룰 채운 뒤 창고를 떠납니다.
어둠이 깔리고 달빛이 내려앉고, 넓은 공장 부지는 황량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따금 이 공장 유니폼으로 추정되는 옷을 입은 좀비들이
앞을 보지 못한 채 목적없이 배회하는 것이 보입니다.
당신과 소한은 숨을 죽인 채, 살금살금 폐공장 지대를 빠져나옵니다.

| 기준치: | 45/22/9 |
| 굴림: | 57 |
| 판정결과: | 실패 |
당신이 한 발을 내딛자 당신의 발치에서 난 부스럭, 하는 소리가 납니다.
이런, 미처 발 밑의 과자 봉지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근처에 있던 좀비 두마리가 일제히, 소리가 난 쪽을 돌아봅니다.



| 기준치: | 75/37/15 |
| 굴림: | 15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23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당신은 소한과 죽을 힘을 다해 달립니다.
뒤에서 좀비들의 비명소리와 신음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렇게 얼마나 정신없이 달렸을까요?
다행히도 좀비들을 따돌리는데에 성공한 것 같습니다.
당신은 소한과 함께 큰 나무 뒤에 몸을 숨긴 채
거칠어진 숨을 몰아쉽니다.




좀 더 잘 보고 갔어야 했는데.

다음에 내가 소리 내면 그때 너그럽게 봐줘. (주변을 조용히 살펴본다)
이쪽부터는 좀비가 거의 없네. 좀 편하게 걸어도 되겠다.



당신과 소한은 지도를 보고, 언제나와 같은, 긴 여정길을 걷습니다.
뻥 뜷린 흙길과 초원은 이따금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를 제외하고는 고요합니다.
오늘은 달이 밝아 다른 조명 없이도 길이 잘 보이네요.
이렇게 한가롭게 걷기만 할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그렇게 말하고는 힐끔 너를 바라보며) ...음식 얘기하는 거야.

(뒤늦게 화끈거리며) 아무 말도 안 했거든?






네가 먹고 싶은 거 아니야?


캘버리는 방음 잘 될까?




(슬쩍) 우리 둘 다.


그렇게 소한과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며 얼마나 걸었을까요.
당신들이 걷는 도로가 흙길에서 아스팔트 포장 도로로 바뀌고 난 얼마 후,
소한이 멈춰서서 정면의 표지판을 바라봅니다.
[이스트 베일에 어서 오세요], 라고 적힌 핏자국이 말라 붙어잇는 간판이
새벽어스름너머로 보입니다.


당신과 소한은 마을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한때 주민들이 살았을 마을의 거리는 을씨년스럽게 텅 비어있습니다.
이젠 사람이 살지 않을 빈 주택들이 일렬로 세워져 있고,
거리에는 드문드문 보이는 형체를 알수 없는 시체덩어리들과 쓰레기들이 널려있습니다.
당신과 소한은 이따금 보이는 좀비들을 피해 거리를 걷다가,
주변에 좀비들이 없는 집 한 채를 발견합니다.
저 집이라면 좀비들과 싸우지 않아도 들어갈 수 있을 것 같군요.


당신과 소한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평범한 단독주택의 가정집 안은 이미 생존자들이 다녀갔는지 엉망으로 어질러져 있습니다.
집안을 둘러보니 거실이었을 공간에 널부러진 [도끼]와 세개의 방, 그리고 [주방] 이 보입니다.

그래도 뭔가 남아있을 수도 있으니 살펴볼까?
(도끼를 들어올려 이리저리 살핀다) 이런 곳에 도끼가 있네.
[도끼]
꽤나 큼직한 손도끼 입니다.
평소라면 나무를 다듬는 데나 쓰였겠지만
세상이 망해버린 지금은 그 쓰임새가 좀 달랐겠지요.
도끼날과 손잡이엔 핏자국이 검붉게 말라붙어 있습니다.
보기만해도 끈적해 손잡이를 쥐기 망설여집니다.





[주방]
냉장고는 텅 비어있고,
검게 변한 핏자국으로 더러워진 식탁과 조리대 위에는
식칼과 쇠톱이 놓여 있습니다.
쇠톱의 날 사이사이에는 정체를 알수 없는 살점들이 굳은 피와 엉겨 붙어있습니다.
주방 구석에 놓인 큼직한 검은 쓰레기통에선 악취가 풍겨오네요.









[첫번째 방]
이 방은 서재로 쓰던 방인 모양입니다.
한쪽 벽면을 [책장]이 차지하고 있고,
그 반대편인 [책상]이 놓여있는 아담한 구조입니다.


너는 책장을 볼래? 난 책상을 살펴볼게.

[책상]
한쪽 벽에 딸려있는 작은 책상 위에는
작은 보라색 향초와 [메모패드], [액자]가 놓여 있습니다.
메모패드는 작성된지 꽤 오래 되었는지 먼지가 쌓여 있네요.

[메모패드]
낡은 메모패드에는 구겨진 종이뭉치들이 껴 있습니다.
전에 이 집에 살던 사람이 작성하였던 것 같네요.
종이뭉치 곳곳에는 피로 보이는 얼룩이 묻어 있습니다.

| 기준치: | 55/27/11 |
| 굴림: | 3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이건, 이 집에 살던 생존자의 마지막 기록인 것 같습니다.
곳곳에 묻은 얼룩으로 읽기 힘들었지만
드문드문 멀쩡한 페이지들은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장>
우리 가족이 향하려던 안전지대가
좀비들에게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 집에서 새로운 안전지대에 관한 소식이
들릴때까지 버티는 수 밖에 없다.
<다음 장>
20XX년 X월XX일.
제시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남편과 나는 차마 우리 아들을 내 손으로 죽일 수 없었기에
우리는 그 아이를 격리하고 간호하기로 하였다.
그러면서 나는 인간이 좀비에 감염되어가는
과정을 관찰할 수 있었다.
<다음 장>
일단계.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전신 근육통과 발열 증상을 보인다.
이때 해열제나 진통제가 증상을 완화하지만
바이러스 감염을 막을 순 없었다.
이단계.
바이러스에 감염된지 대략 12시간이 지나자
굉장히 불안해하며 온 몸을 떨었다.
다른 사람을 공격하려고 하는 폭력성도 보였다.
내가 아는, 발작 증상과 비슷하다.
삼단계.
좀비로 변하기 대략 두어시간 전엔 코와 입, 귀에서 피를 토한다.
벨은 한시간 전에 같은 증상을 보였다.
개인차가 있는 것 같다.
<다음 장>
제시를 방에 격리했지만 벨이 우리 몰래 제시를 보러 갔다,
제시에게 물리고 말았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다음 장>
제시와 벨을 관찰한 바 좀비는 감염자를 건드리지 않는다.
유용한 정보이지만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다음 장>
….배고파하는 아이들을 위해 남편이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심했다.
신이시여, 그 영혼을 구원하소서.
<다음 장>
내가 먹을 식량이 떨어졌다.
내 가족들에게 줄 ‘식량’을 구하는 일도,
점점 어려워진다.
끝없이 절망하게된다.
<마지막 장>
더이상 버틸 수 없다.
이 기록을 마지막으로 나는
내 가족들에게 돌아가기로 했다.
누군가 나의 기록을 본다면
우리의 이름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제시, 벨, 쟝, 카샤 리센.

(토기가 올라오면서도, 메모를 쓴 사람의 마음을 알 것 같아서 입술을 여닫기를 반복한다. 메모를 잠시 내려놓고 액자를 들어올려서 살펴본다)
[액자]
당신은 액자를 들어 사진을 보았습니다.
이 집에 살았을 가족들의 사진입니다.
사진 속에는 젊은 부부와 두 아이가 행복하게 웃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지금쯤...
...

이걸 봐야 할 것 같아. (메모패드를 넘겨준다)

(무뚝뚝하게 사실에 근거한 추론을 시작한다. 사연은 안타깝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고... 어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연구 기록은 쓸만하겠어. 그리고... 가정적이던 이 집의 식구들을 생각하면, 방 문을 굳이 열어서 서로가 뿔뿔이 흩어지는 상황은 찍지 않았겠네. 방 하나에 좀비들이 모여있을 가능성이 높아.

그렇다는 건... 나머지 방 중 하나에...?



네가 소리를 확인해서 너머에 뭐가 있는지 확인해줘. 문을 여는 건 내가 할게.

당신은 소한과 함께 복도로 나와
다음으로 어느 방을 살필지 고민하다가
조금 더 가까운 두번째 방 앞에 섭니다.

| 기준치: | 80/40/16 |
| 굴림: | 57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문을 열기 전, 당신은 조금 긴장한 상태로
조심스럽게 문 중앙에 귀를 가져다댑니다.
...
이렇다할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구분이 잘 안 가는군요.






[두번째 방]
소한은 방 문이 뻑뻑한지 고심하며
끼익거리는 소리를 내며 고전하더니
몇 벛의 시도 끝에 끼익-하고 방문을 활짝 열어젖힙니다.
문이 열리자...
….방안의 좀비들이 일제히, 이쪽을 쳐다봅니다.
아, 아까 가족사진에서 본 그 일가족이요.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44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좀비들이 덮쳐오기 전, 소한은 황급히 문을 닫습니다.
기괴한 울음소리가 문틈 사이로 새어나옵니다.

반쯤 코마 상태였나 보지. 괜찮아.
소한은 당신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서재에서 의자를 가져와 문고리 사이에
비스듬히 끼워 세어놓습니다.
그리고는 익숙하게 배낭에서 맥가이버 칼을 꺼내
문틈 사이의 잠금장치 풀리는 곳에 욱여넣고는
작게 한숨을 쉽니다.
문 틈새에서 좀비들의 기괴한 소리가 새어나가다 곧 끊깁니다.
이거로 당분간은 안심이겠죠.


[세번째 방]
다른 방보다 비교적 깔끔한 이 방은 침실입니다.
옷가지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옷장과,
킹사이즈의 침대가 놓여 있습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침대에서 잘 수 있겠어요.
당신이 방 안에 들어서서 내부를 살피고 있으면
소한은 방의 문을 단단하게 잠그고
간단하게 짐을 푼 후 당신의 배낭도 내려둡니다.

(네게 다가가 뺨을 부드럽게 감싸쥐고는) 표정이 이상한데, 괜찮아?

미안해...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툭툭 침대 시트를 치며 너를 부른다)
이리 와, 귀염둥이.



(일가족에 대한 일지를 확인한 뒤라서인지 멘탈이 갈린 듯, 고통스럽게 눈가를 비빈다) 금방 기운 차릴게... 잠깐만 있어줘.

(토닥토닥)




(네가 웃는 소리를 내자 그제야 조금 마음이 놓인다)

이 악몽의 끝이 있긴 할까.

(토닥토닥)



(도망친다고 낙원이 있을지도 모르겠고, 가만히 있는다고 상황이 나아지지 않음을 잘 알고 있어서, 입을 맞춘 채 감은 눈에서 작게 눈물이 맺힌다)

(그렇게 한참을 입맞추고 체온을 나누다가 아주 느릿하게 입술을 떼어내고 네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며)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었잖아. 얼마 안 남았어. 기운 내.
오늘은 내가 먼저 보초 설게, 한숨 자. 푹 자야지 기운 나지.



정말 잠깐만....
부탁이야.


... 소한.
죽으면 안 돼.




나도 널 지켜주고 싶어.

푹 자고 일어나. 옆에 계속 있을게.


그렇게 말하는 소한의 표정은 어딘가 지쳐보이고,
또 슬퍼보이는듯 합니다.
당신은 소한의 표정을 뒤늦게 눈치채고 뭔가를 더 말하려 하지만…
오랜만에 눕는 푹신한 침대에 금세 잠에 들고 맙니다.
당신은 창틈새로 비치는 햇빛에 눈을 떴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오랜만에 침대에서 자서 그런지 더할나위없이 개운한 기분입니다.
창밖을 보니 노을지는 하늘이 붉습니다.
분명 눈을 감을땐 동이 터오던 시간이었는데...
...
그렇다는건, 해가 떠있을 내내, 소한은 당신을 깨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주변을 황급하게 둘러봅니다.
소한은 당신에게서 등을 돌리고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 기준치: | 55/27/11 |
| 굴림: | 99 |
| 판정결과: | 실패 |
소한은 당신이 일어난 것도 모른 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대며
노트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어내려가고 있습니다.

뭐 해?


뭘 쓰고 있었어?


의외네. 일기를 쓰는 타입은 아닌 것 같았는데.

완성되기 전까지는 못 보여줘.

갑자기?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92 |
| 판정결과: | 실패 |
소한은 무언가를 숨기고 있긴 하지만,
당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기색은 아닙니다.
당신을 위한 책이라는 말은, 거짓이 아닐 것 같네요.


그래도 깨우지 그랬어... 넌 잠을 못 잤잖아.

배는 안 고파? 아마 배낭에 육포 남은 게 있을 거야.

... 아직은 안 고파.





...해 지면 깨워주는 거다?

(쓰담쓰담) 무슨 생각을 하는진 모르겠지만... 잠 잘 때는 푹 자.
그래야 기운을 차리지.


당신이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는 손길에
소한은 나른한 고양이처럼 가르랑거리다가
이내 짧게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기 시작합니다.
잠에 들었는지, 고요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정도만이라도 재워야 안심이 되니까요.
해는 아주 느릿하게 저물어갑니다.
창문 너머로 주홍빛 물결을 넘실거리던 하늘은 조금씩 사라지고
대신 보랏빛으로 변한 땅거미가 천천히 지면에 내려앉습니다.
...소한은 갈수록 무리를 하고 있는 것 같죠.
캘버리에 가까워질수록 무리를 한다 싶더니
당신의 안위를 먼저 챙길만큼 무모하게 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건 아마, 이 고단한 여정이 부디
안전하게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에
애가 타서 그런 것일 겁니다.
물론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서도...
어찌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당신이 잠에 든 소한을 쓰다듬으며 바라보고 있으면
더 자기를 바라는 마음과는 달리 야속하게
저녁 노을은 산등성이 너머로 넘어가고
휘영청 맑은 달이 떠오릅니다.
하루 빨리 안전지대에 도착해야 하니
이제는 정말로 소한을 깨워야 합니다.

(조심스럽게 소한을 흔들어 깨운다) 소한- 일어나.






그럼 바로 출발할까?

해가 지고, 달이 뜨고.
당신과 소한은 등에 배낭을 다시 짊어진 채로
사연 많은 주택을 빠져나와 길을 떠납니다.
길을 걷는 블럭들 마다 집들 사이로,
좀비들이 느릿하고 목적없이 움직이는 것이 보입니다.
좀비들을 피해 조심조심 걸으며 마을을 거의 다 빠져나오자,
마을 외곽 즈음에 위치한 꽤나 큼직한 [마트]가 눈에 들어옵니다.
좀비 사태 발발 이후로 가장 먼저 살아남은 시민들이
물건을 털던 곳이죠.
그래도 규모는 제법 큰지라, 무게 때문에 챙겨가지 못한
식수나 물건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을을 빠져나가는 곳에 위치해있는 꽤나 큼직한 마트입니다.
이미 많은 생존자들이 다녀갔는지 빼곡히 늘어진 진열대가 휑합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그나마 물건들이 올려진 [선반1] [선반2],
그리고 한쪽 벽으론 [창고]라 써진 팻말이 보입니다.


(선반 1을 가리키며) 난 이쪽을 살피고 있을게.

[선반 1]
장난감 코너 입니다.
곰인형, 유니콘 인형, 비비탄 총…
생존에는 그닥 쓸모가 없는 물건들이네요.
당신은 인형들을 둘러보며 혹 떨어진 식료품이 있나 보다가
[노래하는 곰돌이] 라는 태그가 붙은 인형을 발견합니다.

당신이 인형을 들어올려 살피자,
등 뒤에 달려 있는 버튼이 달칵 소리를 내며 밀리더니
어둡고 고요한 매장 안에 동요가 울려퍼집니다.
...갑자기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당신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조심스럽게 스위치를 다시 끕니다.
주변에 좀비가 없어서 다행입니다.
당신이 그렇게 손에 곰인형을 든 채로 있으면,
곧 다른 쪽 선반을 수색하고 돌아온 소한이
품에 참치캔 하나와 낱개로 된 롤리팝 사탕, 2L 짜리 생수병을 들고 옵니다.




쓸모 없다고 할 줄 알았는데.






...뭔가 나 닮았다는 인형을 유인용으로 쓴다니까 기분이 묘해.


언제는 토끼라더니.
이제는 곰이야?



흠... 그보다. (창고 쪽을 가리키며) 저쪽에 뭐가 더 있을 것 같은데.

... 창고니까 여기보다 뭐가 더 있을 것 같긴 한데, 저번처럼 불청객을 만나는 건 아니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소리가 들리는지 확인해볼게.

당신은 조심스럽게 창고쪽으로 다가가
소한이 뒤에서 다가오는 것을 확인하다가
문에 귀를 대어봅니다.

| 기준치: | 80/40/16 |
| 굴림: | 19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당신은 돌연 불쾌하고 익숙한 소리를 듣습니다.
아... 이 소리는 좀비가 내는 소리 입니다.
소리는, 마트 안의 창고에서 새어나오고 있습니다.


한 마리 있어.



창고 문은 닫혀 있지 않은지
소한이 문을 잡아당기자 끼익- 소리를 내며 열립니다.
창고 문이 열리자 좀비의 희뿌연 눈이,
빛이 쏟아져들어오는 창고 문의 입구를 향합니다.
이윽고 괴상한 소리를 내며 좀비가 당신들에게 달려옵니다.
전투 시작합니다.
공격 순서: 라비헨 > 소한 > 좀비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8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 피해: | 4 |
지능 없는 좀비는 그저 앞만 보고 무작정 달려들다가
당신이 쏜 화살에 그대로 맞아 주춤거립니다.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61 |
| 판정결과: | 실패 |
| 피해: | 6 |
소한이 거침없이 도끼를 내려찍자
정면으로 달려오던 좀비는 썩은 살이
어깨부터 수직으로 명치까지 찢기며
바닥으로 풀썩 쓰러집니다.
완벽한 합공입니다.
소한은 좀비에게서 튄 썩은 살점과 피를 손바닥으로 걷어내고는
좀비의 숨이 완전히 끊어진 것을 확인한 뒤
당신의 눈에 띄지 않게 발로 쳐 창고 구석으로 차 넣더니
당신을 조용히 손짓으로 부릅니다.


창고 안을 돌아보면,
널찍한 창고에는 그나마 멀쩡한
[상자1] [상자2] [상자3] 이 있습니다.

어.느.것.을.고.를.까.요 - 이거다! (상자 2를 열어본다)
[상자 2]
상자 안을 열어보자 단백질 바 한무더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거면 족히 몇주를 먹을수 있을 거예요.
창고를 열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슬슬 질림)

[상자 3]
누군가에겐 정말 절실할… 술병들이 들어있습니다.
와인이에요.
마트에서 파는 싸구려 와인이지만
이 망해버린 세상에선 감지덕지입니다.


우와!
좀비만 없었어도 이걸로 잔치를 열었을 텐데...

대신 한 병만이야. 두 병은 안 돼.
(단호함)

한 병이나 두 병이나 비슷비슷하지 않아?
세 병이면 모를까.


누가 한번에 두 병 다 마신대?!


그 전-혀 믿을 수 없다는 눈은.


그냥... 그...
취미인 거지!



[상자 1]
유행이 지난 옷들을 무더기로 세일할때 쓰였던 상자인가 봅니다.
상의, 겉옷, 바지, 속옷, 양말 등…
당신과 소한의 몸에 맞는 옷들도 들어 있습니다.
몇달 째 입고다니던 누더기 같은 옷을 갈아입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샤워는 못하지만 이걸로라도 참아야겠지...


당신은 소한과 함께 상자를 뒤져
평범하면서도 활동성 좋은 면 소재 옷을 골라
깔끔하게 갈아입고 머리를 쓸어넘깁니다.
찝찝했던 속옷과 당분간은 작별이네요...
캘버리에 도착하기까지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버틸 수 있겠죠.
그렇게 술병과 단백질 바, 여분 양말과 속옷을 챙겨 밖으로 나오면
하늘은 어느새 동이 트고 있습니다.
내부에서 신났다고 시간을 너무 지체한 모양이네요.
밤이 될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고민하던 차,
소한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엽니다.

이 이후엔 계속 도로라서 좀비들이 많이 없을 거야. 있더라도 조심하면 되고.
…..하루라도 빨리 안전지대로 가는게 좋잖아.

... 근데 진짜 뭐 숨기는 거 아니지?
원래 이렇게 도박을 하는 사람은 아녔잖아.


얼른 캘버리에 도착해야 네가 잠을 푹 잘 수 있겠지.

| 기준치: | 55/27/11 |
| 굴림: | 88 |
| 판정결과: | 실패 |
소한은 정말로 하루빨리 안전지대로 향하고 싶나 봅니다.
하긴... 불침번을 번갈아 서면서 꼬질한 채로 자는 생활과
이별하고 싶은 것이 당연하겠지만요.
당신은 소한과 배낭을 고쳐 매고 동이 터오는 거리로 나옵니다.
드문드문 보이는 좀비들을 피해 숨을 죽여 이동하면,
드디어 마을을 벗어나 고속도로가 나옵니다.
….해가 이렇게 떠있을 때 이동하는 건 정말로 오랜만이에요.
머리위로 작열하는 태양이 뜨겁습니다.





(걱정스런 투로) 소한, 너 어디 안 좋아?




'이 상황에 잠깐 쉬자고 할 수도 없고 큰일이네.'

당신이 무슨말을 해도 대화는 오래 이어지지 못합니다.
소한은 마치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여요.
결국 두 사람 사이엔 어색한 침묵만이 맴돕니다.
정오가 가까워지는 듯 길게 늘어지던 그림자는 점점 짧아집니다.
...
...
얼마나 길을 걸었을까요, 비로소 소한이 먼저 말을 꺼냅니다.

소한의 손가락을 따라가면, 저 멀리 도로 위
버려진 지 꽤 되어 보이는 [주유소]가 보입니다.

...역시 어딘가 안 좋은 거지?


주유소는 관리인 한두명을 둔 작은 무인주유소였나 봅니다.
근근히 널부러진 시체들은 보이지만 좀비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잠깐이라도 쉬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주변을 소한과 함께 둘러보면
무인으로 사용할수 있는 [주유기] 몇 대,
그 옆에는 [자판기]와 주유소에 딸린 작은 [사무실]이 보입니다.


[사무실]
사무실의 문을 돌려 보았지만 굳게 잠겨 있습니다.
하나뿐인 창문엔 블라인드가 쳐있어 안이 보이지 않습니다.
열쇠를 찾아봐야 할까요?

(사무실은 내버려 두고 주유기로 향한다)
[주유기]
평범한 주유기 입니다.
당신이 기름을 챙겨 가면 좋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턱,
하고, 피투성이인 손 하나가 당신의 발목을 붙잡습니다.
“도와주세요….제발 도와주세요…”
당신이 시체인줄만 알았던 그는, 이미 감염된지 몇시간이 지난 듯,
코와 귀에서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하반신이 뜯어먹혀 두 다리가 보이지 않고,
찢어진 배 아래로 근육과 장기가 드러나 보입니다.
처참한 몰골의 그 생존자, 아니, 감염자일까요.
당신의 발목을 붙잡는 손가락들은 처절하기까지 합니다.
한쪽 눈은 파먹혔는지 보이지 않고,
간신히 뜬 나머지 눈으로 당신을 올려다보며 애원합니다.
“목이 너무 말라요, 물, 물 한모금만, 제발….”
그가 당신의 다리를 향해 나머지 한쪽 손도 뻗으려던 찰나,
하고… 소한의 신발굽이 당신에게 뻗어진 손을 무참히 짓밟습니다.
당신이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소한은 그를 향해, 도끼를 내리칩니다.
퍽, 퍼억...-!
외마디 비명도 곧 그치고,
소한의 중얼거림과 고깃덩이나 다름없는 시체를 내리친 곳에서
핏물 번지는 소리만이 주변을 메웁니다.


(네 손목을 잡으며) 이제 그만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공격할 의사도 없었는데 왜 그렇게까지 한 거야...

당신을 바라보는 그 표정은 살기를 띄었던 아까와는 다르지만...
여전히 두 눈만은 붉게 충혈되어 있습니다.
그 모습은, 당신이 기억하던 소한의 모습과는 어딘가 섬뜩하고 이질적입니다.
당신이 무어라 더 말을 꺼내려 하면,
끼익, 하는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쥬드:…와, 장난 아닌데?
사람의 말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반쯤 열린 사무실의 안쪽에 한 30대 남성이 서 있습니다.
쥬드:저기, 우선 들어 와서 이야기할래요? 밖은 또 언제 좀비들이 올지 모르니까.


| 기준치: | 55/27/11 |
| 굴림: | 28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당신이 눈동자를 굴리며 세심하게 남자를 살펴보면,
남자에게 이렇다 할 피부의 물린 자국이나 감염 증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쥬드:(피식 웃으며) 이야~ 경계심이 많으시네요. 걱정 마세요, 인간 맞으니까.
일단 들어오시죠? 밖은 위험하잖아?

쥬드:네, 전 전투형은 아니라 은신형이라서요. 여기저기 숨어드는 건 자신있죠. (으쓱)

쥬드:같이 가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전부 감염자가 되거나 죽어서 혼자 남았어요. 생존자를 만나는 건 삼 개월만이죠.
그래서 그런지 어쩐지 반갑네요.
(문간 너머에 서며) 자, 사양 말고 안으로 들어오세요. 뒤에 서 계신 분도 같이.



...확실한 건, 당장 여정을 계속할 정신은 아닌 것 같다는 겁니다.
확실히 휴식이 필요하긴 하겠네요.
소한이 별다른 거리낌 없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고,
당신도 어쩔 수 없이 그를 따라 들어갑니다.
곧 남자가 사무실 문을 닫고 들어오면,
작은 사무실이라 세 사람이 들어가니 방이 꽉 찹니다.
소한은 언젠가부터 다시 짊어지고 있던 짐을 풀고 자리에 앉고는,
당신을 끌어당겨 제 옆자리에 앉힙니다.
어쩐지 묘한 상황이네요...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는 방긋방긋 웃으며 자신을 소개합니다.
쥬드:(맞은편에 함께 앉으며) 통성명이 늦었죠? 저는 쥬드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턱짓하며) 얘는 소한이고요.



쥬드:하하... 옆에 분, 저를 잡아먹을 듯이 보시네? 너무 그렇게 경계하지 마세요. 그저 얘기나 좀 하자고 부른 겁니다.
그냥, 좀 궁금해지더라고요. 저는 여길 발견하고 해가 질 때까지 쉬어가려던 참인데, 당신들은 해가 떴을 때 움직이고 있길래요.
두 분 다 캘버리 교도소로 향하던 중 맞으시죠?

어떻게 아셨어요?
쥬드:(방긋 웃으며) 이 근방 생존자들은 다들 캘버리 교도소로 향하고 있을 것 같았거든요. 제일 가까운 안전지대니까. 마침 저도 그쪽으로 향하던 중이고요.
아직 식사 전이시면 이거라도 간단히 드실래요? 별건 아니지만. (배낭에서 사과와 무화과를 꺼내 건넨다)

쥬드:에이~ 물론 그냥 드리는 건 아니고요. 어차피 목적지도 같겠다, 말동무 겸 같이 다녀주시면 안 될까 해서요. 아, 물론 그래도 과일은 드릴 거예요. (은은하게 미소지으며, 당신의 손에 과일을 톡톡 올려놓는다)


쥬드:어떻게, 좀 안 될까요? 무리일 수도 있다는 건 알지만, 혼자 다니려니 너무 외로워서 헛것이라도 볼 것 같아요...

쥬드:아...! 전 몸이 둔해서 전투는 좀 자신 없지만, 힘쓰는 건 자신 있습니다. 키가 커서 선반 위까지 쉽게 살펴볼 수도 있고요.

쥬드:하하, 감사합니다. 그럼 저, 전력으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문 따는 일이나 부서진 건물에서 잔해를 치우는 일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어요.

쥬드:...! (활짝 웃으며) 감사합니다, 폐 안 끼치게 잘할게요. (내밀어진 손에 제 손을 내밀고 꽉 잡아 악수한다)

풀린 분위기에 취해 이런저런 말을 나누며
즐겁게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배가 꼬르륵 고파오기 시작합니다.
하긴 식사도 제대로 못 하고 밤부터 지금까지
강행군을 하고 있었으니 당연하겠지만요.
소한이 당신의 배 곯는 소리를 듣고 칼로리바와 참치캔을 꺼내고,
쥬드가 내민 사과와 무화과를 함께 늘어놓으면
오랜만에 꽤 풍성한 식사를 한다는 느낌입니다.
그러고보니 아까 챙겨온 와인을 지금 마셔도
나쁘진 않겠네요.

쥬드:(눈이 순식간에 반짝이며) 헉...! 세상에! 그거 와인인가요? 와인 맞죠? 세상에, 얼마만의 술인지.
주신다면 너무 감사히 잘 마시죠. (넙죽 가방에서 종이컵 뭉치를 꺼내 한 잔을 내민다)
세 사람은 종이컵에 와인을 따라, 가볍게 잔을 부딪히며 건배합니다.
두런두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마시다 보면,
너무도 오랜만에 마시는 술이어서인지 금세 술기운이 오릅니다.
정신이 알딸딸해지네요.
곧 작은 만찬이 끝나고 까무룩 감기려는 눈에
짐을 치우고 바닥에 요를 깔고 누우면,
알코올로 흐릿해진 시야에서, 여전히 등을 돌리고 어제처럼
노트에 무언가를 적어내려가는 소한이 어렴풋이 보입니다.
당신은 묵묵히 글을 쓰는 소한에게 이런저런 술주정을 부리다가
술기운에 머리가 무거운 탓에 이내 금세 잠에 듭니다.
깜빡, 잠에서 깨어나니 창밖이 어둑합니다.
머리가 아프고 숙취가 느껴지는 게
평소보다 더 오래 잔거 같아요.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보이는건, 당신이 잠에 들기 전 마지막으로 본 것과
똑같은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는 소한입니다.
밤새 그 ‘책’이라는 걸 쓴 모양입니다.


괜찮아, 나 괜찮아. 진짜 괜찮아... 일어나서 어서 출발하자. 캘버리로 가야 해. 하루라도 빨리.
저렇게 조급해보이는 소한은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소한이 왜 저러는지 말이라도 물어보려 하지만
그러기도 전에 소한은 당신의 부스스한 얼굴을 손으로 닦아주고
당신의 몸을 재빨리 일으켜 세웁니다.


요즘 이상해.
뭐가 급한 사람처럼 굴잖아.


진짜 아무 일 없는 거지? 그렇지?


(눈을 반쯤 내리깔며) ...가자.
밤은 찾아오고, 당신과 소한, 쥬드는 길을 떠납니다.
아스팔트 도로에 세 사람의 밤 그림자가 드리웁니다.
묵묵히 길을 걷던 당신은 문득 옆에서 속살거리는 소리에
옆에서 걷는 소한을 돌아봅니다.
소한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있습니다.
어제와 같이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있는 것 같아요.
그런 소한을 바라보는 당신 곁으로 어느새 쥬드가 다가와 말을 건넵니다.
쥬드:(어깨를 손가락으로 콕 찌르며) 라비헨, 저 친구 좀 정신이 이상해 보이는데요.
(행여 소한이 들을까 목소리를 조금 더 낮추며) 내가 이래뵈도 다른 나라 여행을 많이 다녀서 조금씩 배운 말이 많은데 저 친구 말하는 걸 들어보니 라틴어, 독일어, 스페인어,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그 외의 언어들도 많은 거 같다만...
완전히 미쳤거나, 아니면 한 20개 국어 정도를 하는 천재이거나, 둘중 하나인거 같거든.

...요즘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럴 거예요. 보초 설 때도 교대 시간에 안 깨우고 혼자 희생하고는 했거든요.
이제 쥬드 씨도 합류했으니까 잠도 잘 자고 곧 나아질 거예요.
쥬드: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으쓱)
뭐, 너무 걱정 말아요. 이런 세상에서 제정신인게 더 신기한거죠. 나도 당신도 어디 한구석은 미쳐 있을걸.
하기사 이런 미쳐가는 세상에서 미치지 않기가 쉬운 일일까요.
그게 피로누적 때문이든, 정신적 고통 때문이든 말이죠.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으며 계속 걷다보면
어느새 소한은 당신들보다 몇 발짝 뒤쳐져 걷습니다.
쥬드:라비헨 씨한테만 해주는 얘기인데,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 숨 쉬고 있는 게 가끔은 기적 같다니까요. 스페인 남부의 살인적인 뜨거운 볕 아래서 몇 날 며칠을 걸어보기도 했고, 독일의 혹독한 겨울 칼바람을 맞으면서 길을 잃은 적도 있었거든. 이탈리아에서는 그 웅장한 유적들 사이에 서서 ‘아, 내가 진짜 지구 반대편까지 살아 넘어왔구나’ 하는 경험도 쌓았고요.
그 숱한 고생을 다 견뎌내고 여기서 이러고 있으니, 장거리 이동은 별로 힘들지 않게 여겨지기도 해요.
라비헨 씨는 이전엔 어떻게 살았어요? 좀비들이 창궐하기 전 말이야.

쥬드:에이~ 사람 사는 삶이 어떻게 보잘 것 없을 수가 있어요. 얘기해봐요, 얼른. 응?

좀비 사태가 터지고 나서 처음으로 산골 마을을 빠져나왔고, 동생이랑 다니다가... 음...
(반사적으로 나오려는 슬픔을 참으려 눈을 이리저리 굴린다) 중간에 소한을 만나서 이렇게 캘버리로 향하는 중이죠.
하하...진짜 별 거 없죠?
쥬드:많은 게 생략된 것 같은데... 제법 힘든 여정이어서 말을 돌리는 것 같네요. 맞죠?
소한 씨랑은 어떤 사이에요? 대충 보니까... 사귀는 사이? 썸? 그 정도는 보이던데.

원래는 너무너무 밉고 싫었는데, 같이 다니다 보니까 정이 들었던 건지... 아하하...
쥬드:그래요? 와, 엄청 싫어하던 사이에서 연인까지 되고. 대단한데요. 누가 먼저 고백했어요? 라비헨 씨가?

소한이 저보고 눈치 없다고 했어요.
(슬쩍) ...그땐 무슨 뜻인지 전혀 몰랐는데.
아, 소한도 할 얘기가 많을 거예요.
(뒤를 돌아보며 소한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한다) 소한!
새벽이 가까워져 여명이 슬며시 비치는 시간.
당신이 소한을 살펴보려 고개를 돌리면...
털썩!
소리와 함께 뒤에서 걷던 인영이 바닥으로 고꾸라집니다.
퍼뜩, 걱정이 밀물처럼 밀려듭니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면 온몸이 불덩이 같이 뜨겁습니다.
힘겨운 신음 소리가 소한의 입가에서 계속 흘러나옵니다.
요 며칠 그’책’이라는 걸 쓰느라 고생하더니, 결국 건강을 망치게 된 걸까요.
하지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상태가 무척 좋지 않아 보입니다.
쥬드:(재빨리 다가와 소한을 부축해 들며) 후... 무리했던 걸까요? 이 친구를 어디에 좀 눕혀야 할 것 같은데... 건물을 찾아보죠.

괜찮다더니 역시 안 괜찮잖아...! (울먹이는 소리로 소리치고는 다급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당장은 주변에 아무런 건물도 보이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길을 마저 걸어야 합니다.
당신과 쥬드는 기절한 소한을 부축하며 걷기 시작했습니다.
소한의 체격과 무게가 예상보다 꽤 되는지
힘이 좋다고 자신만만하던 쥬드는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집니다.
대체 캘버리로 빨리 가는 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몸을 혹사시켰던 건지.
소한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눈물이 말라붙은 눈가가 따끔거려옵니다.
얼마나 걸었을까, 마침 동이 트려 할때 쯤,
저 멀리 건물이 하나 보입니다.
좋든 싫든 저기서 쉬어가야 할것 같아요.
가까이 가보니 이곳은 초등학교였나봅니다.
불에 타 거꾸로 뒤집힌 스쿨버스와 낡고 망가진 놀이터를 지나
직사각형 모양의 학교 건물로 가까이 다가가면
어둑한 교실 안을 느릿하게 배회하는 검은 그림자들이 보입니다.

| 기준치: | 55/27/11 |
| 굴림: | 92 |
| 판정결과: | 실패 |
모든 교실에 좀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건물을 찾아봐야 할까 고민이 되던 그때,
쥬드:(창문 한쪽을 가리키며) 어...! 저기! 저 교실 비어 있어요. 저기로 들어가죠.
당신과 쥬드는 창문을 열고 교실 안으로 들어와
교실의 책상들을 한데 밀어 공간을 만들고,
소한을 조심스럽게 그 위에 올려 눕힙니다.
쥬드는 소한을 반쯤 업고 오는 길이 힘들긴 했던 모양인지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손등으로 훔치며
창밖을 슬그머니 들여다봅니다.
해가 뜨고 있습니다.
여기서 더 이동하진 못하겠네요.
쥬드:후... 일단 해가 뜨니까 우리도 좀 쉬죠.

쥬드:저도 의학적 지식이 많지는 않아서... (말끝을 흐린다)

하루라도 더 빨리 캘버리에 도착하길 바랐거든요.
쥬드:후... 일단은 자가면역으로 회복되기를 빌어보죠. 설마하니 독감 바이러스 같은 건 아닐 테니, 적당히 누워서 저희도 좀 잡시다.
피로가 쌓여서 아픈 거라면 단순 몸살일 테니,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말하고는 근처에 책상을 밀고, 그 위에 적당히 눕는다)

근처에 좀비가 너무 많아서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모르고... 소한의 상태가 저래서 속 편하게 잘 수 없을 것 같거든요.
쥬드:뭐, 보초를 서준다면야 고맙긴 하겠지만... 음. 그러면 잠이 올 때 적당히 깨워주세요. 이후부터는 제가 불침번을 설 테니까.
당신은 고개를 끄덕이고, 소한과 가까운 자리에 서서
엉덩이를 책상 모서리에 반쯤 기댄 채로 소한의 상태를 살핍니다.
몸은 뜨겁고, 표정을 찡그린 채 간간히 내뱉는 호흡은 불규칙합니다.
그런 소한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 속 깊숙한 곳 부터 스멀스멀 불안한 감정이 올라옵니다.
갑자기 소한은 왜 아픈 걸까요.
아무리 며칠 밤을 샜다고는 하지만...
열이 이렇게까지 들끓을 일은 아닌 것 같은데.
과연 당신과 소한은 무사히 캘버리로 갈 수 있을까요.
이런저런 걱정 속에서 쥬드는 잠이 들고,
당신은 계속 보초를 선 채 바깥 동향을 살핍니다.
색색거리는 소한의 거친 숨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공간인지라
걱정이 머리를 가득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잠기운은 아주 천천히, 가랑비에 비 젖듯 찾아옵니다.
그렇게 반쯤 꾸벅거리며 졸린 눈을 비비고 있으면...

소한이 당신을 부르며 옷자락을 잡고 신음합니다.


소한의 몸은 불덩이 같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어디가 아픈지 물어봐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할 정도인 모양입니다.
소한의 신음 소리를 듣고 고요히 자고 있던 쥬드 역시
깨어나 소한을 살펴보러 다가옵니다.
그리고는 소한의 체온을 가볍게 재더니 심각한 표정을 짓네요.
쥬드:내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거 심각한데요...

좀비가 많긴 하지만... 그만큼 생존자들이 여길 털 생각은 안 했을 거예요.
소한에게 도움이 될 물건이 있는지 찾아보고 싶은데...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4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그러고보니 이곳은 초등학교였죠.
양호실을 찾아가면 약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양호실에 다녀올게요.
쥬드:잠깐. 같이 가요. 밖에 좀비가 득시글거리는데 혼자 가겠다는 건 자살 행위예요.
소한 씨는 의식이 없어서 좀비들의 관심을 끌 만한 큰 소리를 낼 가능성이 없으니, 내가 라비헨 씨를 따라가는 편이 나아요.

쥬드:(라비헨이 무어라 하기 전에 배낭에서 먼저 빠루를 꺼내 들며) 살리고 싶은 거잖아요. 수색도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인 편이 빨라요. 내가 여기 남아 있는다고 소한 씨를 살려낼 의술을 펼칠 것도 아니고.
결정은 빠른 편이 좋으니, 미루지 말고 바로 나가죠.

당신은 빠루를 챙겨든 쥬드를 확인하고는
배낭에서 저도 파이프를 꺼내 들고 복도로 나서는 문 앞에 섭니다.
소한의 헐떡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여전히 이명처럼 들립니다.
빨리 다녀와야겠죠.
당신과 쥬드가 조심스럽게 복도로 나오자
저 멀리서 12마리의 좀비가 곧장 당신들에게 달려듭니다.

| 기준치: | 45/22/9 |
| 굴림: | 77 |
| 판정결과: | 실패 |
쥬드: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89 |
| 판정결과: | 실패 |

| 기준치: | 30/15/6 |
| 굴림: | 13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 기준치: | 30/15/6 |
| 굴림: | 15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 기준치: | 30/15/6 |
| 굴림: | 99 |
| 판정결과: | 대실패 |
| 기준치: | 30/15/6 |
| 굴림: | 53 |
| 판정결과: | 실패 |
| 기준치: | 30/15/6 |
| 굴림: | 89 |
| 판정결과: | 실패 |
| 기준치: | 30/15/6 |
| 굴림: | 75 |
| 판정결과: | 실패 |

| 기준치: | 45/22/9 |
| 굴림: | 14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쥬드: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100 |
| 판정결과: | 대실패 |

| 기준치: | 30/15/6 |
| 굴림: | 71 |
| 판정결과: | 실패 |
| 기준치: | 30/15/6 |
| 굴림: | 26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 기준치: | 45/22/9 |
| 굴림: | 76 |
| 판정결과: | 실패 |
쥬드: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42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좀비들이 마침내 쓰러지고,
좁은 복도 안은 짙은 혈향으로 가득합니다.
땀방울과 좀비에게서 튄 피가 한데 섞여 이마를 타고 흘러내립니다.
이 학교에 얼마나 많은 좀비들이 있을 지 알 수 없으니
또 다른 좀비들이 당신들을 향해 달려오기 전에
빠르게 양호실 위치를 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후의 강렬한 햇살이 복도에 비치고,
일렬로 늘어진 교실을 지나면 [캐비넛]과 [사물함], [학교약도]가 보입니다.

[학교 약도]
군데군데 묻은 핏자국과 그을림 사이로 희미한 글씨들이 보입니다.
양호실은 별관에 위치해 있네요.
복도를 두 개 건너가면 도착입니다.
쥬드는 당신의 옆에서 양호실 위치를 함께 확인하고는,
복도 건너편에서 다시금 들려오는 소리에 빠루를 고쳐쥡니다.
또다시 복도 끝에서 12마리의 좀비들이 달려들고 있네요.
양호실 위치를 알아냈으니, 빠르게 빠져나가는 편이 좋겠습니다.

| 기준치: | 75/37/15 |
| 굴림: | 70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쥬드: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16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당신과 쥬드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복도를 건너건너
양호실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정돈되지 않은, 크지 않은 양호실엔
[환자용 침대]와 [큰 서랍], [상자], [싱크대] 가 보입니다.

[큰 서랍]
당신은 책상 옆의 서랍을 열었습니다.
이미 누군가가 사용한 흔적이 있지만 남은 약들이 있네요.
서랍 안에는 아직 포장을 뜯지 않은
‘소염진통제’ ‘해열제’ ‘소화제’ ‘제산제’ 등…
가지각색의 약 상자들이 들어있습니다.

쥬드:잘했어요, 더 필요한 게 있나 봅시다. 소한 씨는 환자니까.

[상자]
책상 밑의 큼직한 상자를 열자 붕대와 소독솜, 소독약 등이 들어있습니다.
전부 챙겨가긴 어렵겠지만 언젠간 쓸모가 있을 것 같아요.

쥬드:(침대를 살피다가 아래쪽에서 이불과 수건을 발견해 들고 온다) 여기, 이것도 필요할 거예요.

[싱크대]
양호실은 위생이 중요한 곳이니만큼
손을 씻기위한 싱크대도 마련되어 있네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잡이를 돌려보니 깨끗한 물이 나옵니다.
다행이네요.
당신과 쥬드는 좀비와 싸우며 더러워진 얼굴과 손을 씻고
싱크대 아래에 놓인 양동이에 물을 담습니다.
이 정도면 소한의 열을 내려주기엔 충분하겠죠.
쥬드:(양손 가득 짐을 들고) 이제 나갈까요?

후우... 또 좀비들을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쥬드:휴, 신에게 기도하는 수밖에요.
약에 물까지, 정말 큰 수확이네요.
들어갈때와 다르게 양호실에서 나갈 땐 짐이 양손 가득 입니다.
이때,

| 기준치: | 45/22/9 |
| 굴림: | 8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탁, 하고 당신의 주머니에서 약 상자 하나가 떨어졌습니다.
다행히도 소리가 작아서 좀비가 이쪽을 돌아보지 않네요.
다행입니다.
좀비가 당신들을 발견하기 전에 빠르게 이동해야겠어요.
...
그리고 마침내.
당신과 쥬드는 가까스로 원래 교실에 돌아옵니다.
당신은 곧장 소한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핍니다.
상태가 좋아지진 않았지만, 다행히 더 나빠지지도 않았습니다.
소한을 품에 안고 일으켜 챙겨온 약을 먹이고,
담아온 물을 이용해 물수건을 만들어 소한의 이마에 올려주고
그대로 잠시 기다리고 있으면, 소한의 신음 소리가 조금 작아집니다.
쥬드:...이런 사람을 데리고 이동하긴 힘들 것 같은데… 일단 이 친구가 좀 괜찮아질 때까지 기다려야겠네요.
(그러다가 별안간 당신을 돌아보며) ...라비헨 씨. 당신은 소한 씨를 어디까지 믿습니까?

쥬드:(머리를 살짝 긁적이다가 고개를 돌리며) ...두 사람이 둘도 없이 소중한 관계라는 건 잘 알겠지만... 상황이 상황이잖아요? 이럴 때일수록 끝까지 믿을 건 자기 자신뿐이에요. 내가 왜 혼자가 됐겠어요?

그치만 소한은... 내 하나밖에 안 남은 소중한 사람이란 말이에요.
쥬드:뭐라고 하려는 건 아니고요.
(말을 돌리며) 이제 난 마저 잘게요. 큰일이 생기면 깨워요.
(그렇게 말하고는 구석에 자리를 잡고 누운 후 그저 잠을 청한다)
혼자 얘기하더니 혼자 자겠다고 멀찍이 누워버리고...
쥬드는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요.
뜬금없기 그지없습니다.
당연히 이런 상황일수록 소한과 서로를 의지하며
역경을 헤쳐나가야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그런데... 그런데...
쥬드의 말을 들어서인지, 아니면 요 며칠 계속 느낀 불안감 탓인지
계속해서,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소한의 상태를 다시 살펴보면
아까에 비해 열이 내리고 한결 편해진 얼굴입니다.
소한이 어느정도 괜찮아진 것을 확인하자 긴장이 풀리며 피로가 몰려옵니다.
당신은 밤새 걸은 후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한 채 좀비와 싸워야 했으니까요.
피곤한 게 당연하죠.
당신은 표정이 조금 편안해진 소한의 옆에 누워
그의 옆모습을 바라봅니다.
지금 잠에 든 소한은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요.
그런 생각을 하며 소한을 바라보다가,
당신은 저도 모르게 스르륵 잠에 듭니다.
...
그렇게 얼마나 깜빡 잠에 취해버렸을까요.
잠결에 들려오는 소리에 눈꺼풀이 슬그머니 떠집니다.
당신이 옆을 살펴보면, 당신이 함께 누워있던 소한도,
멀찍이 떨어져 잠을 청하던 쥬드도 보이지 않습니다.
복도에서는 소한과 쥬드의 목소리가 웅얼웅얼 들려옵니다.
두 사람은, 복도에 나가서 대화를 하고 있는 걸까요?
밖에 좀비가 다시 들이닥치면 어쩌려고...

| 기준치: | 80/40/16 |
| 굴림: | 8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 그렇지 않으면 말해버릴 거야, 네가…!"
...뭘 말한다는 거지?
점점 언성이 높아지는게 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아무래도 말리러 나가봐야하지 않을까요.

당신이 그렇게 조용히 귀를 쫑긋, 세우고
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하고, 귓가를 찢는 총성이 울려퍼집니다.
이게... 갑자기 무슨?
무슨 일이야?
당신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황급히 교실 문을 열고 나갑니다.
그리고 그 순간 보이는 것은, 새벽어스름이 깔린 복도에 총을 든 소한과
...얼굴에 총에 맞아 눈도 채 감지 못한 채 즉사한 쥬드입니다.
당신과 눈이 마주친 소한의 눈동자가 흔들립니다.

아, 그런데, 설명을 할 시간이 있을까요.
어둑한 복도 너머로 총성을 들은 좀비들의 무리가
복도 양쪽에서 당신과 소한을 향해 미친듯이 달려옵니다.
한마리, 두마리… 눈으로 어림잡아도 스무마리는 넘어보여요.
교실 안으로 들어가려 고개를 돌렸지만 큰 소리 탓인지
운동장 쪽에 모여 있던 좀비들도 득달같이 창문에 달라붙어
어떻게든 창문을 깨려고 야단을 피우고 있습니다.
도망가긴 이미 늦었어요.
이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쉼없는 절망이 머리끝까지 밀어닥칩니다.

당신이 얼떨결에 그에게 끌려가면,
소한은 캐비넷 안에 들어있던 청소용품을 곧장 내팽개치고
당신을 넣은 상태로 문을 잠급니다.
당신은 뭐라고 저항할 새도 없이 캐비넷에 그대로 갇힙니다.


쉿... 잠시만 거기 있어.
대체 혼자서 뭘 어떻게 하려고...
소한이 또 모든 짐을 짊어지고 싸우겠다고 할까봐
덜컥 겁이 치고 올라옵니다.
쥬드의 일은 무슨 상황인지 모르지만
눈앞의 소한이 위태로워 보여, 뭐라고 따져 묻기가 애매해집니다.
당신의 숨소리는 점차 조용히 가라앉습니다.
소한은 당신의 호흡이 괜찮아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캐비넷에서 그대로 등을 돌립니다.
그리고 소한이 곧 품에서 꺼내드는 것은...
며칠 전 마트에서 얻은 곰인형입니다.
대체 저걸로 뭘 어쩌려고 저러는 걸까요.
그러나 당신이 뭐라 말을 걸 찰나도 없이
어느새 복도를 가득 메운 좀비들 사이로 소한의 모습은 사라닙니다.
그리고, 좀비들의 외마디 비명소리들 사이에 노랫소리가
복도에 이질적으로 울려퍼집니다.
노랫소리가 점점 멀어져가고, 좀비들이 소리를 따라서
일제히 한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이 보입니다.
이제 복도에서 좀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요.
새벽의 캐비넷 안은 춥고 어둡습니다.
마트에서 인형을 챙길 때부터 소한은
좀비들을 소리로 유인할 작정이었나봅니다.
하지만... 인간이 앞에 있는데, 고작 저걸로? 유인을...?

소한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혹여 혼자 남겨질까 하는 두려움에 손끝이 파르르 떨립니다.
너무도 멀어진 소리 끝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도 모르고
공포감에 가득 찬 시간만이 흐릅니다.

당신이 말라붙은 입술을 적시며 눈물을 눈가에 담아낸 채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요.
저 멀리서 탁탁 일정한 발소리가 들리고,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캐비넛의 문이 열리며,
당신 앞에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소한이 몸을 낮추어 당신의 몸을
부드럽게 품에 안아듭니다.

소한은 코와 입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당신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살아돌아온 거죠?
저,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좀비를 상대로?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9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문득, 이스트베일의 서재에서 보았던 문장이 스쳐지나갑니다.
[좀비는 감염자를 건드리지 않는다.]
...아.
갑자기 이상하게 굴던 소한의 모든 행동이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좀비들이 다가오는데도 무서워하지도 않고,
대뜸 곰인형 하나로 좀비들을 유인하고,
저 많은 수를 혼자서 상대하고 왔다는 것으로.
당신의 눈앞에 있는, 당신을 부드럽게 끌어안고 있는
당신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하나뿐인 연인은...
소한은, 감염자입니다.
...
도대체, 언제부터?
소한은, 그럼 곧 좀비가 되는 건가요?
혼란스럽게 눈동자를 떠는 당신에게 소한은,
몇 번 콜록이며 피를 토해낸 후에 말합니다.

...캘버리에 도착하기 전에는 괜히 슬프게 만들고 싶지 않았어. 일부러 숨겨서 미안해.

언제부터...?
계속... 나랑 같이 다녔잖아...


동생에 이어서 어떻게 너까지...
(간절하게 너를 꼭 안으며 품 안에서 울기 시작한다) 너까지 잃을 순 없어...




(힘 빠진 주먹으로 네 등을 계속 내려친다) 왜 그동안 말을 안 했어...! 왜!

...가면서 온동네 좀비들 아침조례시킬 거 아니면 조금만 참자.






(피식 웃으며 그대로 학교를 나선다)


학교를 빠져나오자 동이 트고 주위가 환해지고,
쭉 이어지던 아스팔트 도로 대신 초원에 난 흙길이 보입니다.
원래 도로였을 길위에 자동차로 지나간 듯 풀들이 눌린 흔적이 있습니다.
…정말로 캘버리에 가까워 진 것 같아요.
길을 걸으며 한참을 말이 없던 소한은 마침내 입을 엽니다.

일단 쥬드 얘기부터.
... 내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쥬드가 내 가방을 뒤지고 있었어. 내가 감염자라는 걸 알고, 우리의 식량을 훔쳐 도망가려고 한 거야.
내가 그를 저지하려고 하자 그가, 내가 감염자라는걸 너에게 말 한다고 협박했어. 그래서 죽일 수 밖에 없었어.

그치만 네가 감염자인 건 맞잖아.

그래도 너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몰라야 한다고 생각했어.

죽일 필요까진 없었다고.

내 행동이 이성적이지 못했다는 거 알아.
그때는 그냥, 배신감도 들고 그랬던 것 같은데... 기억이 흐려.
감염돼서 점점 이성이 날아가나봐.


소한은 당신에게 그저 기다려달라고만 말하면서
중요한 것들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오늘 일이 아니었다면 당신에게 감염자라는 것을 끝까지 밝히지 않았겠죠.
...문득 쥬드가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 생각납니다.
저 말은 어디까지 진실일까요,
당신은 아직도 소한을 믿을 수 있나요?
각자 다른 생각과 불안감을 품고,
당신과 소한은 계속해서 길을 걷습니다.
한참을 걸어 정오가 될 때 쯤, 저 멀리 언덕 위로 십자가가 보여요.
언덕을 오르니 작고 오래되어 보이는 교회가 나옵니다.
아까 본 십자가는 교회 지붕에 달린 것이었나 봅니다.
가까이 가 보니 좀비들을 막기 위해 창문에 나무 판자를 덧댄 흔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꽤나 오래 전의 것인지 먼지가 끼어 있어요.


뭐길래 잠 자는 시간도 아껴가면서 썼던 거야...?

내 귀염둥이는 참을성이 부족하다니까.

너한텐 시간이 없잖아...
아니야?

교회의 정문을 열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예배당 끝에 걸린 십자가입니다.
인기척이 하나 없는 예배당 안은 고요합니다.
예배당 맨 앞에 짐을 풀고, 소한은 그제야 당신을 바닥에 내려놓아줍니다.



그걸 바라는 건 아니지, 라비?

정말 아무것도 설명 안 할 거야?



자기 바보야?

...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며 고개를 푹 수그린다) 너를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감염된 걸 감춰서 나쁘다고 해야 좋을지... 멀쩡한 사람까지 죽여버렸잖아...

(지금도 지체할 시간이 없어서 노트와 펜을 챙겨들고는, 근처 교회 의자에 앉아 급하게 글을 적기 시작한다)

'피곤해... 그냥... 다 놓아버리고 싶어... 쉬고 싶어.'
'어차피 소한도 곧 사라질 수도 있는 마당에, 그깟 캘버리로 가는 게 의미가 있을까?'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들과 가정들을 거치며 무의식 중에 그런 생각을 떠올린다) '어차피 함께 갈 수 없는 거라면 그냥 소한에게 죽어도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좀비가 된 상태라면 아무것도 모르지 않을까.'
소한이 거칠게 펜촉을 굴리는 소리만이 고요한 교회 안에 서글프게 울려 퍼집니다.
사각거리는 그 소리가 마치 두 사람에게 남은
마지막 시간의 모래시계가 떨어지는 소리처럼 들려오네요.
당신은 소한이 글을 써내리는 의자 옆에 가만히 다가가 앉고,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인형처럼 툭 쓰러지듯 눕습니다.
차가운 나무 의자의 감촉이 뺨에 닿지만, 상관 없게 느껴집니다.
몸도, 마음도, 더는 버텨낼 재간이 없습니다.
눈꺼풀이 납처럼 무겁게 내려앉습니다.
시야가 캄캄해질수록 정신은 오히려 기묘한 평온 속으로 침잠해 들어갑니다.
그래요, 다 무슨 소용일까요.
머나먼 약속의 땅이라던 캘버리도,
어떻게든 살아남겠다며 발버둥 치던 지난날의 고통도,
전부 신기루처럼 흐려집니다.
당장 눈앞의 소한마저 세 시간 뒤에 어떤 모습일지 모르는데,
혼자 살아남아 어디로 간단 말인가요.
모든 의지와 희망이 손가락 사이의 모래처럼 스르륵 빠져나가는 느낌입니다.
당신은 밀려오는 지독한 피로감에 결국 스르륵 눈을 감아버립니다.
차라리 이대로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무책임한 안도감이,
달콤한 잠의 형태를 하고 당신을 깊은 어둠 속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그렇게, 얼마나 선잠을 취하고 있었을까요.
별안간 옆에서 벌떡 일어나는 소리가 들리더니,
소한이 당신의 어깨를 작게 흔듭니다.
깜빡깜빡, 반쯤 젖은 눈으로 눈을 떠 보면...
정말 오랜만에 보는 환한 미소가 소한의 얼굴에 맺혀 있습니다.

어서 일어나 봐. 응?




(네 말랑한 뺨에 여러 차례 입맞추며 기쁨을 표현한다)

그럼... 너도 돌아올 수 있는 거야?

전에 너랑... 폐허가 된 연구실 지나갔을 때, 한 문서 읽고 난 뒤에 이상한 꿈을 꿨었어.


...물론 나도 처음에 거절했지.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 위해서 희생할 사람은 아니잖아, 내가. 널 위해서라면 또 몰라.

굳이?
둘 다 감염도 안 된 상태인데?

우리가 안전하게 살려면,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내가 반대할 거라고 생각해서?


그 남자가 사기꾼일 확률은?

(네게 노트를 건네주며) ...그 악마가 계속 내게 불러주던 치료제 공식이야. 노트에 다 적었어. 이거 들고... 넌 캘버리로 가면 돼.

너는?

난... 못 들어가지.

영웅으로 추앙받을 수 있는 기회라고.

원래 감염되고 24시간이 지나면 좀비가 되지만, 그 악마가 내게 공식을 완성할 시간을 준다고 100시간의 카운트다운을 맞춰뒀어. 이제... 16시간 남았고.
...난. 캘버리에 못 들어가. 라비.

사실상 한 놈만 죽어라 인 거잖아!
그게 왜 네가 되어야 하는데...!

(부드럽게 웃으며 애처롭게 너를 들여다본다) 백신이 아니라 치료제인 걸 내가 확답까지 받았어. 자기가 구해주러 와줘. 살만해진 세상에서.

이 넓은 곳에서 널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내가.
그냥 같이 들어간 다음에 격리시키면 안 돼...?
교도소니까...! 분명 가능할 거야...!

막말로... 이 노트의 내용이 허언이 아니라 실제 치료제라는 걸 남은 과학자들이 검증도 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거야.

(목이 잠겨오고 눈물이 들어차서 시야가 점점 흐려진다) 나는...
나는 어떡해...?


너를 확실하게 찾을 수 있을 거란 보장도 없는 상태에서...?
하하... (결국 뺨을 가르며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어떻게... (눈을 꾹 감으며 고개를 푹 숙이고 손등으로 눈물을 닦기 시작한다)


네가 지금... 온갖 걱정은 다 하게 만들고, 이젠 희생까지 하겠다는데...!


너만 있으면 됐다고...


치료제가 개발되기 전까지 네가 다른 생존자한테서 살아남을 수 있을 확률을 어떻게 믿어...?


(솔직) 좀비는 멍청하잖아...
너도 멍청해지는 거라고...


너 바보야?

빨리 설득해서 빨리 치료제 개발시키고 데리러 와줘.

너는 진짜 어떻게...
첫만남이랑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지금까지 사람 열받게 하냐...




(새끼 손가락을 내밀며) 꼭... 멀쩡히 살아서 기다리겠다고 약속해.
좀비 되고 나면 멍청해서 까먹겠지만.

집에 꼭 자기가 좋아하는 와이너리 만들자. (보듬보듬)



... 사랑해, 소한.
꼭 나중에 다시 만나.

... 살면서 무언가를 이만큼 사랑한 건 처음이야.


캘버리까지는 하룻밤만 걸어 가면 될 거야. 최대한 빨리 가고싶지만 내가 조금만 쉬어야 할거 같아서… 해가 지면 출발하자.

너 하고 싶은 대로 하자.

(너를 꼭 껴안다가, 예배당 중앙에 옷가지 몇 개를 펴고 나란히 눕는다)
(아주 오랫동안, 어쩌면 내일이면 영원히 다시 못 볼지도 모를 네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라비. 잘 자라고 말해줄래?

(애써 가볍게 대화하려 했지만 답답한 숨을 들이마시며 입을 다물었다 뗀다) 잘 자, 소한.
(네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몇 번이고 나직하게 속삭인다) 좋은 꿈 꿔, 사랑해...

소한은 당신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눈을 감고
까무룩 잠이 듭니다.
당신은 소한의 머리카락을 가지런하게 쓰다듬으며
작게 눈을 깜빡입니다.
당신과 소한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16시간.
내일 잠에 들 때는... 소한 없이 홀로 잠들어야 하겠죠.
눈을 감았다 뜨면, 이 모든 것이 꿈이기를 바라지만
세상살이는 언제나 그렇듯 잔혹한 법이라서,
완벽한 구원이나 반전을 기대할 수 없겠지요.
당신은 그렇게 한참이나 소한을 쓰다듬고 어르며
곤히 천사처럼 잠든 얼굴을 바라보다가,
잠들기 전 마지막 입맞춤을 끝으로 천천히 잠에 빠져듭니다.
한참이나 슬픈 꿈 속에 잠겨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신이 어느덧 졸음을 몰아내고 눈을 뜨면,
눈앞에는 소한이 먼저 일어나 당신의 뺨을 가지런히 쓸어내리고 있습니다.
바닥에서 자느라 혹여 목이 아프지 않을까 걱정이었던지
당신의 머리는 그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네요.

해가 지는 시간인지 아직 잠이 덜 깨 흐릿한 시야에
주변은 온통 붉은 빛으로 일렁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당신을 바라보는 소한의 눈시울마저도
붉게 보이는 것은 노을 탓이겠죠.

...응.
출발하자.
당신과 소한은 끼니를 해결하고,
함께 걷는 마지막 여정을 떠납니다.
밤이 되고, 별이 하나둘씩 떠오릅니다.
자동차나 건물의 불빛도, 공장의 매연도 없는 밤하늘은 맑고 선명합니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올려다 보면 쏟아질 듯한 별들로 가득한 밤하늘은 매우 아름다워요.
안전지대가 정말로 가까워졌는지, 이따금 지나치는 표지판들은
캘버리 교도소로 향하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둘은 언제나처럼 한참을 걸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손목시계를 들여다 본 소한은, 작게 숨을 내쉬며 당신에게 말합니다.

고개를 들자 저 멀리 지평선 너머에선 서서히 어둠이 걷히고 있고,
그 반대편으로는 캘버리 교도소, 당신들의 목적지인 안전지대가 보입니다.
...긴 여정의 끝이 보입니다.
작게만 보이던 캘버리는 이제 꽤나 시야에 가깝습니다.


당신과 소한은 주변의 적당한 곳에 손을 잡고
서로에게 기대어 앉아 지평선을 바라봅니다.
맞잡은 소한의 손은 이제 인간의 것이 아닌 것처럼 차갑게 느껴져,
손가락 끝까지 간절하게 힘이 들어갑니다.
저 먼 초원의 지평선 너머로 밤의 장막이 서서히 걷히며 해가 뜨고,
주변이 차츰 따듯한 빛으로 물들어갑니다.




나한텐 포상으로 들리는데?




근데 바보는 대륙 끝이라는 거 모르잖아.

이럴 때만 예리하네.



바-보-

(농담임)
성인일 때 만났으니 더 안 클 줄 알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아쉽다.

...
(네 손에 뺨을 비비며) 바보가 되어도 너무 멀리까진 가지 마.

나 같은 경우는 네가 제일 맛있다는 걸 아니까, 최대한 가까운 거리에서 기웃거릴 거라고.

너무 가까이 기웃거리다가 다른 사람이 위협으로 해석하면 어떡하려고 그래?


시기를 조금이라도 더 당기려면 말야.
혹시 모르잖아. 연구에 도움이 될 수도.

나중에 다녀와서, 무슨 일 했는지 다 얘기해줘.

(네 뺨을 더듬으며 애틋하게 눈가와 입술을 천천히 쓸어내린다) ... 눈 깜빡하면 올게.

두 사람은 그렇게 곁을 지키며 동이 트는 것을 오래오래 바라보았습니다.
이 순간이 영원하다면 바랄 것이 없겠어요.
하지만 시간은 야속하게도 흐르고, 동이 튼 주변이 환합니다.
이제 남은 시간은 10분 남짓.
소한은 손목시계를 확인하더니 당신에게 건네주었던 노트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단단히 품에 안깁니다.

...라비, 이젠 이별해야 할 때야.
약속해줘, 부디 너만은 끝까지 살아남겠다고.

살아남아서... 금방 네게 돌아갈게.

안녕, 그 말을 마지막으로 당신은 등을 돌려
안전지대를 향해 달음박질합니다.
뿌옇게 시야를 가리는 것은 차오르는 눈물이겠지요.
당신은 숨을 몰아쉬며 눈 앞의 까마득히 높은 콘크리트 벽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호흡을 가다듬고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옵니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면 높은 철문이 당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열리고,
당신은 뒤를 돌아보면 마음이 약해질 것이 뻔해 그 안으로
조용히 발걸음을 옮겨 내부로 들어가려던 순간,
타앙-!!!
등 뒤에서 가슴을 찢는 날카로운 총성이 들려옵니다.
당신이 뒤를 돌아볼 새도 없이 쿵, 하고 문이 닫히고
비로소 당신은 안전지대에 도달했습니다.
수많은 생존자들이 당신을 반겼지만 당신 곁에 소한은 없네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한 것이 좀비 사태 이후 처음이건만,
당신은 그 어느때에도 느낀 적 없는, 사무치는 외로움을 느낍니다.
...
시간은 빠르게 흘러 당신이 안전지대에 합류하고 수 주가 지났습니다.
연합정부는 노트의 내용이 치료제를 만드는 공식이라는 것을 처음엔 믿지 않았지만
몇몇 학자들이 이 공식을 본 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고
오늘, 처음으로 노트의 공식을 사용한 실험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치료제의 이름은 노트의 작성자인 소한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질 예정이라고 하네요.
그 과정 동안 수십개의 사본이 만들어지고 오늘에야 비로소 당신의 손에 노트의 원본이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겨를이 없어서 펼쳐보지도 못했던 노트는
여러 사람들의 손을 타 처음보다 더욱 낡고 너덜거립니다.
당신은 이제야 소한이 남긴 노트를 펼쳐보았습니다.
한 장, 한 장 노트를 넘기면 당신이 알아볼 수 있는 모국어로 적힌 것 외에도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중국어 등,
다양한 언어로 바이러스의 치료제를 만드는 공식이 빼곡하게 적혀있습니다.
당신은 노트를 빠르게 넘겨 마지막 장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노트의 맨 마지막장에 적힌 것은...
.
.
.
.
Labels:
TRPG



